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16년 한 해 800만 명 넘게 국내로 들어왔던 유커(遊客, 중국인 단체여행객)는 중국의 사드 보복이 시작된 2017년엔 절반 수준인 약 400만 명으로 줄었다. 사드 보복이 유지된 2018년에도 2017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최근 개별 여행객이 증가하며 회복세라는 뉴스도 잇따른다.
중국과 한국의 관계가 화해의 조짐을 보일 때마다 중국은 조금씩 ‘한한령(限韓令)’을 풀어주는 것 같은 액션을 취하기도 했지만 사실 여행업계 관계자들이 체감하는 정도는 2년간 거의 변화가 없다. 오는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설에도 업계의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 유커, 온라인에서 여행상품 팔고 전세기 띄워야 온다
중국인 전문 인바운드(외국인의 한국여행) 여행사 A 대표는 “눈 가리고 아웅이다. 중국 내 온라인 사이트에서 아직 한국 여행을 판매하지 못한다. 중국 거대 여행사인 씨트립이나 튜뉴 등 온라인에서 한국 상품을 팔아야 여행객이 증가하는데 일부 지역에서 풀어줬다고는 하지만 단체여행은 아직 막아놓은 것과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10년 동안 인바운드 업에 몸담았던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유커가 오려면 전세기가 떠야 한다. 사드 보복 전엔 하루 30편 넘는 전세기가 떴다. 인천뿐 아니라 부산과 제주로 가는 항공편도 많았다”며 “유커가 오려면 양국 간 항공편 먼저 증편해야 하는데 아직 기미가 없다”고 전했다.
실제 중국 인바운드 여행을 진행하는 여행사 대표들은 “최근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중국 현지에서 하는 관광박람회도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며 “중국 내 온라인 판매가 재개되기 전까지는 유커 증가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현재 베이징, 상하이, 충칭 등 일부 지역에서 한한령이 풀렸지만 그마저도 오프라인 대상 모객일 뿐 온라인은 아직 막혀 있다. 또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아직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비공식적으로 한국 여행을 금지하고 있다. 다른 중국계 인바운드 여행사 대표는 “중국 정부는 웬만해선 공식적으로 ‘금지’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풀어주지 않으면 금지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온라인 상품 판매를 허가하지 않으면 막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사드 보복 전, 한 달에 단체여행 100팀 정도를 받아 행사를 진행하던 A 대표는 아직 한 팀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삼삼오오, 혹은 10여 명씩 개별로 한국으로 오는 중국 여행객 대부분이 투어피도 되지 않는 저가 관광으로 오는데 소규모로는 이를 받아봤자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단체팀이 많았을 때는 쇼핑을 돌려서 박리다매라도 물량으로 메울 수 있었지만 소규모 팀은 그조차도 불가능하다.
A 대표에 따르면, 사드 보복 전 20~30명으로 이루어진 단체팀 100팀 중 30팀 정도는 쇼핑을 많이 해서 여행사에 수익이 남고 40팀 정도는 마이너스가 나지 않는 수준까지만 쇼핑을 한다. 나머지 30팀 정도가 쇼핑을 별로 하지 않아 마이너스가 나도 쇼핑을 많이 하는 30팀 덕분에 마진이 생기는 구조다. 팀이 많을 때는 이익이 남는 팀과 안 남는 팀이 서로 상쇄가 됐지만 팀을 적게 받으면 대번에 마이너스가 날 수밖에 없다.
여행객이 얼마나 쇼핑을 하느냐에 따라 여행사의 수입이 달라지니 여행사들은 외국인을 상대로 한 국내 여행을 진행한다기보다는 여행객을 통해 오프라인 유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한국에 있는 여행사들이 중국으로부터 유커를 받을 때 호텔비와 식사, 차량 등의 행사비가 포함된 투어피를 제대로 받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오히려 여행객을 인수받는 조건으로 중국 현지 여행사에 ‘1인당 얼마’의 인두세를 주고 마이너스 난 부분을 쇼핑 커미션으로 채우는 게 다반사다. 인두세는 적게는 중국돈 200~300위안(3만 5000~5만 원)에서 많게는 800위안(13만~14만 원)에 이른다.
한국에 오는 중국 여행객은 자신들이 면세점이나 쇼핑센터에서 사는 물건의 커미션을 빌미로 공짜로 여행 와서 저렴한 호텔에 머물고 저렴한 음식을 먹고, 사든 안 사든 쇼핑센터와 면세점을 실컷 돌다가 돌아간다.
이는 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이다. 문제는 개인 여행객이 늘어나도 이런 단체여행의 병폐가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개인 여행객들이 비자피나 공항 픽업피 등을 아끼기 위해 단체여행에 흡수되는 경우도 많고 개인 여행객으로 입국하더라도 공항에서 위챗 등을 통해 보따리상인 따이공(代工)에게 면세품 이동책으로 포섭되는 일도 흔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국에 올 때 제 돈 다 주고 오는 것 자체가 억울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게 인바운드 여행 시장이 돌아가고 있다. 사드 보복 전은 물론이고 사드 이후에도 한국 인바운드 시장의 상당수를 중국인이 채우고 있는 현실에서 외국인의 한국 관광은 쇼핑에 밀려 ‘싸구려’가 될 수밖에 없다.
업계 종사자라면 모를 리 없는 이 문제는 문화체육관광부나 한국관광공사도 알고 있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대형 면세점의 수익 대부분이 이런 따이공과 중국계 여행자들의 머릿수에서 나오는 점을 감안해 정부도 ‘모르는 척’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 면세점, 유커든 따이공이든 매출만 올리면 ‘띵호와’
인바운드 여행사가 마이너스 마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면세점은 굳건하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전체 면세점 매출도 2017년 14조 원에서 2018년엔 20조 원으로 늘었다. 중국 단체관광객은 못 들어오고 그 수도 절반으로 줄었지만 면세점 매출이 승승장구인 것은 여행객의 빈자리를 따이공이 매우고 있기 때문.
한 면세점 관계자는 “면세점 매출 중 외국인 소비 비율이 80%이고 그중 중국인의 비중이 90%다. 유커가 많을 때는 따이공이 별로 없었지만 유커가 못 들어오니 따이공이 대신 들어와 물건을 사간다”고 전했다. 따이공 1명이 유커 1명의 10~20배의 물건을 구입하니 면세점은 누가 사가든 매출에 문제가 없다는 것. 오히려 매출은 더 오르는 추세다. 다만 따이공 전문 여행사를 통해 모집된 따이공에게 커미션을 주는 구조라 유커가 일으켰던 매출보다는 마진율이 적다.
인바운드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결국은 사드 보복이 풀려야 온라인에서 한국 여행 광고와 모객을 할 수 있게 되는데 한국이 사드 배치를 고수하는 한 상황은 절대 낙관적이지 않다”며 “공식적으로 사드 보복을 못 푸니 면세점의 따이공을 이용한 비합리적인 영업행태도 봐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면세시장이 포화라는 분석에도 정부가 면세특허를 그렇게 많이 풀어줬는데 이제 와서 면세점들 다 죽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느냐”고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은 전체적으로 낙관적이지 않다. 소규모 인바운드 여행사 B 대표는 “곧 풀린다 풀린다 한 게 1년도 넘었다. 사드 배치를 두고 미국이 포기하겠나, 중국이 포기하겠나”라고 반문하며 “끝나지 않을 싸움에 더 이상 ‘희망고문’ 당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26일 인천항에는 크루즈 터미널이 개장한다. 2017년 6월 첫 삽을 뜬 지 거의 2년 만이다. 인천항만공사는 아시아 크루즈 관광의 성장 가능성을 점치며 사드 보복만 풀린다면 한-중-일을 연결하는 크루즈의 경제적 파급 효과도 클 것이라 전망했다. 오는 5월 1일부터 시작되는 중국 노동절 연휴를 맞아 제주에 오는 2만 명 넘는 중국인의 방한에 특수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소규모 단체로는 이익을 낼 수 없는 인바운드 여행업체들은 여전히 울상이고 면세점 업계는 누가 들어오든 매출이 오르면 일단 안심이다. 현재로선 여행 업계이건 면세점 업계이건 한국 인바운드 여행 시장은 “확장된 유통시장”일 뿐이라는 것이 업계의 인식이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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