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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법] 누구나 MB처럼

보석은 물론 항소심 새 증거조사 이례적…일반 시민들에게도 당연히 적용돼야

2019.03.25(Mon) 06:30:25

[비즈한국]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재판진행 과정을 지켜보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여럿 있다. 우선 눈에 띈 것은 1심 재판 때 이 전 대통령 측은 혐의는 부인했지만 검찰이 제출한 모든 증거에 동의한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혐의를 다투는 피고인은 법정에 소환된 증인에 대해 반대신문을 통해 자신의 혐의를 반박하기 위해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 측은 혐의 입증에 결정적 증언을 한 측근 등에 대한 진술조서 등이 가득했지만 이례적으로 동의했다. 반박 물증을 제시하는 것으로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재판부는 200억 원이 넘는 돈을 횡령한 혐의와 수십억 원이 넘는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을 인정해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15년, 벌금 130억 원 등을 선고했다. 이 전 대통령이 구속기소된 것은 지난해 4월 9일이었고, 같은 해 10월 5일에 선고됐다. 검찰과 이 전 대통령은 즉시 항소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보석 후 첫 항소심 재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판이 늘어지기 시작한 것은 2심 재판부 배당 과정에서부터다. 당초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10월 23일 이 사건을 형사3부에 배당했지만 재판부와 이 전 대통령의 변호인과의 연고관계가 확인돼 11월 2일 형사1부로 재배당했다. 덕분에 2심 첫 공판준비기일은 12월 12일에서나 시작됐다. 문제는 구속기간. 상소심은 원칙적으로 원심의 잔여 구속기간을 제외한 4개월로 제한되며, 추가 심리가 필요한 부득이한 경우에 3차에 한하여 갱신할 수 있다. 즉 2심에서 이 전 대통령의 구속만료일은 2019년 4월 8일이다. 이때까지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이 전 대통령은 석방된 상태에서 재판받게 된다. 

 

2심 첫 공판준비기일에 이 전 대통령 측은 무려 22명에 달하는 증인을 신청했다. 1심에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전부 동의했는데 전략을 바꾼 것이다. 검찰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사람들을 전부 불러서 반박해보겠다는 취지다. 반박하려면 처음부터 1심에서 다투는 것이 당연하기에 법조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사례다. 

 

2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26일 2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변호인이 신청한 증인 중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과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원세훈전 국가정보원장 등 15명을 채택했다. 사법연수원에서 항소심에서는 새로운 증거조사가 엄격히 제한된다고 배웠고, 실무에서도 증인신청은 대개 형사소송규칙 제156조의 5를 근거로 재판부가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경우는 신청한 증인 거의 대부분이 채택됐다. 이때 이미 이 전 대통령은 2심 재판이 선고되기 전에 풀려나는 것이 예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증인이 불출석하는 경우가 많아 재판이 지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올 1월에 시작된 2심 재판에서 이학수, 김성우(전 다스사장), 김백준 등에 대한 증인소환장은 송달조차도 되지 않자, 즉각 이 전 대통령 측은 구속기간 내에 심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우려가 있다면서 보석청구를 했다. 여기에 더해 법원 정기인사로 재판장과 주심판사가 2월에 모두 변경돼 2월 27일 다시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고, 3월 6일 이 전 대통령은 보석으로 풀려났다. 

 

재판부는 “항소심 구속 만기인 4월 8일까지 충실한 항소심 심리를 끝내고 판결을 선고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취지를 밝혔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다수의 증인신청을 통해 보석뿐만 아니라 유리한 진술도 얻었다.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이 이 전 대통령의 처남 고 김재정 씨의 재산이 이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이라고 한 검찰 진술을 법정에서 뒤집은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에 분개하는 시민들이 많다. 특히 보석제도가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느냐에 대한 불신이다. 1심에서 징역 15년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은 피고인이 보석으로 풀려난 마당에 그보다 훨씬 가벼운 죄를 범한 사건에서 엄격히 적용한다면 누가 납득할 것인가. 항소심에서 변호인이 신청한 증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부는 대개 증인신청철회를 권한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인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출석하지 않자 재판부는 심지어 구인장을 발부했다. 

 

법 앞에 평등은 재판과정에서도 지켜야 하는 소중한 헌법가치다. 법원이 보석제도와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조사의 활성화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던진 것이라면 이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당연히 적용돼야 할 것이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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