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부르고스의 새벽 어스름이 펼쳐졌다. 왼쪽 정강이 부위가 시큼했다. 통증은 어떻게 매번 아침마다 다른 곳에 찾아오는지 모를 일이다. 산타마리아 대성당이 전날 낮과 달리 음울한 매력을 내뿜고 있었다. 계속 보고 있자면 뭔가에 홀려서 그 속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었다. 저 멀리 회색빛 구름 사이로 동이 트고 있었다. 찰나의 경관을 놓칠 수 없어 성당 옆에 잠깐 우두커니 서 있기로 했다.
많은 사람이 부르고스에서 휴식하며 하루를 더 묵는데,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새 통증에 적응됐다. 등허리를 15도 정도 기울인 채로 배낭을 고쳐 멨다. 오늘은 27.5km 코스, 아로요 산 볼(Arroyo San Bol)에서 묵기로 했다. 아로요 산 볼은 ‘수수께끼 가득한 마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고, 오래되고 구식인 알베르게 하나만 풀숲에 덩그러니 있다. 전염병 때문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설도 있다.
아로요 산 볼에 도착했을 때 유의해서 살펴보지 않으면 알베르게를 그냥 지나칠지도 모른다. 미리 밝혀두건대 내가 그랬다. 알베르게가 어디 있는지 못 찾아서 예정보다 6km를 더 걸어야 했다. 듣기론, 샤워하는 게 불편하고 먹을 게 한정적이지만 고요하고 호스피탈로(알베르게의 자원봉사자)가 친절해 만족스럽다고 했다. 이색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하루쯤 들려볼 만하다고.
# 걸은 지 13일째, ‘김치찌개 결사대’ 결성
걷기 시작한 지 13일째. 딱 이때쯤이면 몸과 마음이 순례길에 적응한다. 어떤 심오한 의미를 찾기보다는 좀 더 원초적이고, 단순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오늘 점심은 뭐 먹지? 오늘 저녁은?’이 그 중 하나다. 순례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화두다. ‘왜 걷느냐’보다 ‘뭐 먹을 거냐’는 질문 빈도가 높아지는 시기다. 보통 이런 대화가 오간다.
“너 오늘 어디까지 가니? 거긴 스테이크 맛집이 있단다. 내가 알려줄게 꼭 먹어봐.”
점심에 김치찌개를 먹자는 제안을 받은 건 주익이를 만났을 때였다. 주익은 용감하게 혼자서 길을 걷는 스무 살로, 순례길 첫 날 만났던 인연인데 3일 차에 헤어졌다. 길 위에서 다시 만나 반갑다며 인사를 나눈 뒤 주익이가 꺼낸 첫마디가 “형, 좀만 가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판대요”였다. 한국 음식은 한국 가면 많이 먹을 수 있을 텐데 굳이 먹어야 하나 싶었지만, 주익이의 들뜬 얼굴에 찬물을 부을 순 없었다.
김치찌개를 판다는 식당은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였다. 부르고스에서 21.5km 떨어진 곳이니까 점심을 먹기엔 좀 먼 거리에 있었다. 보통 10~12km 지점에서 점심을 먹기 마련이다. 배고파서 바나나라도 먹을라치면 주익이가 핀잔을 줬다. “형, 김치찌개 먹을 건데…”라며. 주익이는 3일 전부터 김치찌개 먹을 생각만 했다고 한다. 주익이와 나는 신성한 음식을 영접하러 가는 것처럼 발걸음을 재촉했고, 다른 요깃거리는 입에 대지 않았다.
걷다 보니 아침에 시큼했던 왼쪽 정강이 근육이 눈에 보이게 부어올랐다. 그래도 걸을 만했기 때문에 좀 내버려두기로 했다. ‘김치찌개를 먹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김치찌개를 노리던 한국인은 우리뿐이 아니었다. 식당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다섯 명의 한국인 무리가 됐다. 다들 김치찌개 노래를 부르며, 김치찌개로 하나가 됐다. 김치찌개가 얼마나 맛있을지부터, 고기가 많이 들어 있거나 참치가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신김치가 있을까 걱정을 드러냈다. 본인이 갖고 있는 김치찌개에 얽힌 에피소드를 한 보따리씩 풀어놨다.
비극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의 그 식당에 도착하자, 점원으로 보이는 스페인 청년이 우리를 맞았고, 어눌한 한국말로 김치는 없다고 했다. 다 떨어졌다고 했다. 한국인 사장은 출타 중이었다. 돌아오려면 3시간은 더 걸린다고 했다. 실망의 쓴맛을 느낀 우리는 잠시 불 꺼진 식당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벽면에 ‘여기서부터 산티아고’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다. 좋은 글귀였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들 “괜찮아, 어쩔 수 없지”라고 말했지만 한숨이 깊었다.
다른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자고 의견을 모았지만 나는 빠지기로 했다. 좀 더 쉬면 정강이 근육이 더 부어올라서 걷기 힘들 거 같았다. 이미 조금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빨리 걸어가서 휴식을 취하는 게 낮겠다 싶었다. 통증이 급속도로 커졌다. 인생 오묘한 것이, 통증이 심해질수록 길이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메세타 고원의 쭉 뻗은 양 쪽 길에 보랏빛, 분홍빛, 빨간빛 꽃이 흐드러져 있었다.
통증은 상상을 초월하기 시작했다. 걷다 쉬기를 반복했다. 쉬는 척, 안 아픈 척 앉아서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오늘 너무 멋진 날이지 않니?”라고 말을 걸었다. 그럼 난 최대한 씁쓸한 기운을 없애려고 노력하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멋진 날이긴 했다. 적당한 기온에, 바람도 적당히 불고, 길은 평지에, 알록달록한 꽃밭…. 밀밭도 아름다웠다.
앞서 말했지만 아로요 산 볼의 알베르게는 거기 있는지 모르는 채 지나쳤다. ‘왜 안 나오지? 나올 때가 됐는데’라고 생각할 즈음엔 이미 다음 마을인 온타나스(Hontanas)에 더 가까웠다.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온타나스를 1km쯤 남겨뒀을 때, 좀 전까지 함께였던 주익이와 찬솔이가 시야에 보였다. 밥을 먹고 오는 길이었다. 난 그때 거의 울기 직전이었는데, 딱한 사정을 듣더니 내 가방을 들어줬다. 당시 남몰래 하늘에 기도할 만큼 절박했는데, 신의 존재를 믿을 뻔했다. 12kg의 배낭이 사라지니 어떻게든 절뚝이며 걸을 수 있었다.
# ‘추억에 잡히는 길’을 걷는 법
온타나스는 별이 잘 보이기로 소문난 마을이다. 움푹 꺼진 분지 형태라 마을 입구에서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데, 아기자기하면서 아름답다. 특히 리조토와 볶음밥 사이쯤 되는 스페인 음식인 파에야를 아주 맛있게 하는 주방장이 있다. 이 아저씨는 매일 아침 두 판을 만드는데, 핸드메이드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파에야를 먹을 일이 많은데 식당에서 먹더라도 냉동식품인 경우가 많다.
알베르게 하나를 골라 들어갔는데, 우연찮게도 한 방에 한국인만 7명이 묵게 됐다. 생장 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함께 출발했던 큰형님도 만났고, 빌로리아 데 리오하(Viloria De Rioja)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던 대구 중년 부부도 있었다. 다들 신기해하며 오늘 저녁은 다들 힘을 합쳐 한국 음식을 해 먹기로 했다.
웬만한 식자재는 스페인 구멍가게에서도 다 구할 수 있다. 특히 돼지고기나 닭고기 같은 육류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싸다. 채소나 과일도 저렴하다. 중년의 여성 두 분이 요리를 주도했는데, 가장 한국스럽고 맛이 보장되는 음식인 백숙이 메인이었다. 백숙은 마늘과 소금, 닭고기만 있어도 가능했다. 물에 넣고 삶아내면 그만이었다. 청년들이 잔심부름으로 거들고, 큰형님이 고이고이 간직했던 된장을 꺼내니 저녁 식탁이 준비됐다. 큰형님이 된장을 꺼낼 때 다들 박수를 쳤다는 사실을 빼먹을 순 없겠다.
식탁엔 샐러드, 카레, 소시지 볶음, 백숙이 올라왔다. 채소와 고추장도 있었는데, 먹기 시작하자마자 모두들 한 입씩 먹어서 동냈다. 스페인산 와인도 빼놓지 않았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인 ‘스페인하숙’에서 차승원이 해내는 음식과 비교하면 초라하고 한국 음식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아주 근사했다. 순례자 메뉴를 시키면 나오는 스테이크나 감자튀김이 아닌 것만으로도 좋았다. 함께 만들고, 함께 먹으면서 만들어진 에너지를 공유한다는 것은 그런 거였다.
다음날 일어났는데,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정강이 근육이 부어서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오늘은 꼼짝없이 쉬어야 했다. 좀 더 자고 일어나니 모두들 나갔고, 주익이와 찬솔이는 늦잠을 자고 있었다. 잘됐다 싶어 꼬드겨 함께 남기로 했다. 우리는 카페에서 오렌지와 커피를 시켜 야외에서 빨래 널듯 널려있었다. 정면으로 햇살을 느끼며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선심 쓰듯 ‘부엔 카미노’라고 인사했다.
여유를 느끼고 있을 때 나의 스승, 골리앗 사비가 나타났다. 사비는 다가와 얼음이 놓인 내 다리를 보며 “무아! 어찌된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잘못을 들키곤 어디로 숨을 곳이 없다는 걸 깨달은 아이처럼 수줍게 웃었다. 사비는 다 알겠다는 듯 내 옆에 앉았다. 그러곤 두 번째 손가락을 추켜세우고 좌우로 흔들었다. “I told you(내가 뭐랬어)”라고 세 번 이상은 말했던 거 같다. 그래 나도 알아. 천천히 갔어야지. 욕심 부렸어.
사비는 달콤하게도 자기 무릎을 탁탁 치면서 내 다리를 올리라고 했다. 그러곤 1시간 동안 내 다리를 주물러줬다. 고맙기도 황송하기도 했다. 내가 돈을 지불하겠다고 말하니 가소롭다는 듯 “됐고, 도네이션(기부)을 해”라고 했다. 사비가 순례길을 걷는 방식이었다. 나는 오렌지와 바나나를 세 개씩 사서 사비에게 줬다. 내가 고맙다고 인사하니, 사비가 “너무 많은데, 정말 너 예산에 괜찮겠어?”라고 되물었다. 내가 여자였으면 그에게 반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비는 부드러운 말투로 조언을 몇 마디 더 하고 떠났다. “무아야, 세월이 흐른다고 다 나이를 먹는 게 아니듯, 네가 이 길을 걷는다고 다 네가 걸은 길이 아니야. 네가 얼마나 걸었냐는 km가 아니라 네가 얼마나 느꼈느냐가 결정하게 될 거야. 네가 걸은 길이 네 추억에 잡혀야 하는 거야.” 사비가 떠나고, 꽃밭을 걸으면서도 악에 받치듯 힘들었던 어제가 떠올랐다. 어제 길은 내 기억에 없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아! 산티아고 Tip] 근육 마사지는 부드럽게!
걷다 보면 근육 통증은 반드시 온다. 물론 경미하게 올 수도 있지만 자칫 방심해서 조치를 잘못하면 상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 대개 많은 순례자들이 근육 통증이 오면 그 부위를 강하게 압박하거나 움켜쥐며 마사지하기 마련인데 잘못된 대처다. 통증이 오는 부위를 바로 마사지하지 말고, 그 주변 부위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부드럽게 마사지해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물론 잊지 말자, 아프면 쉬는 게 특효약이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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