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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예산 소진?' 발달재활 서비스 신청 어려운 까닭

최소 6개월 무한대기에 지쳐 자비로 사설센터 이용…복지부 "대기자 줄이기 노력 중"

2019.03.27(Wed) 14:51:25

[비즈한국] 다섯 살 발달지연 4급 딸을 둔 천 아무개 씨는 요즈음 고민이 많다. 발달재활 서비스를 활용해 정부 지원을 조금이라도 받으며 아이 재활 치료를 시키고 싶었지만, ‘이용 불가’라는 답이 돌아와서다. 그는 “올 2월에 발달재활 서비스 사업에 신청했는데 동사무소 주무관이 예산이 없으니까 아예 신청조차 받을 수 없다더라. 1월에 신청한 몇 명만 선착순으로 됐다”며 “아이 엄마는 임신 중이고 나도 회사를 그만둘 예정이라 지원이 되면 그나마 나은데 조건을 맞춰도 못 받는 실정”이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은 발달재활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지만 사업 예산이 부족해 신청조차 못하는 실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발달지연 장애아를 둔 천 아무개 씨가 그린 만화.


현재는 온전히 자비로 아이의 재활 치료를 이어가는 상황. “발달지연이 있는 아이들은 재활 치료를 두세 개는 기본으로 받아야 하는데 일주일에 세 개만 받아도 한 달에 200만~300만 원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천 씨는 답답한 마음에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글을 게시하고 인터넷 카페에 만화까지 그려 고충을 토로했다. 

 

전라북도 군산에서 생후 39개월 아이를 키우는 홍 아무개 씨도 “아이가 아직 ‘엄마, 아빠’ 정도만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소득이나 다른 자격 요건은 갖췄는데 작년 9월에 발달재활 바우처를 신청한 후 아직도 대기 중”이라며 “다른 지역도 그렇겠지만 특히 여기는 예산이 없어서 대기가 최소 1년 이상이고 언제 가능할지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 조건 되는데도 대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

 

발달재활 서비스사업은 장애아동에게 언어재활·운동발달재활·심리운동 등 발달재활 과정을 지원해주는 정부 사업이다. 높은 발달재활 비용으로 인한 장애아동 양육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다. 자격 대상은 만 18세 미만의 시각·청각·언어·지적·자폐성·뇌병변 장애아동이다. 만 6세 미만 영·유아의 경우 발달재활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의뢰서 혹은 소견서로 대체할 수 있다. 다만 소득 기준은 기준 중위소득 180% 이하로 한정된다.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장애아동이나 부모 혹은 대리인이 주민등록상 주소지 읍·면·동에 신청하면 지자체에서 대상자를 선정한다. 그 후 서비스 대상자에게 국민행복카드가 발급된다. 국민행복카드에는 신용, 체크 등 금융 기능이 있는데, 이 카드로 국가가 제공하는 바우처 서비스를 통합 이용할 수 있다. 선정자들은 각 시·군·구가 자체적으로 지정한 기관에서 서비스를 이용하고,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이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다만 선정됐다고 해서 발달재활 서비스의 모든 비용이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소득에 따라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기준 중위소득 65% 이하, 기준 중위소득 65% 초과 120% 이하, 기준 중위소득 120% 초과 180% 이하의 5등급으로 나뉘고 등급에 따라 지원액도 달라진다. 가령 기초생활수급자는 한 달에 22만 원, 기준 중위소득 120% 초과 180% 이하 구간의 이용자들에게는 14만 원이 지원된다.

 

소득구간에 따라 바우처지원액이 달라진다. 사진=‘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홈페이지 캡처​


문제는 앞서의 천 씨처럼 대상 조건에 부합하는데도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이다. 발달재활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수요가 공급을 훨씬 웃돌아서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정부가 이 사업에 대한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예산을 편성할 때부터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예산을 어림잡아 편성하게 되고, 매년 예상한 대상자 수보다 실질적인 수요가 많아 ‘이용 불가’ 사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인 보건복지부와 서울시청 장애인복지 담당 관계자는 “발달장애 등급을 받은 숫자를 파악해 예산이 편성되고, 그 예산이 시·군·구에 예상되는 수요에 맞게 지급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기서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발달재활 서비스의 경우 장애등급을 받지 않은 영·유아들도 서비스 이용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아이 부모들은 “어릴 때일수록 아이가 조금이라도 발달이 느리면 빨리 재활서비스 치료로 개선을 해서 악화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상당히 많다”고 입을 모았다.

 

그나마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 사정은 나은 편이다. 지방은 아예 예산편성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충청북도 음성군의 경우 지난해 발달재활 서비스 사업에 편성된 예산은 ‘0원’이었다. 30개월 뇌병변 1급 아이를 둔 한 보호자는 “예천군은 촌이라 발달 바우처 예산도 없고 기관도 없다. 정부에서 받는 지원은 어느 지역에 살고 있어도 동등하게 받았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해당 지역에 기관이 없는 경우 거주지로부터 12km 이내의 기관에 서비스 제공 센터가 있으면 그곳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광역시가 아닌 지역에 거주하는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은 더욱 고충이 많다. 발달재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관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어서다. 사진은 발달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의 수를 표기한 지도. 사진=‘아이톡톡 홈티’ 홈페이지 지도 캡처


# 현실적인 수요 조사 선행 후 예산 확대 ‘절실

 

보건복지부는 올해 발달재활 서비스 사업에 지난해 763억 원에서 67억 원 증가​한 830억 원을 편성했다. 복지부는 5만 7094명의 아동에게 지원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대기자가 매년 생겨나는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다. 

 

2019년에 예산이 새로 편성됐는데도 벌써부터 부족 현상을 겪는 이유에 대해 서울시청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는 “올해 새롭게 예산이 집행됐어도 지난해 서비스를 신청했다가 예산이 부족해 지원을 못 받은 사람들에게 먼저 우선권이 있기 때문에 올해 새롭게 신청하는 사람들이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비스 신청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반드시 먼저 신청한 대기자가 서비스 지원 우선권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서비스 신청을 접수받는 각 시·군·구마다 신청자들에게 이름과 연락처를 적게 해 자체적으로 대기 서비스를 운영하는 곳이 있는 반면, 신청자를 아예 돌려보내는 곳도 있다. 결국 장애아동 가족들은 아이를 돌보는 경제적·정신적 부담에다 ‘선착순 경쟁’과 매번 센터에 전화를 걸어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는 ‘수시 경쟁’을 동시에 벌여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과 센터 운영자는 ‘실질적인 수요 조사’를 한 후 그에 맞게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느린걸음’ 카페 캡처


결국 ‘현실적인 수요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성남시에 위치한 복지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이 아무개 센터장은 “바우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역의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추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파악이 안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산을 편성할 때 ‘주던 만큼만 주는’ 수준에서 집행된다”며 “(소득 기준을 충족했다는 조건에서) 의사의 소견이 있으면 발달장애바우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아동들이 몇 명인지 수요를 정확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 사이에서는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소득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지금도 대기자가 많기는 하지만, 이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또 다른 가정들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예산을 대폭 늘리기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센터에 대한 지원도 좀 더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과는 별개로 센터 측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회의감을 느끼기 때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줄어들면 대기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앞서의 이 센터장은 “센터 입장에서도 우리가 치료기관인지 시나 정부에 소속된 기관인지 하는 불편이 있다. 내야 하는 서류가 많고 받아야 하는 교육도 많은데 이렇게까지 간섭을 받으며 서비스를 계속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든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예산을 200억 원 정도 늘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들이 선호하는 서비스이다 보니 원하는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며 “그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절차를 투명하게 하는 등의 방법을 진행하려고 한다. 대기자를 줄이기 위해 예산 확보를 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말씀 드릴 단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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