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농구 좋아하세요?” ‘슬램덩크’ 채소연의 이 대사가 아니더라도,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은 농구를 좋아하는지 묻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만화 ‘슬램덩크’와 날고 기는 대학팀들이 활약했던 ‘농구대잔치’와 마이클 조던으로 대변되던 NBA(미국프로농구)의 인기, 그리고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일으킨 효과였다.
‘마지막 승부’는 당시 청춘스타들을 대거 캐스팅해 명성대와 한영대라는 라이벌 매치를 중심으로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이 어우러지며 좌절을 딛고 성공하는 전형적인 스포츠 드라마를 그려냈다. 지금까지도 손에 꼽히는 스포츠 드라마로 ‘마지막 승부’를 꼽는 사람이 많을 정도.
어릴 적부터 함께 농구를 하며 절친하게 지냈던 이동민(손지창)과 윤철준(장동건). 뛰어난 농구 실력을 지닌 동민 덕에 철준을 비롯 호성(박철)과 몇몇 친구들이 동민과 함께 농구 명문 신라대로 진학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동민이 명성대를 선택하면서(사실 병에 걸린 어머니의 수술비를 보조 받는 조건으로) 철준과 친구들은 대학에 가지 못하고 동민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그 와중 방황하던 친구 호성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고, 동민과 철준이 동시에 정다슬(심은하)에게 마음을 갖게 되며 이들의 반목은 더욱 심화된다. 재수 끝에 한영대로 진학해 동민에게 이기고자 다시 농구를 하게 되는 철준이 우여곡절 끝에 동민과 화해하고 진정한 라이벌로 농구대잔치에서 맞붙어 승부를 가리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20대 초반 싱그러운 청춘들이 꿈과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부딪히고 경쟁한다는 내용의 ‘마지막 승부’는 당시 또래에게 떨리는 감정과 스포츠 특유의 쾌감을 선사했다. 이와 같은 스토리와 감성은 언제나 통할 것이다. 물론 지금 보면 “그래, 나 이거밖에 안 되는 놈이야” “너, 자꾸 그러면 확 입 맞춰버릴 테다” 같은 90년대스러운 오글거리는 대사들이 폭소를 자아내고, 난다 긴다 하는 농구팀 선수치곤 허접한 몸짓이 안쓰럽긴 하지만 그래도 땀 흘리며 온몸으로 부대끼며 앞으로 나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은 아름답다(늙으면서 더 그렇게 보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마지막 승부’의 출연진들은 지금 봐도 꿈의 캐스팅이다. 요즘 애들은 실감 못하겠지만 당시 어마무시한 인기를 구가했던 손지창이 나오고, 당시엔 신인급이었지만 이후 대한민국 공식 미남군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장동건의 리즈 시절 미모를 감상할 수 있는 드라마였다고. 동민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철준과 친구가 되는 한영대 김선재 역으로 출연한 이종원 역시 청춘스타였고, 명성대에서 동민과 친구가 되는 긍정적인 농구 천재 장용호 역의 박형준, 명성대 주장으로 터프가이 역을 주로 맡던 허준호도 눈에 띈다. 드라마 막판에 덩크슛만 잘하는 마이클 최 역으로 투입된 연세대 농구선수 출신 박재훈 또한 4회 출연 만에 큰 인기를 누렸을 정도.
그리고 심은하와 이상아, 신은경. 청순 미모로 일약 ‘다슬이 붐’을 일으킨 심은하는 정말 혀를 내두를 만큼 예뻤다. 괜히 ‘응답하라 1994’에서 성다정이 “상민오빠의 다슬이가 왔어요!”를 외쳤던 게 아니란 말씀. 동민에게 ‘직진 대시’하던 시원시원한 최미주 역의 이상아도 ‘책받침 여신’으로 군림했던 만큼 깜찍한 미모를 자랑했고, 한영대 농구부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왈가닥 김수진 역의 신은경도 통통 튀는 개성을 뽐냈다.
‘마지막 승부’의 인기와 맞물리며 1994년은 농구붐의 절정을 구가했다. 특히 실업 농구팀을 잡는 기염을 토했던 연세대학교 농구팀은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을 내세워 93-94 농구대잔치 우승을 차지했고, 영원한 라이벌 고려대학교 농구팀의 전희철, 양희승, 김병철, 신기성, 현주엽 등의 인기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열기는 1997년 한국프로농구(KBL)의 출범으로 이어졌을 정도다.
얼마 전 울산 현대모비스의 승리로 막을 내린 2018-2019 SKT 5GX 플레이오프에서 ‘마지막 승부 세대’로 활약했던 이들이 감독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세월이 얼마나 빨리 흘렀는지 실감하게 된다. 서울 SK 나이츠의 문경은, 서울 삼성 썬더스의 이상민, 창원 LG 세이커스를 이끈 현주엽…. ‘아는 형님’ 등에서 방송인으로 활약 중인 서장훈에게 툭하면 배경음악으로 ‘마지막 승부’ 주제가를 깔아주는 것도 그 시절 농구를 좋아하던 이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인기 드라마라면 주제가 또한 사랑받기 마련인데, ‘마지막 승부’ 주제가 또한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하는데 한몫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운동회와 체육대회를 휩쓴 삼대장 노래를 잘 알 것이다. ‘파일럿’과 ‘걸어서 하늘까지’와 ‘마지막 승부’의 주제가 말이다(무한궤도의 ‘그대에게’는 기본값이고, 연령과 지역에 따라 ‘피구왕 통키’ 주제가가 이 삼대장에 포함되기도 했다).
김민교가 불렀던 ‘마지막 승부’ 주제가는 비록 일본가요 표절로 판명나긴 했지만 1990년대 드라마 주제가다운 박진감 넘치는 인트로와 스포츠 드라마에 어울리는 열정적인 가사로 운동회에 퍽 어울리는 노래로 사랑받았다. 얼마 전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데, 나도 모르게 예전 운동회의 율동이 튀어 나오더라니까(어릴 적 습득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지금도 사랑과 꿈을 향해 내달리는 청춘들에게, 비록 이 드라마와 노래는 모르겠지만 불러드립니다.
“힘이 들면 그대로 멈춰 눈물 흘려도 좋아~ 이제 시작이란 마음만은 잊지 마~ 내 전부를 거는 거야, 모든 순간을 위해~ 넌 알잖니, 우리 삶에 연습이란 없음을~ 마지막에 비로소 나 웃는 그날까지~ 포기는 안 해, 내겐 꿈이 있잖아.”
필자 정수진은?
영화를 좋아해 영화잡지 ‘무비위크’에서 일했고, 여행이 즐거워 여행잡지 ‘KTX매거진’을 다녔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이며,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유튜브에 있다는 걸 깨달은 후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이다.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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