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쿠팡이 고명주, 정보람 신임 대표이사를 선임해 김범석 단독대표 체제에서 3인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쿠팡의 대표 체제 변경은 설립 이후 처음이다. 김범석 대표는 회사 경영 방향을 이끄는 전략 기획 부문을, 고명주 대표는 인사 관리 부문을, 정보람 대표는 핀테크 사업 부문을 각각 담당한다.
업계에선 이번 신임 대표이사 선임이 대단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대표 개인이 회사와 동일시되는 스타트업 특성상 대표의 권한 분할이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기 때문. 게다가 쿠팡은 공동대표 체제가 아닌 각자대표 체제를 택했다. 각자대표 체제에선 한 명의 대표가 다른 대표의 동의 없이 회사의 주요 사안을 결정할 수 있다. 김범석 대표의 권한이 대폭 축소된 셈이다. ‘비즈한국’이 이번 쿠팡의 인사에 숨겨진 변화를 짚어본다.
# 핀테크 전문 정보람 대표, 구조조정 전문 고명주 대표
김범석 대표는 1978년생으로 2010년 쿠팡을 설립해 회사의 심장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김 대표는 회사와 동일시되며 강력한 리더십으로 쿠팡을 이끌어왔다. 김 대표는 계속되는 적자 경영에도 2015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게 10억 달러, 2018년 소프트뱅크비전펀드(SVF) 20억 달러 등 외부 투자 유치를 통해 물류 인프라에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왔다.
정보람 신임 대표는 1978년생으로 2014년 쿠팡에 합류해 자체 페이시스템인 ‘로켓페이’ 구축하고 성장시킨 인물이다. 로켓페이 외에도 ‘쿠팡캐시’ 등 핀테크 사업을 이끌고 있다. 외국인 임원을 제외하면 핀테크 관련 조직에서 가장 직급이 높았던 임원으로 알려져 있다.
‘구조조정 전문가’로 불리는 고명주 신임 대표는 1964년생으로 쿠팡이 SVF로부터 20억 달러 투자를 받은 2018년 11월 이후 쿠팡에 합류했다. 고 대표는 하나로텔레콤이 SK텔레콤에 인수될 당시 하나로텔레콤 HR본부장으로 영입됐고 이후 하이트진로, GM 대우 등에서 인사, 조직융합, 기업문화를 담당했다. 고 대표 선임으로 쿠팡의 인력 운영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보, 노림수는?
이번 각자대표 체제 도입은 여러모로 파격적이다. 김범석 대표의 단독 결정이라고 보기엔 지금까지 그의 행보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대표는 “이번 결정은 이사회에서 이뤄졌겠지만 김범석 대표 동의 없이 진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 대표에게 책임을 묻는 접근은 아니라고 본다”며 “물류는 지속적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영역이라 적자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얼마나 빠르게 실적 개선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이때 다른 엔진들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선 김 대표는 지금까지 외국인 임원을 중용했다. 심지어 한국인 직원과의 소통이 중요한 인사 부문이나 한국 법을 알아야 하는 법무 담당까지 외국인 임원을 선임했을 정도. 김 대표가 외국인 임원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측이 뒤따른다.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쿠팡이 글로벌 기업으로서 해외 투자 유치나 나스닥 상장 등을 위해 해외 글로벌 기업 출신을 다수 영입해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각자대표에 오른 두 명의 신임 대표는 모두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쿠팡의 향후 전략에 방향성이 완전히 바뀐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
공격적인 투자를 천명해온 쿠팡이 구조조정 전문가로 통하는 고명주 신임대표를 인사 담당 각자대표로 선임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실제로 고 대표는 하나로텔레콤이 SK텔레콤에 매각될 당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보다 앞서 대우자동차에서는 1995년부터 2001년까지 근무했는데, 2001년 2월 대우자동차는 1750명을 정리해고 하고 이듬해인 2002년 GM에 매각된다.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꼬리표가 고 신임대표에게는 부담스럽고 억울할 수 있는 대목이지만, 갑자기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가 인사를 총괄하는 각자대표를 맡게 된 점은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에 충분하다.
# 공동대표 아닌 각자대표, 왜?
무엇보다 공동대표 체제가 아닌 각자대표 체제를 선택했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각자대표 체제는 한 대표의 결정이 타 대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가 주로 쓰는 전략이다. 각자대표는 다른 대표의 동의 없이 회사의 주요 사안을 결정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쿠팡 관계자는 “조직이 커지면서 영역별로 전문성 강화와 빠른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위해 3인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쿠팡과 같이 상품매입부터 주문, 물류, 배송, 고객관리(CS)까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회사 성격으로 미뤄볼 때, 지원부서 단위로 각자대표를 두는 것은 오히려 빠른 의사결정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각자대표 체제는 책임을 나누어 한 대표가 맡은 부분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하는 반면, 하나의 최종 결정을 내릴 때 내부 이해관계나 생각하는 방향이 다른 경우 합의에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며 “각자대표 체제는 기업 내의 서로 다른 영역의 사업을 강화할 때, 해당 분야 전문가를 영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사 분야 같은 경우는 전문가를 대표이사 밑으로 데려오기 마련인데 아마 내부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게 아닌가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사부문 각자대표 체제가 그간 김범석 대표의 발목을 잡아온 ‘쿠팡맨’ 인사 관리 책임을 덜어주는 효과는 분명해 보인다. 아울러 쿠팡의 핵심 역량으로 평가받는 핀테크 부문을 별도 사업화 하려는 계획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대표는 “쿠팡은 HR(인사관리) 관련 이슈가 있었는데, 김범석 대표의 책임을 줄여줘서 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며 “핀테크는 솔루션화 작업을 통해 별도의 사업을 구상하는 방향으로 가려는 전략이 아닐까 한다. 각자대표는 양날의 검이라서 쿠팡 입장에서도 실험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 회장은 “쿠팡은 손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결국 구조조정을 통한 흑자 전환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각자대표 체제 전환이 리스크 셰어링(위험 분담), 경영의 전문화로 단위 이익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핫클릭]
·
'적자 1조 원' 감사보고서에 드러난 쿠팡에 대한 궁금증 세 가지
·
수면유도제 '멜라토닌' 못 구해 잠 못 이루는 사연
·
[현장] "비정규직 70%, 아파도 못 쉰다" 노조가 밝힌 쿠팡맨의 현실
·
시급 2.5만 원은 '미끼'였나…쿠팡플렉스 과대광고 논란
·
'바지락 샀는데 스티로폼이…' 새벽배송 과대포장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