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주말, 홈쇼핑에서 흔히 보이는 패키지 여행 상품들. 호텔과 음식, 관광지 등을 화려한 영상으로 한눈에 보여주니 견물생심마저 생긴다. 소비자는 종종 영상에 현혹되어 전화 한 통으로 쉽게 여행을 결정한다. 정규방송 채널 사이사이에 끼어 있어 쉽게 눈에 띄는 대기업 홈쇼핑 채널의 여행 상품들, 문제는 없을까?
그도 그럴 것이 홈쇼핑 방송 한 번에 여행사는 수억에서 수십억 원을 쉽게 만질 수 있다. 홈쇼핑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 관계자에 따르면, 100만 원 안쪽의 동남아시아 여행 상품의 경우 한 번 방송에 상담 전화가 5000~6000통은 기본으로 들어온다. 그 중 실제로 예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1000건 내외. 100만~200만 원대의 유럽이나 미주 상품의 경우도 1000~2000건의 상담 전화가 들어오면 300~400건이 예약으로 이어진다. 전화는 1건이라고 해도 가족 단위인 경우가 많아 액수는 커진다. 예약전환율이 단 10~20%에 그치더라도 여행사가 만지는 목돈은 여전히 크다.
예를 들어 50만 원짜리 동남아 상품 1000개를 판매하면 5억 원, 200만 원짜리 유럽 상품 500개를 판매하면 10억 원이다. 홈쇼핑의 판매 수수료 격인 프로그램 방송료가 너무 높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막상 방송을 활용해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들은 목돈의 달콤함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일주일에 홈쇼핑 방송을 2~3회 하는 경우도 흔하다. 대형 여행사는 1년에 200회 이상의 방송을 하기도 한다.
홈쇼핑 회사들은 보통 50분으로 진행되는 한 번의 방송으로 최소 5000만 원에서 최대 2억~3억 원까지 수수료를 챙긴다. 방송 요일이나 시간에 따라, 홈쇼핑업체의 규모와 수수료 정책에 따라, 협력 업체와의 관계도에 따라 수수료는 달라진다. 소위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홈쇼핑 물량을 받아 진행하는 현지 여행사(랜드사) 대표 A 씨는 “판매하는 여행사가 홈쇼핑 수수료를 온전히 부담하는 게 아니다. 랜드사들을 경쟁시켜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곳에 물량을 몰아준다”며 “물량을 받기 위해서는 수익이 남지 않거나 마이너스 마진이 되더라도 일단은 손님을 받아야 현지 여행사도 계속 돌아갈 수 있다”고 토로했다. 말은 자율이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A 대표는 “당장은 수익이 안 돼도 손님이 꾸준해야 현지에서 호텔이나 식당, 버스 회사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성수기에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홈쇼핑에서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B 여행사 관계자는 “홈쇼핑에서 파는 물량이 많다보니 항공사에서도 좌석을 싸게 주는 편이고 관광청에서 일부를 지원해주기도 한다. 현지 여행사에 홈쇼핑 수수료를 전가한다는 개념은 아니고 참여하겠다는 현지 여행사와 수수료를 셰어하는(나누는) 방식이다. 홈쇼핑 방송은 여행사뿐 아니라 항공사와 관광청, 현지 여행사의 합작품”이라고 전했다.
대리점 판매분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홀세일 여행사보다 손님에게 직접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직판 여행사들의 홈쇼핑 의존도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 홈쇼핑 상품을 판매하는 또 다른 여행사의 C 씨는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 땐, 같은 일정이라면 홈쇼핑 상품의 ‘가성비’가 더 좋다. 소비자가 모바일로 실시간 가격비교를 하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한 번의 방송으로 최대한 많은 상품을 판매하려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같은 가격이라면 더 좋은 항공사와 호텔, 식사를 넣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랜드사들의 입장은 다르다. 한국의 여행사들로부터 적잖은 손님을 받고 있는 동남아시아 랜드사 대표 D 씨는 “여행사로부터 물량을 받기 위해 경비를 낮춰서 견적을 올려도 실제로 현지의 여행 경비를 줄이기는 어렵다. 이미 정해져 있는 호텔이나 식당, 버스 회사에서 비용을 깎아주겠나. 다른 수단을 통해서 마진을 뽑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그가 말하는 다른 수단이란 ‘쇼핑과 옵션’이다. 저가 패키지여행상품의 마진이 결국 쇼핑과 옵션에서 나온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홈쇼핑 상품의 경우는 랜드사가 들인 돈이 더 크기에 더 악랄하거나 치졸하게 손님으로부터 기타 경비를 뽑을 수밖에 없다는 것. 현지에서 일정 변경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현지 가이드 경력이 있는 여행사 대표 E 씨는 “패키지여행의 90%는 가이드의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 노련한 가이드는 손님을 잘 활용한다. 손님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게 한다. 하지만 홈쇼핑의 경우는 마진이 더 박한 상태에서 행사를 진행해야 하기에 손님을 푸시(강제)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전했다. 랜드사의 본전심리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에서 어떤 여행사를 선택하든 현지의 랜드사는 같다. 한국 여행사의 신뢰도만으로 여행상품을 선택할 수 없는 이유다.
한마디로 홈쇼핑에서 여행상품을 구입한 고객은 그만큼 불쾌한 환경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쇼핑센터를 한 곳이라도 더 가거나, 혹은 같은 쇼핑센터에서 어느 정도 ‘수금’이 될 때까지 더 오래 머물러야 한다. 쇼핑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관광지에서의 시간이나 식사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혹은 묘한 부담을 안고 현지 옵션상품을 구매해야 할 때도 많다. 일정이나 여행 금액만 보면 가성비가 높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서비스의 질은 보장할 수 없다. 여행이 제조품이 아닌 무형의 서비스 상품이라는 점에서 가성비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홈쇼핑의 국외여행 불만접수 건은 2016년 471건에서 2017년엔 2배 가까운 811건으로 늘었다. 유일한 한국공정여행업협회(KAFT) 회장은 “홈쇼핑이 너무 큰 판매 채널이 되어버렸다. 독점적인 권력을 가진 판매 채널이 생기면 유통 구조가 망가질 수밖에 없다”며 “결국 최종 피해는 어떤 식으로든 소비자에게 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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