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현대중공업그룹이 회사를 쪼개고 합치는 작업을 숨 가쁘게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2017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고, 최근엔 대우조선해양이라는 세계 2위 조선소 인수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실효성과 편법 논란이 일며 노동조합과 지역 시민단체의 반발, 정치권의 압박이 거셌지만 현대중공업은 꿋꿋하게 밀고 나가고 있다.
일련의 과정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 ‘경영승계’다. 공정거래법상 현대중공업그룹 총수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겨주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비즈한국’은 세 편의 기획으로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영승계 전략을 파헤친다. ‘[현대중 경영승계 빅픽처1] 지주사 전환과 정기선의 현대글로벌’에 이어 이번이 그 두 번째다.
지난 1월 31일 KDB산업은행은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는 빅딜 MOU(업무협약)를 발표했다. 조선업 세계 1위와 2위 기업의 M&A(인수·합병)였다. 업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양 조선사 노동조합은 즉각 반발했고, 정치권에서도 이번 M&A를 비판하고 나섰다. 피인수자인 대우조선이 위치한 거제 시민들의 걱정은 또한 깊어갔다(관련 기사 [거제는 지금①] "구조조정 왜 없겠나" 대우조선의 도시, 주민들의 한숨).
반전은 없었다. 지난 2월 12일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 인수·합병에 뛰어들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하며 상황은 급물살을 탔고, 지난 8일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 민영화를 위한 본계약을 체결했다. 결국 빅딜은 성사됐고, 현재 일본, 중국, 미국, 유럽연합(EU) 등 경쟁국의 기업결합 심사 통과만이 남은 상태다.
M&A 계획이 발표된 직후부터 현재까지도 언론에선 이번 빅딜을 보는 각종 분석과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인수합병이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 대우조선에 미치는 영향부터, 독특한 입수합병 방식을 분석하거나 각 이해관계자의 의중을 읽는 기사까지 다양하다. 이중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현대중공업이 현 시점에서 대우조선을 사들인 이유에 쏠린다. 대우조선의 재무 구조는 전보다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까진 튼튼하다고 말하긴 어렵기 때문. 이에 몇 가지 분석이 있다.
첫째,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사라진다면, 수주 가격경쟁력이 생긴다. 배를 팔 때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시가총액이 3조 원에 달하는 대우조선을 인수하는 데 현대중공업이 쓸 금액은 현재로선 3000억~5000억 원으로 전망된다. 현대중공업은 공짜나 다름없는 계약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이 노조와 정치권의 압박을 견뎌가며 부실하다고 판단되는 기업을 무리하게 인수를 감행한 이유는 따로 있어 보인다. 해당 방정식에 ‘경영승계’라는 변수를 집어넣어보면 어떨까.
#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중간지주인 ‘조선합작법인’ 자회사로 편입될까
우선 이번 M&A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현대중공업지주 아래 있는 현대중공업의 100% 현물출자로 가칭 ‘조선합작법인’이라는 법인을 세운다. 현대중공업지주와 산업은행은 조선합작법인에 현물출자하거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 지분을 얻어 각각 조선합작법인의 최대주주와 2대주주가 된다.
결과적으론 현대중공업지주가 최대주주로서 조선합작법인을 지배하게 되고, 조선합작법인은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는 구조가 형성된다. 현대중공업지주가 조선합작법인의 1조 2500억 원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지주의 자회사가 조선합작법인 자회사로 편입될 가능성이 크다. 즉 현대중공업지주의 자회사가 손자회사로 바뀌는 것. 금융업계는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의 현대글로벌서비스가 그 예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경영승계의 중요한 축이 되는 회사다. 정기선 부사장의 경영 능력을 평가하는 하나의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정 부사장이 기업의 총수 자리를 물려받기 위해선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로 회사를 성장시키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과제를 받았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글로벌서비스를 물심양면 돕는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2016년 매출액 29억 원에서 2017년 2381억 원으로 성장했고, 2018년 매출 7000억 원을 웃돌 것 예상되는 등 고속 성장했다. 그만큼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내부거래 비율은 높다.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지난해 내부거래 비율은 35.6%(약 849억 원)에 달한다. 공정거래법이 강화된다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걸리게 된다. 핵심은 현대글로벌서비스가 현대중공업지주의 자회사에서 손자회사로 탈바꿈하면 이 규제를 피해갈 수 있다는 점이다.
# 자회사에서 손자회사로 탈바꿈, 공정위 ‘내부거래’ 규제 벗어날 가능성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재 관계 회사들의 자산 총액이 10조 원이 넘는 기업집단 총수일가 사익편취행위를 규제한다. 쉽게 말해, 재벌 기업 집단의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나 내부거래를 제한하는 것. 현 공정거래법(제23조의 2)은 총수일가가 일정 비율 이상 지분(상장사 30%, 비상장사 20%)을 가지고 있는 회사와 그룹 관계사가 연간 거래 총액이 200억 원 혹은 상대방 평균 매출의 12%를 넘는 계약을 할 수 없도록 규제한다.
이 규제는 최근 더 강화될 예정이다. 상장과 관계없이 총수일가 보유 지분이 20% 이상인 회사와, 이 회사가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2018년 11월 21일 법제처 심사를 통과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기선 부사장의 현대중공업지주 지분은 총 30.9%이고, 현대중공업지주는 현대글로벌서비스를 100% 자회사로 두고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현 공정거래법 상으론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하지 않지만, 규제가 강화될 경우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한다.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성장에 제동이 걸리는 것이다. 이는 정몽준에서 정기선으로의 경영승계 작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대글로벌서비스가 조선합작법인의 자회사로 넘어가고, 동시에 현대중공업지주의 손자회사가 된다면 이 규제를 피해갈 수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현대글로벌서비스가 공정위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해당하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대우조선 인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승계 작업을 꺼내는 건 어불성설이다. 현대글로벌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대우조선을 인수한 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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