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니하오!” 미국에 살면서 한국, 중국, 일본이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하는 현지인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다짜고짜 ‘니하오’부터 건네는 현지인을 마주친 경험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동양인이 해외에서 한 번쯤 겪었을 것이다.
세 나라가 지리적으로 가깝고 같은 한자문화권이긴 해도 문화와 역사, 미적 취향, 정치적 관계, 심지어 외모까지, 우리가 느끼기에는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몹시 억울(?)하지만, 본인들의 삶과 딱히 관계가 없는 지구 반대편 나라들에 대한 그들의 무지를 관용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개척해야 할 ‘시장’의 문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소한 선택에 따라 수백만 달러가 왔다갔다하는 시장, 그 차이만큼 마케팅 전략도 달라야 한다.
# ‘취향 저격’이라는 난제
몇 해 전, 한 미국 기업이 인천 송도에 리조트를 건설하기에 앞서 한·중·일 관광객을 대상으로 큰 규모의 마켓 리서치를 의뢰했다.
연구 조사의 첫 단계는 관광객들의 여행 패턴 연구였다. 대체로 해외 관광 횟수, 주요 관광 목적, 평균 관광 비용, 동행 여부 등의 전반적인 소비자 행동 패턴을 파악, 분석해 소비자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두 번째는 관광객들의 음식과 공연 장르에 관한 취향 조사, 마지막 세 번째는 리조트의 인테리어 장식에 관한 연구 조사였다. 데이터 분석은 한·중·일 관광객 각각에 대해 이루어졌고 세 그룹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내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프로젝트 막바지에 이르러 클라이언트에게 여러 가지 분석 결과를 보고하던 중, 우리는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 격렬한 토론을 하게 되었다. 바로 리조트 인테리어의 색상과 스타일에 관한 선호도 측정 결과 때문이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인테리어는 금빛으로 번쩍번쩍하는 화려하고 대담한 스타일인 데 반해, 한국이나 일본 관광객들은 모던하고 정적인 미니멀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이 리서치 결과를 두고 클라이언트 기업의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은 고민에 빠졌다. 어떤 스타일을 선택하느냐는 곧 어떤 관광객에게 어필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고, 그 결정에 억만 달러가 걸린, 리조트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막대한 자금이 오가는 결정은 하나의 리서치만을 토대로 결정하지 않는다. 리서치를 마친 지 거의 5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이 사업의 연구와 개발은 현재진행형이다.
# 스타벅스가 코코넛우유를 제공하는 이유
스타벅스가 미국 시장에서 2014~2015년부터 우유가 아닌 유지방이 없는 옵션들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 또한 철저한 소비자 연구의 결과다.
스타벅스는 특히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피드백을 적극 수용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데, 그 기업 정신을 상징하는 예로 2008년에 런칭한 My Startbucks Idea Platform을 들 수 있다. 이는 온라인 발언대 같은 공간으로, 스타벅스 직원들뿐만 아니라 스타벅스의 고객과 관심 있는 사람들(prospects)이 적극적으로 제품 아이디어나 서비스 개선사항을 쉽게 공유하도록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다.
몇 년 전부터 이 플랫폼에 자꾸 반복해서 올라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커피에 섞는 우유의 종류였다. 실제로 미국 시장에서 웰빙 바람을 타고 2012년부터 2017년 사이 유지방이 없는 두유, 아몬드나 코코넛우유 소비가 61%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르는 트렌드를 무턱대고 사업에 반영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스타벅스는 맞춤형 리서치, Social Listening(소셜네트워크에서 떠오르는 키워드나 코멘트 등을 분석하는 작업), 주요 3개 도시의 매장 테스트를 통해 소비자 반응을 다각적으로 살폈다.
그 결과, 우유를 대체하는 식물성 우유의 수요가 한 번 왔다 가는 유행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소비자 행동 패턴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스타벅스는 2015년에 코코넛우유, 2016년에는 아몬드우유를 커피와 섞어 먹는 재료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 소비자 행동과 소비 연구 통해 마케팅 전략 수립
새로운 시장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를 ‘행동과 소비 연구(A&U: Attitudes & Usage)’라고 한다. 말 그대로 소비자들의 성향과 소비 패턴을 심층 연구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러한 리서치를 통해 현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기호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짤 수 있다.
새로운 영역을 조사할 때는 정성 연구를 하고 나서 정량 연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포커스 그룹이나 일대일 심층 인터뷰(In-depth Interviews)를 통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지만 세심하게 선정된 타깃 소비자와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며 ‘무엇(what)’을 생각하고 ‘왜(why)’ 그렇게 생각하는지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간다.
이렇게 습득한 정보를 수천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 하는 정량 연구를 통해 공략 소비자의 몇 %가 같은 생각을 하는지를 측정한다. 이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정성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인사이트가 소수 의견이 아니라 다수의 트렌드라고 증명할 수 있다면 큰돈이 들어가는 핵심 마케팅 전략을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추진할 수 있다.
조사의 목적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A&U 연구는 의례적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소비자의 성향과 패턴 연구, 둘째는 현재 시장에 있는 브랜드들의 경쟁 구도, 브랜드 이미지 연구, 셋째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연구로 광고 카피, 간단한 콘셉트 테스트 등이 주를 이룬다.
① 소비자 성향과 패턴 연구
K-Beauty 브랜드가 미국 시장에 대한 심층 연구를 한다 치자. 뷰티 제품 구매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다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우선 미국 소비자들이 기본적으로 어떻게 뷰티 제품을 이용하는지 연구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들의 피부 타입은 어떻고, 하루에 스킨 케어에 할애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이며, 미국 소비자의 몇 %가 이중 세안을 하는지, 몇 가지의 스킨 케어 제품을 현재 쓰는지, 한 달 평균 쓰는 뷰티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대개 어떤 채널을 통해 신제품 정보를 듣는지 등을 알아내야 한다.
그 결과, 만약 미국 소비자의 행동 패턴이 한국 시장과 판이하다면 당연히 마케팅 전략도 한국 시장과 다르게 짜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뷰티 소비자들의 대부분이 페이셜 미스트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신제품 라인업에서 페이셜 미스트를 일단 제외하거나, 론칭을 한다 해도 튜토리얼 비디오를 내세운 소비자 교육이나 광고, PR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박과 경쟁이 심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피부에 공을 들이고, 제품 리뷰나 성분도 꼼꼼히 챙겨보는 등 상당한 시간과 돈을 들여 ‘관리’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시장에서 스킨 케어의 중요성은 최근에야 비로소 부각되는 트렌드이다.
② 타 브랜드에 대한 연구
다음은 경쟁사 분석이다. 일반에게 공개된 통계를 기반으로 전체 시장에서 우위에 있는 브랜드를 대략적으로 알 순 있지만, 구체적으로 우리 기업이 공략하는 소비자 집단이 현재 어떤 스킨 케어 브랜드를 이용하느냐는 ‘전쟁’에 임하기 전에 몰라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정보다.
지금 K-Beauty 제품이 당장 미국에 진출한다면 어떤 브랜드들과 경쟁하게 될 것인가? 가장 큰 경쟁사는 누구이며, 그들의 어떤 전략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가? 그 브랜드들은 어떤 채널을 통해 소비자와 소통하는가? 그들의 브랜드 이미지는 어떠한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을 통해 얻는 정보를 토대로 현재 브랜드들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소비자의 니즈가 무엇인지(white space opportunities) 알아내어 차별화 전략을 짠다.
③ 기업에 필요한 구체적인 인사이트 연구
마지막으로 K-Beauty 기업이 구체적으로 필요로 하는 인사이트도 중요하다. 이 부분은 연구 의뢰하는 회사가 론칭 과정의 어디에 있냐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진다.
보통 많이 쓰이는 것이 기업 로고나 이름, 또는 간단한 기업 소개를 하고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론칭할 브랜드의 콘셉트에 대해 어떻게 호불호가 갈리는가? 개선해야 할 사항이 있는가? 등등 본격적으로 큰 비용을 들여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콘셉트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제품 자체에 대한 R&D의 중요성에 비례해 많은 투자를 받는 것처럼 시장에 대한 R&D는 마케팅의 성공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친다. 지난 회에 다뤘던 마켓사이징과 더불어 A&U는 이 시장에 관한 큰 그림을 제공하는 중요한 연구이다.
필자 황지영은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엔터테인먼트 경영 석사를 마치고 Fox Television, Warner Bros. Television 리서치 부서에서 일했다. 글로벌 소비자 마케팅 리서치 회사 Hall & Partners, Kelton Global에서 경력을 쌓고 2015년 소비자 마케팅 연구 회사 마인엠알(MineMR)을 설립, 현재 미국 LA에서 글로벌 기업들을 클라이언트로 소비자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황지영 MineMR 대표·마케팅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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