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강제철거 중단하고, 재건축 세입자 대책 마련하라.” 재건축으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세입자들이 22일 서울시청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빈곤사회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전국철거민연합,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등 20개 단체가 공동 주최한 ‘강제철거 중단! 재건축 세입자 대책 촉구 결의대회’에는 경찰 추산 300여 명(주최 측 추산 400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재건축 세입자 대책 마련을 약속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약속 이행과 재건축 세입자 보상을 규정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통과 등을 촉구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비서실은 한 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이날 결의대회 말미에 주최 측 입장문을 전달받았다.
재건축은 낡은 아파트나 연립주택지구를 허물고 다시 짓는 것을 말한다. 주택건설촉진법에 따라 공동주택이나 단독주택을 대상으로 재건축사업을 하려면 300세대 이상(단독주택은 200호 이상) 또는 부지면적이 1만㎡ 이상이어야 하며, 안전진단 실시 결과 3분의 2 이상의 주택이나 주택단지가 재건축 판단(단독주택은 노후·불량건축물이 해당 지역 안 건축물 수의 3분의 2 이상인 지역)을 받아야만 한다.
현행법상 재건축사업 구역 세입자는 재개발사업과 달리 이렇다 할 보상을 받을 수 없다. 토지보상법은 도시 내 낡은 주택과 불량한 도로·상하수도 등을 정비하는 재개발사업을 공익사업으로 보고 해당 구역 세입자의 영업손실, 주거이전비 등을 보상한다. 반면 재건축사업은 민간 이익을 위한 사업으로 보고 별다른 보상 대책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 주거사업과에 따르면 22일 현재 서울시내 66개 구역(49개는 착공 전)에서 단독주택 재건축사업이 진행중이다.
# “이주대책 없이 강제 퇴거…주변 전월세 치솟아 갈 곳 없어”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은 “개발을 하려면 개발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이주대책을 먼저 세우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재개발지역의 세입자와 재건축지역의 세입자가 뭐가 다르냐. 개발 때문에 개발 인근지역의 전월세는 천정부지로 폭등해 이주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지난 추운 겨울 용산 참사 10주기 즈음에 박준경 열사가 강제집행을 당하고 살아갈 방법이 없어 차디찬 한강물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지금은 서울 자양, 방배, 반포 재건축 지역 세입자들의 강제집행 통보가 줄을 잇고 있다. 서울시는 언제까지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이냐”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 아현2구역 재건축사업 추진 과정에서 강제 철거로 쫓겨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박준경 씨의 어머니 박천희 씨도 떨리는 목소리로 연단에 섰다. 박 씨는 “아현동에 비록 작고 오래된 월셋집이지만 거기서 준경이와 10년을 정겹게 살았다. 우리가 왜 이렇게 쫓겨나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재건축이 된다고 했을 때도 이렇게 대책 없이 쫓겨날 줄 몰랐다”며 “세 번의 강제집행을 당하고서 ‘엄마, 용역들이 그 위로 새카맣게 올라가’라고 문자를 보내며 걱정하던 아들이 이제 세상에 없다. 잘못된 시대, 잘못된 개발, 대책 없는 법과 제도가 준경이를 죽였다”고 말했다.
2016년 서울시 노원구 월계2동 인덕마을 재건축구역에서 강제 퇴거를 당한 김진욱 노원 인덕마을 이주대책위 위원장은 “사람이 살지 않는 산과 들을 개발할 때에도 고라니, 삵, 도롱뇽, 맹꽁이 같은 동·식물의 서식지 보호 대책이 먼저 마련된다. 용역업체가 이 동물들을 내쫓고 죽이는 짓도 상상할 수 없다. 하물며 사람을 때려 내쫓는 법을 만든 정치인과 재건축 인허가를 낸 시장은 시민을 위한 대표자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안창수 자양1구역 상가철대위 위원장도 “원주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주택 공급을 늘려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원주민(세입자)은 모두 내쫓기고 새 집은 다주택자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생존권을 박탈하는 폭력적인 강제철거는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 사각지대에 있는 재건축 세입자 대책 수립에 대한 시 차원의 약속이행과 제도 개선 방안을 수립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개정안 국회 상임위 계류, 서울시 “서울시 자체 대책 23일 발표할 것”
재건축 구역 세입자의 이주 및 보상 대책을 보완하기 위해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와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 등은 각각 지난 2월과 3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금태섭 의원실 관계자는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을 차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법원 판단에 발맞춰 법안을 마련했다”며 “소관 상임위에서 간사 간 협의를 통해 안건을 상정해 심의해야 하는데 국회 파행이 계속되면서 심의가 지연되는 듯하다”고 전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입법자가 재산권을 비례의 원칙에 부합하게 합헌적으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수인의 한계를 넘어 가혹한 부담이 발생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이를 완화하는 보상규정을 두어야 한다(2002헌바84등)”고 판시했다.
서울시는 개정안과 별개로 자체 이주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고 박준경 씨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서울시 행정책임자로서 사과 드린다. 진상조사와 함께 강제철거 예방책 등을 철저히 마련해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재건축 세입자 등에 대한 실효적인 이주대책을 마련을 약속했다.
서울시 주거사업과 관계자는 “내일(23일) 서울시가 마련한 (재건축 세입자)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단독주택 재건축사업의 경우 (세입자) 문제가 불거질뿐더러 사회적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단독주택 재건축사업이 법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다 보니 이미 인가 난 곳만 진행하는데, 세입자에 대한 대책이 없으니 서울시장 권한으로 가능한 것은 모두 마련해보겠다는 취지”라고 전했다.
차형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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