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예전에 다녔던 회사의 상사는 매우 부지런한 분이었다. 매일 회의를 여는 것은 물론 주간과 월간 단위로 점검하고 또 채찍질했다. 특히 월간 회의는 자료가 수십 페이지 분량에 달할 정도로 두꺼웠고 회의도 세 시간 이상 이어졌다.
물론 당시 그분의 마음은 이해가 된다. 새로 업무를 맡은 이후 성과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을 것이고, 직전 성과가 부진했던 것도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그렇게 매일 계획을 세우고 점검하면 정말 일이 잘 풀릴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메시’에서 짐 하포드는 그 반대라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계획을 자주 세울수록 성과는 더욱 악화될 뿐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비밀을 풀어보자.
심리학자 대니얼 커센바움, 로라 험프리, 셀던 맬럿이 실험을 했다. 이들은 동료들과 함께 공부 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10주 과정에 참여할 학부생들을 모집했다. 학생들은 무작위로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한 그룹은 통제집단(Control Group)으로, 30~90분마다 5~10분 정도 휴식을 취하는 등 시간관리에 관한 일반적인 팁만 제시했다. 나머지 두 그룹은 일반적인 시간 관리에 관한 팁을 주고 여기에 덧붙여 시간을 계획하는 방식을 지정해주었다.
‘월간 계획 집단’은 한 달을 단위로 목표를 세우고 학업활동을 짜서 진행하도록 했으며, ‘일간 계획 집단’은 매일 목표를 세우고 학업활동 계획을 짜서 진행하도록 했다. -책 35쪽
통제집단이란 실험을 설계할 때 비교할 수 있게 만든 사람들이다. 통제집단을 설정하는 이유는 ‘실험’의 결과를 비교하기 위함인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신약 실험이다. 고혈압 신약을 개발했다면, 진짜 신약을 섭취하는 그룹과 가짜 약(僞藥)을 먹는 그룹으로 나눠 실험해야 신약의 진정한 효능을 측정할 수 있다.
다시 원래 실험으로 돌아가자. 세 그룹 중에서 어떤 그룹의 성과가 가장 탁월했을까?
연구자들은 계획 집단이 통제집단보다 훨씬 공부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목표나 계획이 다소 불확실한 월간 계획 집단보다 목표와 계획이 짧고 정량화하기 쉬운 일간 계획 집단이 훨씬 나은 성과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 35쪽
예전 회사의 상사도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일간 계획 집단은 말 그대로 참담했다. 일간 계획을 세운 학생들은 처음에는 매주 20시간씩 공부했지만, 실험과정이 끝날 때에는 매주 8시간 공부하기도 벅찼다. 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고 공부했던 통제집단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공부시간의 변동폭은 일간 계획 집단만큼 크지 않았다. 첫 주에는 15시간을 공부했으며, 실험이 끝나는 주에는 10시간을 공부했다.
하지만 ‘월간 계획 집단’의 성과는 놀라웠다.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매주 25시간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후반에 다가갈수록 더 열심히 공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 놀라운 결과였다. 월간 계획을 세운 사람들이 일간 계획 집단에 비해 효과가 두 배 이상 높았기 때문이다. -책 35~36쪽
정말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이 제기된다.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후에도 성과에 차이가 지속되었을까? 아니면 이번 실험 한 번으로 성과의 차이가 나타난 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갔을까?
연구자들은 실험이 끝나고 1년이 지난 뒤 세 그룹의 학업성적을 추적 조사했는데, 이러한 공부방식의 성과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월간 계획을 세웠던 학생의 성적은 갈수록 좋아졌고, 일간 계획을 세웠던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갈수록 떨어졌다.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 학생들은 제자리걸음했다. -책 36쪽
이런 현상이 나타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연구자들은 두 가지 이론을 제시했다. 첫째, 매일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시간과 노력이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계획을 세우는 일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론은 자신이 세운 계획을 달성 못하는 순간, 자신에게 실망하며 공부 그 자체를 놔버리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둘 다 꽤 설득력 있지만, 필자는 두 번째 이론에 더 공감한다. 필자도 책을 집필할 때 매일처럼 목표를 세운 적 있었는데, 결과가 그렇게 좋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물론 매일 목표를 세우고 이를 완벽하게 달성하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러나 몸이 아플 때도 있고 다른 급한 일이 생겨서 목표를 제때 달성 못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실망하고 자기 혐오에 빠지면, 결국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할 힘을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이미 위에서 제시된 바와 같다. 한 달 혹은 분기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유연하게 실행에 옮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필자 홍춘욱은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2011년 명지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12월 한국금융연구원에 입사한 후 교보증권, 굿모닝증권에서 경제 분석 및 정량 분석 업무를 담당하며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운용팀장을 거쳐, 현재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에서 투자전략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홍춘욱 경제팩트] 재테크 최악의 해, 국민연금은 선방했다?
·
[홍춘욱 경제팩트] 미국 노동운동에 흑인이 없는 이유
·
[홍춘욱 경제팩트] 노르웨이는 어떻게 '네덜란드병'에 안 걸렸나
·
[홍춘욱 경제팩트] '2차 북미회담 개최지' 베트남의 투자 가능성은?
·
[홍춘욱 경제팩트] 땅값 비싼 수도권에 기업과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