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Story↑Up > 스타일

[클라스업] 오늘의 즐거움을 내일로 미루지 말 것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해, 가족·친구·취미에 더 많은 시간을…

2019.04.30(Tue) 14:53:41

[비즈한국] 십 년 정도 이용한 단골 세탁소가 있다. 그곳은 세탁비가 일률적이지 않고 최소와 최대로 나뉜다. 같은 재킷이라도 어느 땐 두세 배 더 비싸게 받는다. 슈트는 얼마, 원피스는 얼마 같은 기본 기준은 있지만 브랜드나 소재에 따라, 즉 비싼 옷이냐 그렇지 않은 옷이냐에 따라 세탁비에 차등을 두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합리적 방식이다. 전통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는 쉽게 알 수 있지만, 새로운 패션 브랜드는 관심을 갖고 공부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그런데 이 세탁소 사장은 꽤 잘 안다. 확실히 패션에 관심도가 높은 사람이란 얘기다. 또 멋쟁이다. 50대인데도 과감하고 화려한 컬러의 바지를 잘 입고, 슬림하고 타이트한 옷도 잘 입는다. 

 

이 세탁소가 독점이 아닌데도 계속 이용하는 건 세탁 품질에 만족해서다. 어떤 분야든 좀 더 잘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차별화 지점이 있다. 그 중심에는 애정이 있다. 세탁소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패션에 대한 이해다. 세탁 기술자이기 이전에 패션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야 한다. 패션 애호가가 세탁 기술자가 되고, 미식가가 식당 주인이 되고, 작가나 에디터가 책방 주인이 되는 걸 더 많이 보고 싶다. 

 

하루에 충실한 것이 인생 전체에 충실한 방법. 가족과 친구와 어울리고, 자신에게 집중하며 취미에 투자할 시간을 갖자. 사진=임준선 기자

 

결국 취미과 애정은 그 사람의 전문성과 삶의 깊이를 더해준다. 진짜 취미가 없는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요즘 시대의 격언이 새삼 와닿는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건 점점 더 유효한 명제다.

 

‘내일 할 일을 오늘 하지 마라’, ‘오늘 놀 것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오늘 먹을 고기를 내일로 미루지 마라’ 같은 얘기를 농담 삼아서라도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건, ‘오늘’을 바라보는 태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내일’을 위해서만 살던 시대가 있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은 일만 하며 살았다. 일만 하느라 가족에 소홀하고, 친구도 취미도 꿈도 다 포기했다. 물론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 

 

인간생태학을 연구하는 코넬대 칼 필레머(Karl Pillemer) 교수가 진행한 ‘코넬대 인류 유산 프로젝트(Cornell Legacy Project)’는 65세 이상 노인 1500명 이상과 인터뷰를 해 노인들의 지혜를 수집했다. 그중 인생을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점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을 ‘시간 낭비’를 꼽았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이다. 

 

준비를 하는 것과 걱정을 하는 것은 다르다. 준비는 하지 않은 채 걱정만 하는 건 참 쓸데없는 일이다. 우린 살면서 참 많은 것을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칼 필레머 교수는 장기 목표보다 단기 목표에 집중할 것을 제시했다. 하루의 일만 생각하라는 것. 하루에 충실한 것이 인생 전체에 충실한 방법인 셈이다. 하루에 충실하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을 취미로 두고, 좋아하는 사람과 밥도 먹고 대화도 하며 어울리는 것만큼 현실적인 목표도 없다.

 

가족과 밥을 얼마나 먹느냐, 휴가는 얼마나 가느냐, 이 두 가지 질문은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18 식품소비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주일에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횟수는 전체 평균이 12.17회였다. 하루 세 끼씩 일주일 먹으면 총 21회가 되는데 그중 절반 정도를 가족과 함께 먹는다는 얘기다. 특히 소득이 600만 원 이상일 경우에는 10.8회이고, 수도권이 11.39회였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고 수도권에 살면 가족과 밥 먹는 횟수가 적은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내관광활성화를 위한 휴가확산의 기대효과 분석 및 휴가사용 촉진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의 연차휴가 부여일수는 평균 15.1일이고, 사용일수는 평균 7.9일로 사용률이 52.3%였다. 연간 7.2일의 미사용 휴가가 있는 셈이다. 이걸 국세청의 국세통계연보상 근로소득자 1774만 명에게 적용해보면 약 1억 2773만 일이 된다. 이 시간만큼 가족과 친구와 어울릴 시간, 자신에게 집중하며 쉴 시간, 취미에 투자할 시간을 뺏긴 셈이다. 돈은 더 벌어서 쌓아뒀을지 모르겠지만, 잃은 것이 많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사람도 자주 만나본 사람이 잘 대하고, 공연도 자주 본 사람이 더 잘 즐긴다. 뭐든 꾸준히 쌓아야 괜찮은 것들이 만들어진다. 결국 취미는 호사가 아니라 삶의 풍요다.

 

필자 김용섭은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이다. 저서로는 ‘라이프 트렌드 2013: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부터 시작해 ‘라이프 트렌드 2019: 젠더 뉴트럴’까지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와 ‘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 ‘실력보다 안목이다’ 등 다수가 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실전 글로벌 마케팅] 방탄소년단이 모든 시장에서 통할까
· [골목의 전쟁] 프랜차이즈 지고, 직영 매장 뜨는 이유
· [클라스업] '남자가 레깅스라니'라니요?
· [클라스업] '자율복장'은 막 입는 게 아니라 잘 입는 것
· [클라스업] 봄맞이 변신, 컬러부터 바꿔보자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