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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제2벤처붐 조성 사업, '약' 속에 '독'도 들었다?

벤처캐피털업계 "민간 생태계 조성 저해" 우려에 정부 "창업 마중물 차원"

2019.05.10(Fri) 17:54:03

[비즈한국] ‘제2벤처붐’​ 조성을 경제 정책으로 내건 정부가 방대한 지원책을 쏟아내는 중이다. 자금 지원은 물론 보증, 사무실 임대, 데이터 이용 바우처 등을 폭넓게 지원하고 있다. 창업진흥원이 운영하는 K-스타트업을 찾아보면 정부·지방자치단체·유관기관·대학 등이 88개(10일 기준)의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창업-민간투자-스케일업-엑시트(투자회수)의 스타트업 선순환 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벤처투자업계 일각에서는 정부 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엔젤투자자·벤처캐피털(VC) 등이 나서야 할 시드나 시리즈 A급 투자를 사실상 정부가 독식하면서 민간 중심의 창업 생태계가 자리 잡지 못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정부지원금이 축소될 경우 적지 않은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부처와 유관기관의 창업 지원 사원이 급증하면서 벤처투자업계 일각에서는 정부 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6일 서울 강남구 선릉로 ‘디캠프(D camp)’에서 열린 ‘제2벤처 붐 확산 전략 보고회’에서 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실제 중소벤처기업부는 1조 3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한편, 12조 원 규모의 스케일업 펀드 조성에 나선다. 이런 추가 지원 사업 말고도 현재 진행 중인 사업도 규모가 크다. 초기창업패키지 등을 통해 스타트업당 5000만~1억 원의 창업 지원 자금을 제공한다. 프로젝트 규모나 성격에 따라 5억 원까지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벤처업계에서는 유사 이래 가장 자금이 풍부하다고 평가할 정도다.

 

이에 비해 민간 시드투자와 VC의 펀드레이징은 주춤하다. 국내 대형 VC인 H 사의 경우 올 2월부터 1000억 원 규모의 펀드레이징을 시작했으나 아직 목표 투자금을 달성하지 못했다. 정부 지원금이 많이 풀려, 펀드에 참여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이 나타나지 않아서다. 신규 투자 기업을 찾기 어려워진 점도 영향을 줬다. 

 

H 사 관계자는 “창업자들이 민간 VC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받기 쉬운 정부 지원에 몰리며 좋은 스타트업을 찾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VC는 창업자의 의지와 아이디어, 사업성, 다른 비즈니스와 연계성 등 투자 절차가 까다로운 데 비해, 정부 지원은 사업구조와 사업성만 설명하면 어렵지 않게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올 들어 스타트업의 투자금 사용 내역 등 증빙 절차가 간소해지면서 초기 투자자로 민간보다 정부 및 유관기관 투자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스타트업 창업자 1300여 명이 모인 한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자는 “회원 가운데 창업 7년 차 이하의 스타트업 대부분이 정부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인공지능(AI)·핀테크·O2O 등 미래 산업과 관련한 회사라면 정부 투자 유치가 어렵지 않다는 것이 창업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 정부·유관기관들은 앞다투어 창업자금 지원에 나서고 있다. 올해 공공기관 임직원 핵심역량지표(KPI) 평가 기준에 스타트업 지원 규모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정량 평가여서 많은 투자를 집행한 기관, 임직원일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초반에는 각 정부 부처와 유관기관도 적합한 기업에 투자하겠다며 나름대로 창업전문가를 투자 심사 담당자로 배치했다. 그러나 스타트업 지원 실적이 기관 및 기관장 평가에 반영되는 탓에 현실적으로는 퍼주기식 지원이 펼쳐지고 있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기술창업 액셀러레이터 B 사 관계자는 “일부 정부·공공기관 관계자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때 VC가 고려하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을 정도로 지원 기준이 안일하다”며 “기술의 사업적 성공 가능성과 미래상, 연계성 등에 대한 깊은 고민은 없어 보인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부분 벤처기업들이 투자 기준이 엄격한 민간보다는 정부 지원에 손을 벌리고 있어 투자할 만한 기업을 찾기 어려워졌다”며 “민간 중심의 정상적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저해할까 우려된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창업전선에 마중물을 붓는 차원에서 전방위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초기 자본금이 부족해 창업을 꺼리거나, 신용에 악영향을 줄까 재창업을 멀리하는 문화를 깨트리려면 폭넓은 지원을 통한 충격 효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 대표는 “자동화로 발생한 높은 실업률은 세계적인 추세로, 이에 미국·중국 등 주요국들도 창업 독려에 나서고 있다”며 “민간 부문에 방대한 자금이 있는 주요국들을 따라 잡으려면 한국은 정부의 역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민간 투자업계는 정부 지원 자금이 중단된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한다. 정부가 바뀌어 경제정책에 변화가 생기거나 예산이 부족해 더 이상 지원을 못할 경우 누가 국내 스타트업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논리다. 벤처캐피털 S 사 관계자는 “스타트업 분야는 사업화 아이디어와 경쟁, 트렌드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전쟁터”라며 “정부 지원의 낮은 허들에 익숙해진 스타트업들이 얼마나 멀리 보고 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 

김서광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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