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통해 시장과 상품에 대해 학습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17년 8·2 대책과 2018년 9·13 대책은 지난 40년간 실시된 부동산 정책의 ‘종합판’이라 부를 수 있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된 까닭에서다.
지난 2년간의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수많은 리포트를 읽고 시장 반응을 본 뒤 내린 결론이 있다. 부동산 의사결정 시 가장 중요한 건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 마지막도 입지라는 거다. 다만 실거주든 투자든 부동산 입지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먼저 수요와 공급을 파악하고, 적정 가격을 알아야 하며, 상품 경쟁력까지 공부해야 한다.
이때도 입지 공부는 필수적이다. 수요 및 공급도 입지와 함께 생각해야 하고, 가격도 입지별로 파악해야 하며, 상품도 입지에 따라 선호가 다르다는 걸 미리 반영해야 한다.
2017년 8월 2일 이후의 부동산 대책은 입지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입지평가 시 가장 중요한 수요와 공급에 대한 의사결정 기준을 확실하게 제공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국의 입지를 4단계로 나눴다. 투기지역 16개 지자체(서울 강남, 서초, 송파, 강동, 용산, 성동, 노원, 마포, 양천, 영등포, 강서, 중구, 종로, 동대문, 동작, 세종시), 투기과열지구 31개 지자체(서울 25개구 전체, 경기 과천시, 성남시 분당구, 광명시, 하남시, 대구 수성구, 세종시), 조정대상지역(서울 25개구 전체, 경기 과천, 성남, 하남, 고양, 남양주, 동탄, 광명, 구리, 안양 동안, 광교, 수원 팔달, 용인 수지·기흥, 부산 해운대, 동래, 수영), 기타 지역(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이 아닌 지역)이다.
입지는 세분화할수록 경쟁력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수요와 공급의 영향력을 전망할 수 있는 정확성이 높아지고, 실거주 수요든 투자 수요든 입지별 접근 전략을 치밀하게 짤 수 있다. 리스크를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투기지역 지정을 위해 정부는 구체적 기준안을 마련했을 것이다. 일반인이 그 내용까지 알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부동산 시장 내 반응이다. 시장 내 수요가 많다 싶으면 지정하고, 수요가 없다 싶으면 해제하니 말이다.
규제 강도가 높은 투기지역은 수요가 차고 넘치는 곳으로 해석할 수 있고, 투기과열지구는 투기지역 다음으로 수요가 많은 곳으로 판단하면 된다. 조정대상지역은 수요가 많은 듯한데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곳이다. 기타 지역은 정부도 알 수 없으니 개인 스스로 판단하라는 뜻이다.
투기지역은 수요가 차고 넘치는, 다른 말로 하면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 입지가 가장 좋은 곳으로 인정받는 곳이란 의미다. 수요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공급으로 수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곳의 적정 가격은 소비자가 정할 수밖에 없다. 3.3㎡(약 1평)당 3000만 원이든, 1억 원이든 거품가격이란 말을 쓰는 게 의미 없다. 소비자가 가격대를 받아주는 한 그 금액이 시장가격이다. 구입할 만한 가격이라고 판단해 매수하는 거다.
투기지역을 단순히 ‘가격이 높은 곳’으로 분석하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 비해 비싸니 무작정 하락을 기대하는 건 난센스다. 3.3㎡당 1000만 원 시장의 시각으로 5000만 원 시장을 조정하려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시장이 왜 5000만 원이 됐는지 이해가 어렵다면 다른 지역 대비 비싼 지역이라고 인정하면 된다. 그게 오히려 투기지역 시장에 대한 전략을 짜는데 유리하다.
가격은 상품 경쟁력이 좌우한다. 입지가 좋고, 새 아파트일수록 비싸다. 구도심보다는 대규모 택지개발지구가, 소규모 단지보다는 대단지의 상품가치가 높다. 2016년 8월 입주한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의 112㎡(약 34평)형은 29억 원 전후로 거래된다. 3.3㎡당 8000만 원이 넘는다. 현 시점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일반 아파트다. 이건 거품 가격일까, 정상 가격일까. 투자자끼리 사고파는 시장이라면 거품일 수 있지만 실수요자 위주로 거래된다면 정상 가격일 가능성이 높다. 아크로리버파크는 투자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16개 지자체 중 실수요자 위주로 거래되는 지역이 있고, 투자자가 많은 지역이 있다. 투기지역도 지역별로 나눠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수요층이든 투자 수요층이든 투기지역에 관심 있다면 16개 지역을 각기 다른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는 16개 지역을 같은 시각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모두 다른 시장인데 말이다. 그래서 기회를 주고 있다는 판단이 들기도 한다. 수요는 차고 넘치는데 추가 공급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상승 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물론 쉬지 않고 올라가는 상승 시장은 없다. 시장의 자정 작용으로 중간중간 조정 시장이 오기도 한다.
실수요자라면 현재의 규제 정책 및 조정 시장이 좋은 진입 타이밍이 될 것이다. 더 조정되길 기대하겠지만 실제 조정이 될지, 조정된다 해도 바닥이 어디인지 타이밍을 맞추기 쉽지 않다. 5년 전 가격으로 조정되길 기다리다가 기회를 놓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투기지역 내 신규 아파트는 비싼 가격에서 매수한 듯 보여도 결국 또 다른 고점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가 평가한 대로 입지 가치를 이해하자. 정부의 입지 4단계 구분법, 그것이 어떤 전문가보다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입지평가 보고서다.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와 팟캐스트 ‘세상 답사기’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부자의 지도, 다시 쓰는 택리지’(2016) ‘흔들리지 마라 집 살 기회 온다’(2015) ‘수도권 알짜 부동산 답사기’(2014) ‘대한민국 부동산 투자’(2017) ‘서울 부동산의 미래’(2017) ‘서울이 아니어도 오를 곳은 오른다’(2018), ‘지금도 사야할 아파트는 있다’(2019)가 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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