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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계 시선으로 본 낙태죄 폐지 후 의료시장

의료·제약 "대체적으로 환영"…낙태 관련 의료시장 확대 가능성은 "제한적"

2019.04.12(Fri) 17:15:00

[비즈한국] 66년간 유지된 낙태죄가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고 이를 위반했을 때 처벌하도록 한 현행법 조항이 헌법에 불합치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진 것. 의료계와 제약업계 그리고 의료분야 스타트업에는 말 못 할 묘한 기대감이 퍼진다. 다만 아직 업계에서는 ‘표정 관리’를 하는 모양새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는 산부인과 의사 A 씨가 형법 269조와 270조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형법 269조는 낙태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자기낙태죄’, 270조는 의사가 동의를 받아 낙태 시술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이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는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고 이를 위반했을 때 처벌하도록 한 현행법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사진=고성준 기자


이때까지는 모자보건법 14조에 따라 본인이 유전학적 질환이 있거나 강간당해 임신이 된 경우 등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든 낙태가 전면 금지됐다. 해당 예외사항마저도 15조에 의해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국회는 낙태 결정 가능 기간을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 사회적·경제적 사유로도 낙태를 허용한다면 그 사유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등을 논의해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선 입법을 거쳐야 한다. 2021년 1월 1일부터 낙태죄 관련 조항은 완전히 효력을 상실한다.

 

# 의료계 “헌법재판소 결정 환영”

 

의료계는 대체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이때까지는 임신중지를 필요로 하는 여성의 강력한 요청으로 의료인이 낙태 시술을 해도 ‘비도덕적인 의료행위’로 간주됐다면, 앞으로는 오명을 벗을 수 있어서다. 빈번한 음성적 낙태 시술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8년 9월 20일부터 10월 30일까지 만 15~44세 여성 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낙태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약 5만 건의 낙태 수술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산부인과 의사들은 의사와 여성에게만 책임을 전가해온 (낙태)법에 대해 수차례 문제를 지적했다. 태아에 이상이 확인돼도 수술을 할 수 없었는데 이는 의학적으로 옳지 않다”며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합의에 맞게 법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의료계는 대체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환영한다. 임신중지는 필수적인 의료행위다. 그 어떠한 피임법도 성공률이 100%는 ​아니다”며 “낙태죄로 인해 한국에서는 오랜 기간 안전한 임신중지의 제공이 어려웠다. 공공의료기관을 통해 교육받은 의료진이 안전한 임신중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말을 아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아직 낙태죄에 대한 대한의사협회의 공식 입장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오랫동안 논의 중이다”고만 밝혔다.

 

가톨릭계 병원에서는 이전과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가톨릭대병원 관계자는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병원이 가톨릭재단이라 크게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이 부분(낙태죄 폐지)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아직 나온 얘기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를 두고 김동석 회장은 “의사의 개인 신념에 따라서 진료 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 제약업계, 사후피임약 접근성 기대감

 

제약업계에서는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며 전문의약품으로 규정된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재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됐기 때문. 

 

사후피임약은 성관계 후 72시간 이내에 복용해야 하는 긴급피임제인데 우리나라는 의사의 처방이 필수라 접근성을 제한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재 국내에 전문의약품으로 판매되는 사후피임약은 현대약품의 노레보정, 명문제약의 레보니아원정 등 10개 제약사의 13개 제품이다.

 

사후피임약을 의사의 처방 없이 복용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재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됐다. 현대약품의 사후피임약 노레보원정. 사진=현대약품 제공


식약처 관계자는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려면 의약품 재분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후피임약은 2012년과 2016년에 두 차례 의약품 재분류 심의를 거쳤는데 모두 무산됐다. 종교계의 반발과 처방권을 확보하려는 의사들의 움직임이 컸기 때문”이라며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오면서 다시 (사후피임약에 대한) 검토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결정이 어제 났기 때문에 조금 시간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프진(미페프리스톤)’ 수입이 이뤄질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미프진은 프랑스 루셀 위클라프(Roussel Uclaf)사에서 1980년대에 개발한 임신중절약이다. 의료계와 제약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미프진이 수입된다면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될 확률이 높다.

 

강아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부장은 “이번 헌재 결정으로 임신중절약이 도입될 것이라고 본다. 이때까지는 낙태가 한국에서 불법이었기 때문에 아예 (제약사나 식약처가) 수입 허가를 받으려는 노력을 안 했다”며 “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 입장에서는 수술보다 임신중절약을 먹는 게 안전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임신이 질병은 아니기 때문에 만약 미프진이 수입되면 보험 적용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임신중절약이 수입될 것이라 내다본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시위하는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그러나 제약사가 임신중절약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정책이 바뀌어서 수요가 늘어나도 회사의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며 “수입을 해서 허가를 받으려면 수요가 있어야 하는데 (수요가) 몇만 건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 고혈압치료제 등 다른 약 시장에 비해 수입을 해서 수익을 낼 정도로 큰 시장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제약사들이 낙태 시장을 노리려 신약 개발을 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예상한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전무는 “전 세계의 질환을 상대로 신약을 개발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는 신약을 개발하는 전략을 세우지는 않는다”며 “신약은 시장에서의 성공이 중요한데 제약기업의 관심도가 그렇게 높지 않을 것 같다. 해외에서 안전성이 입증된 약들을 수입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 의료 스타트업 “상당히 제한적일 듯”

 

의료계 스타트업들은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을 두고 업계에 미칠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낙태 시장의 니즈는 명확하고 수익성이 있는 시장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상당히 제한적인 시장일 것 같다”며 “의료행위 자체는 본질적으로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라고 본다. 스타트업이 생겨나더라도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낙태가 가능한 산부인과의 정보를 알려주는 정도에 그칠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른 스타트업 대표도 “미국에 임신 전 유전자 검사(pre-conception test)가 있는데, 카운실(Counsyl)이란 회사가 시장을 개척해 미국 신생아 부모의 4%가 이미 이 서비스를 받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유전병을 가진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일은 부모의 인생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그 선택권을 원하는 사람에게 준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낙태 시장을 겨냥한 스타트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데는 부정적이다. 시장 규모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한 유전자 검사 업체 관계자도 “산전 유전자 검사는 낙태죄 헌법 불일치 결정 이전에도 거의 모든 산모가 필수적으로 하는 검사라서 (시장 확대에) 영향이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과거에는 아이가 장애판정을 받는다고 해서 이렇다 할 합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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