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처방의약품 배달 서비스 초읽기에 들어갔다. 아마존이 온라인약국 ‘필팩(PillPack)’을 인수하며 의약품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약 1년 만이다. 의약품 배달 시장이 활발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의약품 배달 서비스의 길이 열리지 않은 상황. 일각에서는 취약계층만을 위해 의약품 배달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과연 가능할까?
지난 24일, 아마존은 아마존 프라임 회원들에게 처방의약품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이메일을 발송했다. 프라임 회원은 당일 배송과 추가 할인 등 혜택을 위해 아마존에 매달 1만 5000원을 지불하는 회원이다. 이메일에는 “당신의 약은 복용량에 따라 분류돼 매달 배달된다. 우리의 서비스와 배송은 무료지만 약값은 지불해야 한다”고 적혔다.
이는 아마존이 온라인약국 필팩을 인수한 지 약 1년 만의 일이다. 지난해 6월 아마존은 필팩을 약 1조 1200억 원(10억 달러)에 인수했다. 필팩은 2013년 설립된 온라인 약국 스타트업으로 미국 50개 주에 온라인으로 의약품을 유통할 수 있는 허가를 취득했다. 회원이 자주 가는 약국의 정보를 필팩 홈페이지에 입력하면, 필팩은 약국을 통해 회원의 처방전을 받아 매달 포장된 의약품을 택배 방식으로 환자에게 전달한다. 회원이 내야 할 서비스 이용료는 없다. 다만 필팩은 회원이 가입한 의료보험회사로부터 돈을 받는다.
아마존이 프라임 회원들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시작한 이유는 필팩의 주요 고객층인 노령층에 아마존의 젊고 디지털에 특화된 고객층을 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필팩 관계자는 SNS를 통해 “(필팩과) 아마존 서비스가 통합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된 것은 사실”이라며 “안전, 미국 건강보험 양도 및 책임에 관한 법(HIPAA), 도난 예방 조치 등 골칫거리가 많다”고 말했다. 인수 후 서비스 출시를 밝히기까지 다소 시간은 걸렸지만 아마존의 의약품 배송 서비스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며, 아마존이 의약품 업계에서도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 아마존, 실패에도 의약품 배달 포기 안해
아마존이 의약품 시장에 뛰어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9년 아마존은 일반의약품을 다루는 쇼핑몰인 ‘드럭스토어(Drugstore)’의 지분 40%를 인수하며 의약품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사업 부진으로 2011년 아마존은 드럭스토어를 영국의 헬스앤뷰티(H&B) 브랜드인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Walgreen Boots Alliance)’에 매각했다. 그러나 아마존은 포기하지 않았다. 2017년 아마존은 미국 12개 주의 약국 면허를 취득했고 지난해 필팩을 인수하며 의약품 배송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이처럼 아마존이 헬스케어 사업에 공들이는 배경에는 우선 고령화에 따라 의약품 수요가 늘고, 미국 소비자의 건강정보관리의 온라인 수요가 늘어나면서 헬스케어 산업의 전망이 밝다는 데 있다. 시장조사기관 IBIS World에 따르면 미국 바이오 기술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1076억 달러(약 126조 원)로 헬스케어 분야가 전체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또 필팩의 자체 운영시스템인 ‘파머시오에스(PharmacyOS)’가 보유한 환자들의 의료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마존이 추후 의료계 사업으로 영역을 좀 더 확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국내 바이오 기업 대표는 “환자들의 데이터를 확보하면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고 데이터를 비식별화해 판매하여 돈을 벌 수 있다. 수익 모델을 구체화하고 잠재 고객층을 사전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마존이 몇 차례 시도 끝에 미국 의약품 배송 시스템 시장에 진출했지만, 섣불리 제약업계의 강자가 될 것이라 단정 짓기는 힘들다. 시장에서는 후발 주자이기에 미국 내에 있던 의약품을 배송해주는 기존의 스타트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캡슐(Capsule)’ ‘나우알엑스(NowRX)’ 같은 기업이 대표적이다. 이미 이들 기업은 의사로부터 환자의 처방전을 받은 이후 당일 혹은 2시간 내로 의약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국내 처방의약품 배송 시장은 갈 길 멀어
미국의 처방의약품 배송 시장 경쟁이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는 처방의약품을 포함한 모든 의약품의 온라인 거래가 금지돼 있다. 약사법 제50조는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5월 1일 독일의 드럭스토어인 ‘로스만’이 국내에 공식 론칭되지만 처방의약품은 판매하지 않는다. 반면 미국은 처방의약품 판매를 전면 금지하지 않는다. 각 주에서 처방전이 없이 조제약을 판매하는 경우에만 처벌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의료계 스타트업 사이에서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의 바이오 기업 대표는 “국내 모든 사업군에서 규제가 가장 많은 곳이 의료 산업이다. 유니콘 기업을 포함한 해외 유망 헬스케어 업체의 아이템 중 70% 이상이 국내에서는 불법이다”며 “데이터는 제타바이트(ZB) 단위로 커지고 있고, 인간의 건강과 관련된 데이터는 향후 가장 많은 데이터를 뿜어낼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많은 규제로 인해 해외에 비해 발전 속도가 많이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이오 기업 관계자들의 요구와는 달리 국내에 처방의약품 배송 시장이 형성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안전 관리 차원에서 모든 의약품을 약국에서 판매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처방의약품 배송 서비스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의약품 배송 서비스를 두고도 찬반이 분분하다. 기술 발전에 따른 편리함을 누려야 한다는 입장도 있으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일각에서는 처방의약품 배송 서비스를 취약 계층에게 부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도서·산간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의약품 접근성이 낮아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의료취약지에 사는 사람을 대상으로 원격의료 서비스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도입된다고 할지라도 의약품 배송 서비스가 허용되지 않는 한 환자가 직접 약을 찾으러 가야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관계자는 “일반의약품은 안전상비의약품으로 편의점에서 팔기 때문에 일반의약품을 구하기는 쉽지만 사실상 처방전을 받으려면 시내로 나가야 한다. 또 도서·산간 지역에 의약품을 구비해놓은 약국이 많지 않다”며 “처방전이 있어도 처방을 못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 보는 반론이 적잖다. 처방의약품 배송 서비스를 일부에게만 허용하는 것에 대해 아직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환자가 의약품을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예외사항에 대한 별도의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외국에는 사후피임약을 배송해서 집까지 가져다주는 기업이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오남용, 분실, 의약품 오염 등에 대한 부분을 먼저 체계화해야 사회적 낭비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표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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