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 우주는 언제 만들어졌고,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 이 질문의 답을 알기 위해서는 우주가 빅뱅 이후 어떤 속도로 팽창하고 성장했는지, 그 팽창 속도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주 팽창 속도를 측정하던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최근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측정한 우주 팽창 속도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팽창하는 우주는 오븐 속에서 구워지는 빵 반죽과 같다. 빵 반죽에 붙어 있는 건포도 알갱이는 빵이 부풀어 오르면서 거리가 더 멀어진다. 멀리 있는 건포도일수록 거리가 멀어지는 속도도 그에 비례해서 증가한다.
빵 반죽은 팽창하는 우주 시공간으로, 건포도 알갱이는 우주 시공간 곳곳에 자리한 은하로 생각할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건포도일수록 그 거리에 비례해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듯 보인다. 즉 빵이 정확히 얼마나 빠른 속도로 팽창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각 건포도까지의 거리와 그 건포도가 멀어지는 속도를 비교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우주 시공간의 팽창률(Expansion Rate)을 알기 위해서 천문학자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들까지의 거리와 후퇴 속도를 비교한다.[1]
이렇게 은하들이 더 멀어질수록 그 거리에 비례해서 은하의 후퇴 속도가 빨라진다는 법칙을 허블-르메트르 법칙(Hubble-Lemaître law)*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주의 팽창률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은하들까지의 거리와 각 은하가 멀어지는 후퇴 운동의 속도를 정확히 추정해야 한다.
은하까지의 거리를 구하는 것은 좀 까다롭다.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천체의 거리를 알기 위해서는 그 천체가 원래 정확하게 얼마나 밝은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실제 밝기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거리를 알아야 한다는 돌고 도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다른 방법을 통해 천체의 실제 밝기를 먼저 추정하고 그다음에 거리를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다른 방법을 통해 실제 밝기를 유추할 수 있는 별을 표준 촛불(Standard Candle)이라고 부른다.
우주의 팽창률을 정확히 구하기 위해서는 아주 멀리 떨어진 은하까지 관측을 해야 한다. 관측 가능한 우주의 거의 끝자락에 놓인 아주 먼 은하는 아주 어둡고 희미하게 보인다. 그래서 이런 은하의 거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주 밝은 표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 천문학자들은 수명을 다한 왜소한 별이 외부에서 많은 양의 물질을 공급받으면서 순식간에 폭발해버리는 Ia형 초신성(Type Ia Supernova) 폭발의 섬광을 활용한다.
놀랍게도 초신성 폭발은 은하 전체에 맞먹을 정도로 아주 밝고, 또 이런 초신성이 폭발할 때의 최대 밝기는 일정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먼 은하까지의 거리를 재는 데 유용한 표준 촛불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쓸 때는 초신성 폭발의 최대 밝기가 정확히 얼마나 밝은지 미리 알아야 한다. 실제 밝기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있어야만 진정한 표준 촛불로서의 의미가 있다. 수십억 광년 이상 떨어진 아주 먼 거리를 재기 때문에 작은 차이도 아주 큰 오차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문학자들은 초신성으로 먼 은하까지의 거리를 재기 전에, 먼저 초신성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거리를 알 수 있는 가까운 은하에서 초신성의 밝기를 조율한다.
가까운 은하의 경우 주기적으로 밝기가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를 반복하는 세페이드형 변광성(Cepheid Variable)을 표준 촛불로 쓸 수 있다. 이 별들은 마치 숨 쉬는 개구리의 배처럼 일정한 주기로 크기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면서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한다. 더 밝은 세페이드형 변광성이 변광 주기가 더 길어지는 깔끔한 관계를 갖고 있다. 덕분에 천문학자들은 별의 밝기가 변화하는 주기만 알아내면 그 별의 실제 밝기를 꽤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세피이드형 변광성은 주로 가까운 은하들의 거리를 재는 데 사용된다. 반면 훨씬 밝은 초신성은 훨씬 먼 은하들의 거리를 재는 데 사용된다. 세페이드형 변광성은 연주할 수 있는 음역대가 낮은 악기라면, 초신성은 음역대가 훨씬 높은 악기라고 볼 수 있다.
두 악기가 조화롭게 우주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공연 전에 먼저 두 악기가 동일한 음을 똑같이 소리를 내도록 조율을 해야 한다. 음역대가 낮은 악기가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음과 음역대가 높은 악기가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음이 동일한 음으로 겹친다면, 그 겹치는 범위에서 서로 음을 맞추면서 조율을 할 수 있다.
만약 공연 전 조율 과정에서 음역대가 낮은 악기의 연주자가 실수라도 하게 된다면, 이를 미처 눈치채지 못한 높은 음역대의 연주자도 결국 잘못 조율된 악기를 들고 무대에 올라 실제 공연에서 훨씬 큰 실수를 하게 될지 모른다.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천문학자들은 초신성 악기의 정확한 연주를 위해 세페이드형 변광성과 호흡을 맞춰 미리 조율을 하는 것이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우리 은하 근처에 있는 왜소 은하 대마젤란 은하(Large Magellanic Cloud)에서 세페이드형 변광성 70개를 관측했다. 원래 허블 우주 망원경은 약 90분을 주기로 빠른 속도로 지구 곁을 돌면서 우주를 바라보기 때문에 90분에 하나씩 별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런 시간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가까이 붙어 있는 세페이드형 변광성을 한꺼번에 관측하는 DASH(Drift And Shift) 방식을 활용해 훨씬 효율적으로 여러 개의 변광성을 관측했다.[3]
기존의 관측보다 더 정확하게 세페이드형 변광성의 밝기를 측정했고, 이를 통해 앞서 관측되었던 먼 은하들의 초신성들의 밝기와 거리 눈금을 다시 조율했다. 세심하게 조율한 결과 약 1.9% 수준까지 오차를 줄였다.
그 결과 새롭게 확인한 우주의 팽창률, 허블 상수의 값은 74km/s/Mpc 정도다. 즉 1메가파섹(Mpc, 약 330만 광년)만큼 거리가 멀어질수록 시공간이 멀어지는 속도가 약 74km/s씩 빨라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주 팽창은 아주 느리다. 330만 광년이나 가야 겨우 74km/s 정도로 멀어질 정도로.)
그런데 이 수치는 다른 연주자가 독립적으로 구했던 우주 팽창률과 전혀 다른 결과였다.
우주가 얼마나 빠르게 팽창하고 있는지 팽창률을 구하는 방법은 직접 은하들이 멀어지는 듯 보이는 후퇴 현상을 관측하는 것 말고도 다양하다. 그 중에는 우주 전역에 미세하게 퍼져 있는 우주 배경 복사(CMB, Cosmic Microwave Background)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빅뱅 직후 초기의 우주는 지금보다 훨씬 크기가 작고 밀도도 높았다. 또 온도도 훨씬 뜨거웠다. 이후 우주가 계속 팽창하면서 우주는 절대온도 약 2.7도(섭씨 약 -270도) 에 이를 정도로 아주 차갑게 식어왔다. 실제로 전파 안테나로 우주 전역을 관측하면 사방에서 거의 비슷한 아주 미미한 노이즈가 관측된다. 놀랍게도 그 노이즈의 신호는 딱 절대온도 2.7도 정도의 아주 낮은 신호다. 우주 전역에 빅뱅 직후 훨씬 뜨거웠던 우주가 팽창하면서 차갑게 식어버렸다는 우주 팽창의 명확한 증거가 깔려 있는 셈이다.
우주 배경 복사의 파워 스펙트럼을 어떻게 얻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영상. 우주 배경 복사가 얼마나 울퉁불퉁하게 보이는지 그 정도를 비교하는 스케일의 크기를 바꾸면서 우주 배경 복사의 악보를 그려낸다. 자료=ESA and the Planck Collaboration
말 그대로 우주 배경 복사는 빅뱅 직후 우주가 38만 년이 지났을 때, 처음으로 우주 전역에 ‘태초의 빛’ 이 퍼져나가면서 남긴 우주의 첫돌 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빅뱅 직후 우주에 각인된 이 온도 분포를 관측해, 우주가 얼마나 많은 물질을 품고 태어났는지, 우주의 시공간이 얼마나 휘어져 있는지 등 초기 우주의 기본적인 정보 여섯 가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 중에는 우주가 얼마나 빠르게 팽창하는지를 나타내는 우주의 팽창률도 포함된다.
유럽우주국(ESA)은 우주 배경 복사를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관측하기 위해 플랑크(Planck) 우주 망원경을 띄웠다. 이후 2013년 천문학자들은 이 플랑크가 관측한 우주 배경 복사 데이터를 활용해 허블 상수를 계산했다. 당시 계산된 우주 팽창률은 67km/s/Mpc였다.
먼 은하들의 후퇴 운동으로 이번에 새롭게 구한 우주 팽창률 74km/s/Mpc은 앞서 우주 배경 복사를 통해 확인한 값보다 약 9% 더 빠르다. 분명 각각의 방식으로 우주 팽창을 노래하고 있는 천문학자들은 동일한 하나의 우주를 보고 있다. 그런데 각각의 연주자들이 연주한 우주 팽창의 템포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초신성으로 관측한 우주 팽창 속도는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은하들의 모습을 통해 현재 우리 주변 우주의 실제 팽창률을 이야기해준다. 반면 우주 배경 복사를 분석한 결과는 빅뱅 직후 초기 우주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우주 팽창률을 추적한다.
따라서 두 가지 방식은 서로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동일한 우주의 팽창을 노래할 수 있는 완전히 독립된 연주 방법이다. 즉 당연히 두 방법으로 얻게 되는 우주 팽창률은 값이 같아야 한다. 하지만 초신성 관측과 우주 배경 복사라는 훌륭한 두 연주자는 분명 똑같은 하나의 악보를 보면서 전혀 다른 템포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더 난감한 것은 둘 다 훌륭한 연주자이기 때문에 이들의 연주 실력을 의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분명 둘 다 아주 ‘정확하게’ 우주를 연주하고 있다. 그런데 둘은 분명 다른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순을 이해할 유일한 가능성은 뭘까? 애초에 두 연주자에게 주어진 악보가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주 배경 복사로 연주할 수 있는 우주의 역사는 빅뱅 직후 초기의 모습이다. 반면 은하들의 움직임으로 알 수 있는 우주의 모습은 비교적 최근 우주의 모습이다. 물론 우주가 빅뱅 직후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모습이었다면 두 관측 결과는 동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주가 보여주는 공연이 사실은 3막으로 구성된 긴 공연이었다면, 우주 배경 복사로 알 수 있는 1막의 장면과 은하들의 움직임으로 알 수 있는 3막의 장면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일부 천문학자들은 우리가 상대적으로 은하의 밀도가 적은 휑한 지역인 보이드(Void)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한다. 사실 우리가 관측하는 은하들의 후퇴 운동에는 단순히 우주 팽창으로 멀어지는 효과뿐 아니라 가까운 은하들이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반대로 가까워지려고 하는 효과도 함께 섞여 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상대적으로 은하의 밀도가 적은 부분에 살고 있다면, 은하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정도가 약하므로 좀 더 빠르게 은하들이 멀어지는 것처럼 관측될 수 있다.
초신성을 통한 먼 은하들의 관측 결과와 우주 배경 복사를 통한 결과가 왜 서로 엇박자인지,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어쩌면 정말 둘 중 하나가 잘못된 연주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런 확률은 아주 미미해 보인다. 이제 천문학자들은 믿을 수 있는 두 연주자의 불협화음을 통해, 각 연주자에게 주어진 악보 자체가 달랐던 것은 아닌지 새로운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에 올라 악기의 소리를 내면서 서로 음을 맞추고 조율한다. 이때 소리는 기괴한 현대 음악처럼 불협화음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는 이어질 공연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한 잠깐의 불협화음일 뿐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여러 명의 연주자들이 하나의 동일한 악보를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 미리 호흡을 맞추는, 공연의 연장선에 있는 제0막의 연주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천문학자들이 겪고 있는 이 잠깐의 불협화음도 좀 더 정확하게 우주 팽창의 역사를 연주하기 위한 골치 아픈 조율의 과정이다. 초신성과 변광성으로 은하들의 움직임을 연주하는 천문학자, 그리고 우주 배경 복사의 미미한 신호를 연주하는 천문학자. 이 두 훌륭한 연주자들이 이제 드디어 한 무대에 올랐다.
객석에 앉아 있는 우리는 처음으로 무대 위에서 만난 이들이 예상치 못한 불협화음으로 씨름하는 모습을 긴장한 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잠깐의(어쩌면 예상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불협화음 속 조율이 끝나고 나면, 하나의 아름다운 하모니로 거대한 우주의 역사가 펼쳐지는 순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또 다시 과학 역사의 새로운 마디가 채워지고 있다.
* 이전까지는 에드윈 허블의 이름만 따서 허블 법칙이라고 불렀으나, 2018년 국제천문연맹 회의에서 천문학자들은 허블에 앞서 독립적으로 은하들의 후퇴 현상을 수학적으로 예견한 르메트르의 업적을 함께 기리기 위해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https://www.pnas.org/content/15/3/168?ijkey=559668bdb3f8df274570107aaac39b380e6721bc&keytype2=tf_ipsecsha[4]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17-0169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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