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음악과 디저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건조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입가심하기에 적당하다는 것. ‘가토 드 뮤지끄(gâteau de musique)’는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뮤지션과 디저트를 매칭해 소개한다.
벚꽃이 폈다. 이맘때쯤이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봄바람과 봄비가 꽃잎을 모두 앗아가기 전에 목련을, 개나리를, 벚꽃을 보고 싶다. 조금 추워도 조금 더워도 봄옷에게 봄바람을 맞혀줘야 한다.
2월의 밸런타인데이, 3월의 화이트데이, 새 학기, 소개팅 등등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기적같이 손 맞잡고 함께 걸을 사람이 생겼다면 공기가 포근한 4월부터는 본격적인 데이트가 시작된다. 꽃놀이는 아주 좋은 데이트코스다.
꽃놀이를 갈 때 곁들일 가토로는 컵케이크가 일등이다. 프랑스식 쁘띠가토는 온도에 민감하고, 툭 치면 와르르 무너지기 일쑤라 불안한 마음으로 신주단지 모시듯 공손하게 들고 다녀야 한다. 컵케이크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덜렁덜렁 들고 다니며 꽃놀이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는 찰나 저쪽 어디선가 ‘빰빠밤 빰빠밤’ 나팔소리가 들린다. 왠지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모포를 개고 옷을 입어야 할 것만 같은 나팔소리엔 좋은 기억이 없다. 이 좋은 계절에 누가 나팔소리를 내었는가? 블랙핑크가 나타났다!
언젠가 블랙핑크가 신곡을 내면 꼭 함께하리라 다짐했던 케이크가 있다. ‘치카리셔스(Chikalicious)’의 블랙핑크다. 블랙핑크가 세상에 나타나기 전부터 치카리셔스엔 블랙핑크가 있었다. 검은색 초코 시트 위에 핑크색 크림치즈가 올라간 컵케이크.
안타깝게도 치카리셔스의 블랙핑크는 스테디셀러가 아니었다. 경쟁이 치열한 치카리셔스의 컵케이크 진열대에서 두문불출하던 블랙핑크가 좀 더 강력하고 화려한 색의 ‘모던로즈’로 다시 태어났다. 이번 블랙핑크의 신곡, ‘Kill This Love’는 바로 이 ‘모던로즈’와 함께 한다.
경각심을 일깨우는 나팔소리와 함께 나팔로 만들어진 웅장한 성전에서 ‘Kill This Love’가 시작된다. 강력하고 묵직한 트랩 비트 위에서 거지같은 사랑에 물먹은 이야기를 내뱉는다.
BLACKPINK - Kill This Love
‘너 연애 안 해?’ ‘너 남자친구 없어?’ ‘너처럼 예쁜 애가 왜 남자친구가 없어?’와 같은 말로 구성된 압박. 둘이 아닌 하나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거짓말.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의무처럼 지워지는 사랑. 거짓말로 점철된 사랑 속에서 나약해지는 자신. 이 모든 것을 블랙핑크는 죽여버린다. 고통을 참지 않고, 어떻게든 이어가려 애쓰지 않고 그냥 죽인다.
그 거짓된 사랑을,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나약해진 자신을 죽인다. 심장을 쪼개고, 나약한 하얀색은 강인한 검정으로 바뀌며, 발로 차고, 집어던지고, 차로 치고, 불화살로 쏘고, 대포를 쏘는 듯한 안무로 죽인다. 그리고 종국에는 ‘샤방한’ 원피스 대신 제복과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가 떠오르는 기능성 디자인이 섞인 의상을 입고 마칭밴드와 함께 사랑을 죽이는 의식을 마무리한다.
블랙핑크의 이 웅장한 퍼포먼스는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이들을 응원하는 팬들과 맞닿아있다. 이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 공개된 지 고작 4일이 지났는데 조회 수가 1억 2000만이 넘었다. 이제 한국의 걸그룹은 몇 명 안 되는 오빠에게 사랑을 갈구하거나, 애교를 부릴 이유가 없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살자고 이야기하는 존재가 되었다.
방탄소년단(BTS) 이후 주류 팝시장을 노리는 한국 아이돌의 전략은 명확하다. 유행하는 힙합비트와 하우스, EDM의 박자와 스타일을 섞고 예전부터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랩과 멜로디를 얹는다. 역시 케이팝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인 빠르고 화려하며 칼같이 정확한 군무와 주목받는 셀럽에 걸맞은 의상과 액세서리. 거기에 요즘 유행하는 색감과 스타일이 가득한 화려한 뮤직비디오까지. 세계의 트렌드와 한국의 장점이 축약된 결과물이 바로 한국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라 할 수 있다.
블랙핑크의 ‘Kill This Love’ 뮤직비디오 또한 이 공식이 착실하게 담긴 작품이다. 블랙을 기반으로 핑크를 쌓아 올리는 블랙핑크만의 강력한 색채는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블랙핑크는 그들만의 색깔로 아시아는 물론 북미나 유럽에서도 경기장급 투어를 돌 수 있는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블랙핑크의 제니는 ‘인간 구찌’ ‘인간 샤넬’로 불리기도 한다. 블랙핑크의 이 뮤직비디오 속에는 2019년 최신 유행이 가득하다. 꽃놀이 갈 때 참고할 만한 아이디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Kill This Love’ 뮤비 속 패션 트렌드.
필자 이덕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두 번의 창업, 자동차 영업을 거쳐 대본을 쓰며 공연을 만들다 지금은 케이크를 먹고 공연을 보고 춤을 추는 일관된 커리어를 유지하는 중. 뭐 하는 분이냐는 질문에 10년째 답을 못하고 있다.
이덕 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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