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870년 이후의 세계 경제 상황을 살펴보다 보면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다름이 아니라 저소득 국가의 성장률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예외가 있다. 예를 들어 기나긴 내전을 겪은 나라들은 여전히 생계수준(1인당 국민소득 기준 400달러)을 밑도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다만, 고(故) 앵구스 매디슨 교수가 추진해온 프로젝트에서 1870년 이후 데이터가 끊이지 않고 제공되는 국가를 기준으로 해서 살펴보면 아래 그래프와 같은 관계가 나타난다. (분석 대상이 된 나라는 호주, 오스트리아, 벨기에, 캐나다, 스위스, 독일, 덴마크, 스페인, 핀란드,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미국 등 총 17개국이다.)
그래프의 가로축은 1870년의 1인당 소득을 의미하는데, 단위는 달러이며 2011년 불변 가격 기준이다. 쉽게 이야기해, 예전의 명목 소득을 물가와 환율을 이용해 달러 기준 불변 소득으로 환산한 셈이다. 세로축은 1870년부터 1980년까지의 연 평균 성장률을 나타내는데, 한눈에 저소득 국가들이 빠르게 성장하며 ‘세계적인 소득의 수렴’이 나타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세계는 예전에 비해 훨씬 ‘평평’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우려를 제기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세계적인 무역장벽의 강화가 혹시 저소득 국가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되지는 않을까? 필자 역시 이 점을 우려했는데, 최근 읽은 책 ‘유럽경제사’로 인해 이 우려가 더욱 커지고 말았다.
‘유럽경제사’의 저자들은 지난 110년 동안 세계 경제의 성장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후진적인 경제는 더 적은 자본을 가지고 있으므로 더 높은 (자본투자의) 수익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 높은 투자율은 경제성장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 (중략) 투자와 생산성의 향상 사이에는 매우 강력한 양(+)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중략)
후진적인 나라들은 서비스와 농업 부문의 비중이 크다. 따라서 낮은 생산성을 가진 전통적인 부문에서 높은 생산성을 가진 근대 부문(여기서는 제조업)으로 노동력을 재배치하면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요소는 초기 소득이 낮을수록 경제성장률이 높아질 것임을 시사한다. -책 219~220쪽
이 문장은 경제성장의 핵심적인 요소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 발달된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을 빌려 투자를 시작하고, 생산성 향상 속도가 낮은 산업 부문에 있었던 사람들을 더 생산적인 부문에 재배치함으로써 성장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현상이 ‘항상’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전간기(戰間期)에는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초기에 1인당 소득이 더 높으면 경제성장률도 높았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1914~1950년 사이에 선진국의 기술이 후진적인 나라로 파급되어 가는 가장 결정적인 기제인 무역, 자본, 사람에 대한 개방성이 결여되었다는 사실은 전간기의 소득 격차 확대를 설명한다. (중략)
두 번의 세계대전은 국경을 효과적으로 봉쇄했다. 각국은 예전보다 무역규모가 줄어들었고,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타자에 대한 의심을 키웠다. (중략) 무역분쟁과 민족주의의 재생, 그리고 1929년 이후 높아진 편협한 태도에게 길을 내주었다. 세계 무역은 급격히 감소했고 지적 교환은 감소했다. -책 221쪽
위의 그래프는 전간기(1919~1938년)의 성장률과 1918년의 1인당 소득의 관계를 보여준다. ‘유럽경제사’의 저자들이 묘사한 것처럼, 소득이 높은 국가들일수록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즉, 세계 경제는 매우 불평등해졌던 셈이다.
최근 중국과 미국의 무역분쟁에서 왜 중국이 열세에 처했는지 그 이유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선진국은 이미 많은 물적, 무형적인 자본을 보유하고 있으며 내수시장의 규모도 크기에 무역규모가 축소될 때에도 성장을 지속할 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후진국들은 선진적인 나라로부터 기술을 습득하고 아직 미성숙한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때에만 성장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글로벌 교역에 의존도가 높으며 내수시장이 협소한 한국은 ‘무역분쟁’의 파고가 높아질 때마다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역분쟁이 전간기와 같은 파국적인 악영향을 미치지 않고 봉합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돈과법] 헌법재판관 임명 과정 '복기'하지 않으면 반복된다
· [김대영의 밀덕]
'조선업 지원 강화' 해군 특수전지원함 사업 올 하반기 본격화
·
[홍춘욱 경제팩트] 한 무제의 성공한 경제정책은 어떻게 무너졌나
·
[홍춘욱 경제팩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있다!
·
[홍춘욱 경제팩트] '아시아의 용' 중국은 왜 영국에 뒤처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