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는 많이 팔리는 약이나 기술개발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환자 맞춤형 서비스’에 주목한다. 돈만 있으면 모든 의료 서비스를 누릴 것 같지만 늘 사각지대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노리는 전략이다. 환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내놓아 기업의 신뢰도를 높이고 결과적으로 수출 창구를 손쉽게 마련할 수 있다.
‘바이오코리아 2019(BIO KOREA 2019)’에서도 이러한 전략에 집중하는 기업이 다수 참여했다. 충청북도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공동 주최한 바이오코리아 2019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17일 개막했다. 이번이 14번째로 대형 제약사인 유한양행부터 바이오 스타트업까지 국내외 총 300여 기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신약과 의료기기, 재생의료 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며 제약·바이오산업에 힘을 실었다.
# 인공지능 기반 ‘환자 맞춤형 서비스’가 최대 화두
업계에서 화두가 되는 환자 맞춤형 서비스는 거창한 게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미충족 수요’가 높은 질환을 발굴하는 것을 말한다. 개인마다 생활습관이나 유전체 정보가 달라 기존의 약물이나 기술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이렇게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을 포착해 이들을 겨냥한 약이나 기술을 제공한다. 유난히 약물 흡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위해 약효를 지속시키는 약물전달 기술을 개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설립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세닉스바이오테크(CENYX BIOTECH)’도 현재 지주막하출혈 초기 응급의약품을 개발하는 데 한창이다. 지주막하출혈은 뇌의 큰 혈관이 터져서 생기는 질환인데 초기에 지주막하 공간 내로 퍼진 혈액이 일으키는 염증 반응을 잡지 못하면 사망으로 이르는 경우가 많다. 세닉스바이오테크가 개발 중인 의약품은 뇌출혈이 발생했을 때 염증을 잡아주는 정맥주사제다.
세닉스바이오테크 관계자는 “대표로 있는 이승훈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가 현장에서 지주막하출혈 환자들이 수술 전 대기시간 동안 뇌 손상을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것에 주목했다”며 “아직 전 세계적으로 뇌출혈은 수술로만 치료되고 있고 그 전에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다. 시판되면 해외에서도 수요가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스핀오프한 기업인 웰마커바이오(WELLMARKERBIO) 관계자도 “치료 반응을 예측해주는 바이오 마커라는 기술을 기반으로 환자 맞춤형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며 “기존 치료제에 저항성을 보이는 폐암 환자를 위한 신규 항체항암제가 대표 파이프라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맞춤형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 제약·바이오 기업은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환자들이 이제는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걸 넘어서서 질병을 예측하고 예방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AI가 유용하게 활용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7년 8월에 발간한 ‘제4차 산업혁명에 조응하는 보건의료체계 개편 방안’에 따르면, AI 알고리즘을 활용할 경우 진단 성과는 41.9% 향상되고 의료비는 58.5% 절감되는 것으로 예측됐다.
의료영상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메디컬아이피(MEDICAL IP) 관계자는 “보통 MRI(자기공명영상촬영)나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으면 영상이 2D로 나와서 (환자의)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화면이 3D로 구현돼 수술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 허가 절차보다 차라리 기술 개발이 더 쉽다
이들 업체들도 고민이 많다. 의료기술이나 신약을 개발하더라도 시중에 판매하기까지 밟아야 하는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새로운 약이나 의료기술을 개발했을 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증을 받기도 힘들고, 인증을 받는다고 해도 수가를 책정하는 게 만만찮다는 반응이다.
특이한 점은 규제 샌드박스 1호 제품을 내놓은 휴이노(HUINNO)조차도 의료기기 인허가 과정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 휴이노가 개발한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 ‘메모워치’는 ICT 규제 샌드박스 1호로 선정됐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되기 전 제품 시험·검증 기간 동안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다. 휴이노는 웨어러블 장치에서 얻은 환자의 데이터를 병원에 있는 의사가 직접 받아 볼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그 전에는 웨어러블 형태의 의료기기 관련 법령이 없어서 혼선을 빚었다.
휴이노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의료보험체계다. 그런데 기업들이 새로운 의료기기를 만들어도 의료수가 책정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관련 법 체계를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규제 샌드박스도 한정된 기간 내에 적용되는 부분이다. 오히려 기술 개발은 어렵지 않다. 인증을 받고 시판하기까지의 과정이 까다로운데 이걸 기다리는 게 우리의 숙제다”라고 털어놓았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아직 초기이다 보니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부분은 있지만 아직 의사들과 환자들이 신의료기술을 사용해도 좋다는 인식이 미비한 것 같다”며 “같은 의료기기를 두고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기술연구원의 관점이 달라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개발 과정에서) 이런 부분이 어려웠다”고 전했다.
제약·바이오업계의 또 다른 화두는 해외 사업 확장이다. 기존 약이나 기술에 한계를 느끼는 국내에서의 미충족 수요가 해외에도 비슷하게 존재하는 만큼, 더 넓은 시장으로 진출해야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 상당수는 신약 후보물질을 기술 수출하는 라이선스 아웃(License Out)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임상시험을 거치는 데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이 적잖기 때문에 차라리 판권을 넘기고 상업적 대가를 받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부대 행사로 마련된 ‘성공적인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 및 사업개발 전략 수립’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미국의 바이오의약품 회사인 넥타 테라퓨틱스(Nektar Therapeutics)가 BMS 제약(Bristol-Myers Squibb)과 사상 최대 규모의 협력을 맺을 수 있었던 계기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국제 로펌 시들리 오스틴(SIDLEY AUSTIN LLP)의 법률전문가는 “넥타 테라퓨틱스와 BMS 제약의 협상은 사상 최대 규모의 딜이었다. 넥타는 임상을 계속 진행하고 있었기에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그 결과 투자가 이뤄졌다”며 “해외 제약사에게 경제적 편익을 입증받는 게 중요하다. 국내에서의 상업적 권리를 유지하는 게 좋은 시사점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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