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음악과 디저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건조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입가심하기에 적당하다는 것. ‘가토 드 뮤지끄(gâteau de musique)’는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뮤지션과 디저트를 매칭해 소개한다.
언제나 최고의 양과자점은 집에서 가까운 곳이다. 잠옷 바람 그대로 빠르게 걸어 5분 안에 갈 수 있는, 프랑스식 쁘띠가토(Petit Gateau, 작은 케이크)를 만드는 양과자점이 딱 하나 있었다. 그곳의 위치와 메뉴와 영업시간, 쉬는 날 등을 곱게 적어 기억 속 한 켠에 소중하게 넣어뒀다.
이렇게 소중한 르봉초초(le bon chocho)가 며칠 전 영업을 종료했다. 처음 만났을 때 마음에 들었고, 앞으로 자주 갈 생각이었고, 몇 번 가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사라졌다.
슬프다. 그리고 익숙하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좋아했고, 자주 보겠노라 마음먹은 순간 사라진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 더 많이 볼 수 있었을 텐데. 타이밍의 신이 내게 저주를 내렸다. 전생에 새치기를 많이 했나 보다.
너무 아쉽다고, 조만간 다시 보고 싶다는 소심한 인사말을 건네며 두 개의 쁘띠가토와 딸기페이스트리, 레몬마들렌, 코코넛머랭쿠키를 샀다. 나중에 보니 구움과자가 하나 더 들어있었다.
쓸쓸한 마음에 차를 우리는 것도 잊은 채 포크로 쿡쿡 찔러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헤어진 음악가가 떠올랐다. 강렬한, 그리고 알고 보니 뒤늦었던 첫 만남과 이른 헤어짐, 그리고 후회와 아쉬움.
혜성은 예고 없이 떨어지고 2011년 5월 신이문역 앞에 떨어진 혜성은 사람 둘의 형상을 띄고 있었는데 바로 ‘무키무키만만수’였다. 장구를 개조한 ‘구장구장’을 신나게 두드리며 괴성을 지르는 이들의 모습은 트위터를 타고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무키무키만만수 - 내가 고백을 하면 아마 놀랄 거야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 또한 충격에 빠졌다. 이 충격은 음악가가 내게 줄 수 있는 충격의 최대치를 한참 벗어나는 크기였다. 이 충격은 장르와 음정과 박자와 연주를 따질 수 없는 크기였다. 음악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에너지였다.
음악가가 주는 충격은 곧 설득력이다. 무키무키만만수는 3일 뒤에 있을 영화동아리 행사를 위해 결성됐고, 첫 공연 뒤 1년이 지나 그들의 첫 번째 앨범, ‘2012’를 발매했다.
무키무키만만수 - 안드로메다
무키무키만만수의 정신없는 음악을 들으며 마스카포네 바닐라를 먹는다. 그 이름처럼 마스카포네 치즈와 바닐라, 화이트초콜릿, 라즈베리가 입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앞으로 더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그 맛이 더 커진다. 이 아름답고 맛있는 쁘띠가토를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니.
프랑스식 쁘띠가토를 먹는 내게 파리는 쁘띠가토로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다. 왼쪽을 보면 이런 쁘띠가토가, 오른쪽을 보면 저런 쁘띠가토가,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진귀한 쁘띠가토들이 각자의 매력을 한껏 뽐내는 달콤하고 향긋한 도시.
무키무키만만수 -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
무키무키만만수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2년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이었다. 이후 2년이 흘러 다시 공연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때 이들은 크고 작은 무대, 락페스티벌, 방송 등 수많은 공연을 하고 홀연히 사라진 뒤였다.
첫 등장부터 강렬하고 많은 관심을 받았기에 좀 더 오래 할 줄 알았다. 1집 만한 충격을 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새로운 시도가 2집에서도 이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 좋은 것을 주고 벌써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하나. 이들 덕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엔 아방가르드한 천재 예술가들이 가득할 것이란 환상마저 생겼는데.
무키무키만만수 중 만수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했었고 음악을 전공했으며, 무키무키만만수 활동 후에도 여러 영화, 연극 음악에 참여했다. 무키무키만만수의 공연을 그리워하며 그들의 음악을 듣던 어느 날 만수는 자신의 본명 ‘이민휘’라는 이름으로 1집 ‘빌린 입’을 발표했다.
이민휘 - 빌린 입
새콤한 레몬타르트와 바삭한 딸기 페이스트리를 먹으며 생각한다. 르봉초초가 언젠가 다시 내 근처에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무키무키만만수가 언젠가 다시 활동을 하면 좋겠다. 아쉽게 이별한 많은 것에 대해 이런 생각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불타버린 숭례문은 다시 돌아왔지만 부서진 구장구장이 다시 연주될 날은 없을 것이다.
무키무키만만수 - 방화범
필자 이덕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두 번의 창업, 자동차 영업을 거쳐 대본을 쓰며 공연을 만들다 지금은 케이크를 먹고 공연을 보고 춤을 추는 일관된 커리어를 유지하는 중. 뭐 하는 분이냐는 질문에 10년째 답을 못하고 있다.
이덕 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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