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애플과 퀄컴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전쟁을 멈췄다. 다소 의외의 일이다. 두 회사의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특허 사용권에 대한 문제지만 사실 한 꺼풀 벗겨보면 다소 독점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퀄컴의 모뎀 공급가를 둔 자존심 대결에 가깝다.
# 애플의 선전포고, 전쟁의 시작
처음 이 문제를 꺼낸 건 애플이다. 애플은 퀄컴이 모뎀의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했고, 타사의 제품을 쓰지 못하도록 독점 계약까지 강요했다는 것이다. 애플은 인텔의 모뎀을 함께 공급받고자 했지만 퀄컴은 계속해서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결국 애플은 과도한 퀄컴의 칩 가격과 라이선스 사용료를 인정할 수 없다며 소송을 걸었다. 이에 퀄컴은 애플이 퀄컴의 특허를 침해하고 중요한 기술들을 경쟁사에 빼돌렸다며 맞소송에 나섰다. 최근 특허 소송은 한 국가가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한다. 비즈니스 자체가 여러 시장을 무대로 할 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 차츰차츰 법적 해석을 받으면서 우위를 다져가는 전략이다.
이번 소송 역시 미국뿐 아니라 유럽, 중국 등 커다란 시장으로 동시에 번졌다. 특히 퀄컴은 제품 판매 중단을 요구했는데 중국과 독일 법원은 아이폰6S부터 아이폰X까지 구형 제품들의 판매 중단을 명령하기도 했다.
2년 가까이 끄는 동안 소송전은 강도를 더해갔다. 애초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피해 주장 금액은 커졌다. 양측의 손해도 적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과 무역 갈등을 겪으면서 애플을 공격했는데 애플은 이 특허 침해 판결과 더불어 중국 시장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공들였던 중국 시장이 흔들린 것이다.
퀄컴 역시 매출과 순익이 크게 떨어졌다. 퀄컴의 매출 가운데 상당 부분이 애플과 관련 있다. 소송이 이어지면서 애플이 퀄컴에 라이선스 비용 지급을 중단하고 아예 자체 모뎀으로 100% 전환하면서 퀄컴도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2017년 소송 초반에는 순익이 90%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애플만큼 많은 칩을 사주는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자존심 싸움으로 번진 터라 어느 한쪽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당장 4월 16일부터 두 회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변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소송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두 회사가 전격적으로 합의를 발표했다. 정확한 조건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퀄컴은 애플에 6년 동안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모뎀 칩을 납품하기로 계약했다.
# 인텔의 5G 스마트폰 모뎀 사업 철수
공교롭게도 이 발표 직후 인텔은 ‘2020년으로 예고했던 스마트폰용 5세대 이동통신(5G) 모뎀을 내놓지 않는다’고 밝혔다. 5G 모뎀 사업을 철수한다는 이야기다. 밥 스완 인텔 CEO(최고경영자)는 스마트폰 모뎀 사업에서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애플-퀄컴의 합의와 연결 짓지는 않았지만 함께 묶여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인텔은 거의 독점적으로 애플이라는 확실한 공급처를 갖고 있었다. 스마트폰 전체 시장으로는 퀄컴이 압도적이지만 인텔은 모뎀이라는 철저한 B2B 비즈니스에서 가장 안정적인 공급처를 쥐고 있었고, 심지어 5G를 계기로 모뎀 시장에서 퀄컴과 나란히 경쟁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사실상 새로운 통신망이 깔리는 상황은 노하우뿐 아니라 특허 라이선스 같은 복잡한 문제를 모두 제쳐두고 똑같은 출발점에 설 수 있는 기회다.
확실한 공급처가 있고, 5G에 대한 원천 기술 특허를 상당 부분 갖고 있는 데다가 반도체 업계의 압도적 1위 기업인 인텔이 이제 막 첫 발을 뗀 비즈니스에서 손을 든 것은 다소 의외다. 시장 가능성을 논하던 인텔이 당장의 수익성을 두고 준비하던 비즈니스를 내려놓는 것도 낯선 모습이다. 어쨌든 이 결정으로 인텔은 모바일 시장에서 프로세서와 모뎀 등 모든 반도체 비즈니스를 내려놓았다.
인텔은 애플과 퀄컴의 합의가 5G 모뎀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날 발표가 이어졌고, 인텔 모뎀을 대부분 구입해 가는 애플, 그리고 날카로운 경쟁 상대인 퀄컴이 얽히면서 서로의 연관성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 애플과 퀄컴 그리고 인텔의 묘한 관계
먼저 퀄컴과 애플이 합의를 이루면서 인텔이 모뎀 개발, 생산 비용 면에서 당장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사업을 내려놓는다는 해석이다. 5G 모뎀을 염두에 두고 있는 애플 입장에서 LTE와 달리 퀄컴이 제시한 5G 모뎀의 가격이 좋았고, 공급량도 괜찮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인텔은 2020년에 칩을 내놓을 수 있게 됐고, 당장 초기 가격을 퀄컴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기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텔이 퀄컴과 별개로 2020년까지 애플이 원하는 수준의 모뎀을 공급하기 쉽지 않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특히 양산의 핵심인 성능과 수율 안정성 등에서 시간을 맞추기 어렵고, 퀄컴이 이미 공급을 시작했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어쨌든 인텔 역시 사업 중단 결정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애플과 어느 정도 협의가 이뤄지면서 그 발표 시기를 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애플 역시 퀄컴과 맞서서 싸울 수 있는 힘이 인텔에서 나오고 있었기에 인텔의 모뎀 사업 포기는 애플에게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화웨이의 손을 빌리기 어렵고.
결국 애플과 퀄컴은 합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을 수 있다. 이번 짧은 발표에 섞인 ‘라이선스 계약 2년 연장’은 이런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어쨌든 인텔은 LTE 모뎀은 계속 사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지만 아이폰이 5G로 전환되면 자연스럽게 인텔 모뎀은 시장에서 물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5G 제품 출시를 서두르기 위해 퀄컴과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애플은 당장 5G 아이폰을 내놓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인텔이 2020년을 언급하긴 했지만 애플이 2020년에 5G 아이폰을 내놓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5G는 이제 아주 일부 지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고 대중화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하다. 애플은 비슷한 이유로 LTE도 상당히 늦게 도입한 바 있다. 특히 5G는 통신망의 안정뿐 아니라 당장 스마트폰에 적용돼야 할 필요성에 대한 대중적, 사회적 설득도 필요하다. 5G는 단순히 다운로드 속도가 빠르다는 것으로 경험의 변화를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스마트폰보다 5G 기반 인프라와 서비스가 더 시급한 상황이다. 당장 우리나라도 급하게 문을 연 5G 서비스를 쓸 수 있는 지역이 제한되고 불안정한 통신 상황을 보이면서 통신사뿐 아니라 단말기 제조사도 덩달아 볼멘소리를 듣고 있다. 변화에 대해 경험 변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애플이 자리 잡히지 않은 5G를 서두를 이유는 없다.
최호섭 IT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5G 상용화 '세계 최초' 타이틀은 어쩌다 반쪽이 됐나
·
[현장] 다국적 자본에 맞선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생존전략은?
·
글로벌 여행 앱, 한국에서 세금은 내고 장사하시나요?
·
[산호세 현장] '바보야, 문제는 서비스야' 애플 키노트의 행간
·
[산호세 현장] '애플 아케이드'로 드러난 플랫폼의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