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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자율복장'은 막 입는 게 아니라 잘 입는 것

보수적 골드만삭스·남성적 현대자동차도 복장 자율화 선언 '패션이 경쟁력'

2019.04.02(Tue) 10:09:50

[비즈한국] 과거엔 기업마다 드레스코드가 있었다. 대개 검거나 어두운 색 정장에 흰색 셔츠와 넥타이였다. 통제의 시대, 관리의 시대에는 이런 드레스코드가 중요했다. 옷을 패션이자 개성으로 보지 않고, 효율성과 실용성으로 보던 시대에선 드레스코드가 더 합리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자율복장이 필수가 되었다. 

 

자율이라고 아무거나 막 입는 게 아니다. 각자가 TPO(Time·Place·Occasion, 시간·장소·상황)에 맞게 스타일을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입어야 하니 더 세련되고 더 멋져야 한다. 그래서 자율복장 시대에는 패션 감각과 스타일링이 중요한 자질이 된다. 성공한 직장인이라 할 대기업 임원 교육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게 이미지 컨설팅이나 패션 스타일링이다. 일 잘하는 건 기본이다. 사람과 함께 어울려 일하기에 어떤 스타일, 어떤 이미지로 보이느냐는 업무와 연관될 정도로 중요하다. 

 

골드만삭스가 자율복장으로 바꾸었다. 흰 셔츠와 넥타이, 슈트와 고급 구두로 잘 차려입은 모습이 금융계와 투자은행에선 필수였는데 그걸 바꾼 것이다. 사진=골드만삭스 홈페이지

 

그리고 지금 시대에 외모는 얼굴이 아니라 패션 스타일링이다. 타고난 얼굴보단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패션을 따지는 게 더 합리적이기도 하다. 복장 규정이 있던 시대엔 멋쟁이와 촌스러운 사람의 구분이 회사에선 쉽지 않았다면, 자율복장 시대엔 그 구분이 확연히 된다. 패션 스타일이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골드만삭스가 자율복장으로 바꾼 것이 알려졌다. 이 소식을 CNN, BBC과 ‘파이낸셜 타임스’​ 같은 경제 매체는 물론이고 ‘​GQ’​ 같은 패션 잡지에서도 중요하게 다뤘다. 특히 패션계에서 이 일을 중요하게 본다. 월스트리트 금융계를 대표하는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여서 그렇다. 가장 보수적인 산업 중 하나가 금융계다. 흰 셔츠와 넥타이, 슈트와 고급 구두로 잘 차려입은 모습이 금융계와 투자은행에선 필수였는데 그걸 바꾼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수많은 기업이 복장 규정을 자율화하면서 슈트와 넥타이 시장이 크게 위축되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남성 패션 시장은 더 커졌다. 멋부리는 남자들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슈트라는 틀에 갇혀있던 남자들이 자율화를 통해 패션과 스타일에 눈을 뜬 것이다. 

 

사실 멋 부리지 못하는 남자들에겐 자율 복장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다르다. 각자 스타일이 다르고, 패션을 적극 소비하는 것을 개성 표현이자 즐거움이라 여기는 이들일수록 자율복장을 선호한다. 사실 골드만삭스가 복장 규정을 바꾼 것도 밀레니얼 세대 직원들 때문이다.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 조직으로 꼽히는 현대자동차도 지난 3월부터 근무복장을 완전 자율복장으로 바꾸었다. 2017년 6월 코나 신차 발표회 모습으로 오른쪽 세 번째가 정의선 부회장이다. 사진=우종국 기자

 

현대자동차는 2019년 3월부터 근무복장을 완전 자율복장으로 바꾸었다.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도 출근해도 되는데, 다만 TPO만 맞으면 된다고 한다. 2017년부터 일부 부서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는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을 허용했지만 회사 전체가 다 바뀐 건 올해부터다. CJ는 1999년 자율복장제를 도입했고, LG전자는 2000년부터 넥타이를 안 매는 비즈니스 캐주얼을 기본 복장으로 선택했다. 삼성전자는 20008년부터 비즈니스 캐주얼을 기본으로 하는 복장 자율화를 시작했고 2016년 여름부터 반바지 패션도 허용했다. 

 

주요 대기업이 다 복장 자율을 선택하는 동안에도 정장을 고집했던 기업이 현대자동차였다. 한국 기업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 조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던 현대자동차마저 복장 규정을 바꾼 것이다. 그들이 내세운 이유는 자율성과 창의성, 다양성이지만 옷 하나 바뀐다고 그걸 얻을 순 없다. 다만 과거식 조직 문화나 업무 방식으론 이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자율복장이 확산되는 건 패션계로선 반가울 일이다. 슈트 업체에겐 미안할 일이지만, 멋부리는 남자들이 더 크게 늘어나서 남성 패션 산업 전체는 커진다. 그리고 이러다보면 나중엔 고급 슈트, 맞춤 슈트 시장도 수혜를 입는다. 자율복장이 슈트를 완전히 없애는 건 아니기에, 꼭 필요한 상황에 입을 좀 더 멋진 슈트, 고급 슈트의 수요는 늘어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수많은 기업이 복장 규정을 자율화했다. 자율복장 시대에는 타고난 얼굴이 아니라 패션 감각과 스타일링이 중요한 자질이 된다. 사진=manofmany

 

여전히 사무실 밀집 지역에 가면 검은색이나 감색 양복에 흰 셔츠, 검은 구두를 신은 직장인을 꽤 본다. 그들이 일은 잘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이미지라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패션은 그냥 패션이 아니다. 문화이자 애티튜드(태도)이고,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방식이자 개성이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위해서 중요하다. 

 

우린 모두 유일무이한 존재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헤어스타일에 똑같은 구두를 신고, 똑같은 말투와 똑같은 보고서 형식이나 업무 방식을 가졌다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끔찍할까. 당신은 패션 센스도 없고, 개성도 없고, 다양성도 모르는 사람과 일하고 싶은가? 거울 속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자.

 

필자 김용섭은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이다. 저서로는 ‘라이프 트렌드 2013: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부터 시작해 ‘라이프 트렌드 2019: 젠더 뉴트럴’까지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와 ‘실력보다 안목이다’ 등 다수가 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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