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양대 국적기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자사의 발권 시스템을 여행사에 강요해 항공권을 독점 공급하는 방식에 여행사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이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두 항공사가 출범할 때부터 이어진 십수 년도 넘은 ‘관행’이지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권 예약 강제 행위를 조사하면서 다시 이슈로 떠오를 조짐이다. ‘비즈한국’이 심층 추적했다.
# 해외에선 하나로, 국내에선 대한·아시아나 각각
여행사들은 보통 항공권 발권 시 항공사와 직접 거래하지 않고 항공예약발권 시스템인 GDS(Global Distribution System)를 사용한다. GDS에서 전 세계 항공 스케줄과 요금 정보를 확인하고 발권할 수 있다. 즉 GDS는 항공사와 여행사를 연결하는 항공권 판매 중개 시스템이다. GDS는 항공권이 발권될 때마다 항공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글로벌 GDS로는 아마데우스(Amadeus), 세이버(Sabre), 갈릴레오(Galileo) 등이 대표적이다. 전 세계 여행사는 이 중 하나의 시스템을 사용해 항공권 발권 업무를 진행한다.
그런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각 사에서 출자한 자회사를 통해 자사의 항공권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공급한다. 한진그룹은 아마데우스와 합작 설립한 토파스여행정보를 통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세이버와 합작 설립한 아시아나세이버라는 자회사를 통해 각각 자사의 항공권을 실질적으로 독점 유통한다.
예를 들어 GDS를 편의점, 항공권을 진열된 상품들이라고 해보자. 모든 편의점에서 같은 상품을 볼 수 있지만, 특정 상품은 구경하는 것만 되고 최적의 구입은 그 기업이 소유한 편의점에 가야 할 수 있다. 대한항공 항공권을 발권하려면 토파스에서 해야 하고, 아시아나의 항공권 발권은 세이버에서 한다.
반대로 토파스에서 아시아나의 항공권을 발권하거나 아시아나세이버에서 대한항공 항공권을 발권하는 일은 거의 없다. 결국 여행사로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GDS 두 개를 모두 이용해야 한다.
온라인 항공검색 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전 세계 온라인 여행사들은 글로벌 GDS가 만든 항공검색엔진 중 자사에 가장 적합한 것을 하나 선정해 사용하면 되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이원화 때문에 온라인 항공예약 서비스의 후진성과 항공검색시스템이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 각자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로 발권사는 쑥쑥
여행사 관계자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경쟁력 있는 특가 상품을 자회사 GDS에서만 노출하고 발권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즉 항공운임데이터를 일원화하지 않고 자신의 자회사에 더 유리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여행사들이 토파스와 아시아나세이버를 모두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회사를 통해 발권을 하는 만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GDS회사에 내는 발권수수료를 타 GDS에 뺏기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올 수 있다. 일종의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토파스여행정보와 아시아나세이버는 매년 상당한 이익을 남기고 있다.
토파스여행정보의 2018년 영업수익(매출)은 약 376억 원, 영업이익은 약 168억 원이다. 전년 대비 영업수익은 약 20억 원, 영업이익은 약 26억 원 증가했다. 토파스는 지분 94.4%를 (주)한진칼이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나세이버의 2018년 매출은 약 288억 원, 영업이익은 80억 원이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시아나세이버는 아시아나항공이 지분 80%를 갖고 있다.
여행업계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GDS 사업을 두 가지 목적으로 본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그 목적을 “첫째는 오너 일가를 위한 수익 사업, 다른 하나는 여행사들에게 자사 항공권을 우선 발권하게 유도해 타 항공사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30여 년간 여행업계에 몸담아온 또 다른 여행사 대표는 “담당자가 두 시스템을 모두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비효율은 말할 것도 없고 상황에 따라 다른 시스템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이 크다”며 “특히 아시아나항공은 국내 점유율이 크지 않아 그나마 있는 시장 수요를 뺏기지 않기 위해 강제하는 것이 많다. 그 안에 자사의 항공권을 타사 항공권보다 우선적으로 팔기 위한 꼼수도 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사가 자회사로 GDS를 설립하는 게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 이용을 강제하는 것이 문제다. 갈릴레오를 쓰고 싶어도 대한항공 발권 시엔 토파스를, 아시아나항공 발권 시엔 아시아나세이버를 써야 한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 아시아나항공, 공정위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예정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이 건에 대해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과 아시아나세이버에는 곧 시정명령과 과징금이 부과될 예정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3조 제1항 제4호에 따라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와 구입 강제 행위에 해당한다. 항공사의 지위를 남용해 여행사의 선택권을 제한했다는 것. 공정위는 이것을 불공정 거래로 강제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한 여행사의 신고로 아시아나항공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도 같은 사안이 아니냐는 ‘비즈한국’의 질문에 공정위는 “해당 건은 신고에 의한 조사였기 때문에 대한항공에 대한 조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검토할 사안이라면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항공권 시장은 애초에 공정함 같은 건 없었다. 항공사가 태동할 때부터 몇십 년간 이어진 관행이 쉽게 바뀔 거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항공사는 여행사에게 영원한 ‘갑’일 뿐”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항공권 발권에 관한 것은 경영전략의 일종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스카이스캐너나 네이버항공권처럼 메타서치(항공권가격비교 시스템)가 활발해 항공사와 소비자 간 직거래가 이루어지는 시대에 GDS에 대한 논의는 걸맞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매각 문제로 내부 사정이 복잡하다. 여행사들은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이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아시아나항공의 발권시스템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품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17일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핫클릭]
·
'전면전 롯데 vs 용병 신라' 한국 호텔들의 색다른 베트남 상륙작전
·
베트남 다낭은 어떻게 한국인 '최애' 해외여행지가 됐나
·
글로벌 여행 앱, 한국에서 세금은 내고 장사하시나요?
·
한국 여행시장은 어쩌다 '미-중 앱 전쟁터'가 됐나
·
'항공권은 생명줄' 항공사-여행사 갑을관계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