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이 데리고 시위에 가보는 게 어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은데.” 남편이 제안했다. “나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수업을 빼고 가야 해서, 고민 좀 해보자.”
요즘 독일을 비롯 유럽 주요 국가와 도시에 번지는 학생들의 ‘휴업 시위’를 두고 우리 부부가 나눈 대화다. 지난해 여름, 스웨덴의 학생인 그레타 툰버그가 금요일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스웨덴 국회의사당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면서 전 유럽과 주요 도시로 퍼져 나간 ‘금요일 휴업 시위’는 기후변화 관련 조치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자발적 행동이다.
시위 참여 학생들의 요구는 이렇다. 지구온난화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시기 기준인 섭씨 2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세계 196개국이 2015년에 합의한 파리기후협약을 세계 지도자들이 나서서 지켜야 한다는 것. 시위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강력한 캠페인 성격을 띠는 학생들의 휴업 시위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이라는 캠페인 그룹을 탄생시켰고, 각 나라 각 도시별로 ‘따로 또 같이’ 금요일 휴업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툰버그는 매주 금요일 학교를 빠지고 시위를 했지만, 전 유럽권으로 확장되면서 도시마다 특정 금요일로 날짜를 정해 학생들이 집결해 시위를 벌이는 형태로 바뀌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 모임의 베를린 시위 일정을 보니 5월 14일 토요일 오전이 가장 가까운 휴업 시위 일정.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그것도 ‘기후’와 ‘환경’이라는 이슈로 학교까지 ‘빼먹으며’ 어른들을 압박하는 시위 뉴스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된 나는 사실 남편이 제안하기 전 이미 우리 아이도 참여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럽에 사는 나는 솔직히 한국에 살 때보다 기후·환경 문제에 둔감해진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 겪던 미세먼지 이슈를 생각하면 이곳 공기는 깨끗한 편이고, 겨울의 이상 고온 현상도 지내기에는 편했다. 다만, 한국에 있는 가족과 연락할 때는 안부인사에 ‘미세먼지 정도’를 체크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한국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숨쉬는 ‘생존’ 문제부터 걱정인 상황이 됐다. 단순히 생각하면 한국이 더 시급해 보이는데 유럽에서 학생들 중심으로 환경 관련 시위가 퍼져나가는 게 나에겐 꽤나 인상적이다.
전 세계가 직면한 기후 문제를 둘러싼 심각한 환경문제를 공론화한다는 점에서 당연히 지지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시위 방식에 반대 의견이 있는 건 수업을 빼먹고 한다는 점 때문이다. 휴업 시위를 주도하는 학생들의 입장은 기후와 환경 문제 등이 야기하는 절망적인 미래에서는 공부도 다 소용이 없다는 취지에서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한 ‘조치’이지만, 어른들의 입장은 찬반이 갈린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지를 선언한 반면, 메르켈 총리와 같은 당인 안야 카를리첵 교육부 장관은 좋은 이슈라도 수업을 빼먹는 건 정당성이 없다고 발언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입장 차이가 분명하다. 부모들은 지지세력 쪽이 적극적이다. 독일에서는 학생 시위를 지지하기 위한 부모 단체인 ‘미래를 위한 부모(Parents for future)’가 설립돼, 수십 개의 지역 단체까지 생기고 수많은 부모와 어른 세대가 동참하는 등 자신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나선 청소년들의 시위에 동조를 보낸다.
그들이 동조하는 이유는 하나다. 어른 세대에 망쳐진 환경 문제로 아이들이 미래에 감당할 것이 많다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때문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관련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나는 ‘한국에서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일각에선 학교를 ‘땡땡이’ 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악용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수업에 빠지는 자체를 ‘일탈행위’로 보는 어른들이 많지 않을까. ‘너희들의 요구가 옳더라도, 방법이 옳지 않다’는 식의 훈계가 보편적인 의견 아닐까. 나부터도 아이가 금요일 수업에 빠져야 하는 문제를 걱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한국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서 의견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 엄마들의 생각이 비슷했다. ‘좋은 취지지만, 학교를 빠지지 않고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식. 그때 한 엄마의 말이 씁쓸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수업에 빠지고 갈 수 있죠! 다만 그 아이는 진로가 환경과 연관돼 있어야 하고, 시위 이력이 자기소개서나 학종(학생부종합전형)에 반영된다면 말이죠!”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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