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현대중공업그룹이 회사를 쪼개고 합치는 작업을 숨 가쁘게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2017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고, 최근엔 대우조선해양이라는 세계 2위 조선소 인수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실효성과 편법 논란이 일며 노동조합과 지역 시민단체의 반발, 정치권의 압박이 거셌지만 현대중공업은 꿋꿋하게 밀고 나가고 있다.
일련의 과정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 ‘경영승계’다. 공정거래법상 현대중공업그룹 총수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겨주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비즈한국’은 세 편의 기획으로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영승계 전략을 파헤친다.
현대중공업은 2016년 11월 느닷없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공시한다. 조선업 장기 불황에 대응해 각 사업 부문의 자생력을 강화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한다는 명목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우선 같은 해 12월 선박 AS 부문과 태양광 부문을 물적분할(분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현대글로벌서비스와 현대그린에너지다.
2017년 4월엔 현대중공업은 인적분할을 통해 핵심 사업부문 세 개를 떼어낸다. 신설법인 현대로보틱스(로봇·투자 부문), 현대일렉트릭(전기·전자 부문), 현대건설기계(건설장비 부문)가 설립된다. 결과적으로 현대중공업은 사업부문만 떼어낸 현대중공업(조선·해양 부문)까지 포함해 총 네 개 법인으로 쪼개졌다.
이 과정에서 현대로보틱스가 지주사가 되고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현대중공업이 그 자회사로 편입됐다. 2017년 8월 각 법인 간 현물출자와 유상증자가 이뤄졌고, 2018년 3월 현대로보틱스가 ‘현대중공업지주’로 이름을 바꾸며 현대중공업그룹은 지주회사 전환을 마무리했다.
# 지주사 전환 핵심은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 강화
지주사 전환으로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은 강화됐다. 지주사 전환 이전 현대중공업의 지분 10.15%를 갖고 있던 정몽준 이사장은 현대로보틱스(현대중공업지주)에 현대중공업 지분을 현물출자하고 대신 현대중공업지주의 지분 25.8%를 획득하며 1대 주주가 됐다. 정기선 부사장은 2018년 3월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5.1%를 3540억 원에 매입하며, 총수 일가의 지분은 총 30.9%가 됐다.
총수 일가는 현대중공업지주를 지배하면서 사실상 자회사들의 직접적인 의결권을 획득했다. 지주사 전환 이전엔 순환출자 고리로 다소 느슨하게 묶여 있었던 현대중공업그룹 내 회사들이 지주사 전환 이후 현대중공업지주 아래 병렬로 놓이게 됐기 때문이다. 2018년 9월 기준 현대중공업지주는 현대중공업 31.67%, 현대일렉트릭 34.65%, 현대건설기계 33.03%, 현대오일뱅크 91.13%, 현대글로벌서비스 100% 지분을 보유했다. 즉 현대중공업지주의 최대주주인 총수 일가가 각 자회사의 막대한 영향력 행사를 할 수 있게 된 것.
사실 지주사가 자회사의 상당한 지분을 획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행위제한 요건을 만족하기 위해선 지주사가 자회사의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하기 때문. 문제는 현대중공업지주의 경우 각 자회사의 지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재정 부담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즉 정씨 일가는 돈 한푼 쓰지 않고 그룹 지배력을 강화한 셈이다.
이는 ‘자사주 마법’으로 가능했다. 현대중공업은 지주사 전환 당시 이사회와 주주종최를 거쳐 현대중공업지주에 9670억 원 상당의 자사주 13.4%를 배정하기로 결정한다. 현대중공업지주는 현대중공업,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각각의 지분 13.4%를 앉은 자리에서 획득하게 됐다.
상법상 자사주로는 의결권 행사가 제한되는데, 현대중공업 내에서 의결권 행사가 불가했던 13.4%의 자사주가 지주사로 넘어가면서 의결권이 살아나는 마법이 일어났다. 정기선 부사장이 추후 현대중공업지주의 최대주주가 된다고 봤을 때, 지주사에 속한 자회사들의 지분 13.4%를 상속세 한푼 내지 않고 상속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2017년 8월 현대중공업지주는 1조 7000억 원 상당의 유상증자로 정몽준 이사장에게 지분 10.15%를 넘겨받는 등 각 자회사의 주식을 사들여 각 자회사의 최대주주로 자리한다.
# 경영권 승계 핵심은 현대글로벌서비스
지주회사 전환 당시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지주에 자회사 현대오일뱅크와 현대글로벌서비스 지분까지 전량 배당하면서 모든 힘을 지주사에 몰아넣었다. 그룹 총수 일가는 이제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만 잘 움켜쥐면 되는 상황. 보통 주식시장의 일반 주주들은 실제 사업을 영위하지 않는 지주사의 주식을 잘 사 들이지 않기에, 총수 일가에 더욱 유리하다.
이로써 경영승계 작업은 간단해졌다. 정기선 부사장은 정몽준 이사장의 현대중공업지주의 주식을 상속 받거나 현대중공업지주의 주식을 사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제 남겨진 과제는 하나다. 정기선 부사장이 경영 능력을 증명해보여야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회사가 바로 현대글로벌서비스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17년 11월 정기선 부사장을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로 선임한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현대중공업의 선박AS 부문을 떼어내 만들어진 자회사다. 현대중공업지주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데, 현금 유동성이 높고 사업이 안정적이라 ‘알짜’로 평가된다.
2016년 매출액 29억 원을 기록한 현대글로벌서비스는 2017년 매출 2381억 원, 영업이익 600억 원을 올리며 고속 성장했다. 정기선 부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은 다음 해인 2018년 업계는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매출액이 7000억 원을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2020년까지 2조 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이 성과는 훗날 정 부사장이 경영 능력에 대한 비판을 받을 때 방어막으로 활용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현대글로벌서비스 분사 당시엔 선박 사후관리 부문이 사업성이 있었지만 리스크도 있었다. ‘알짜’ 회사를 정 부사장에게 밀어 줬다고 보긴 어렵다. 정 부사장의 경영 능력으로 이끌어 온 것이라 판단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성과 이면엔 ‘내부거래’가 자리하고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주요 거래처는 현대중공업과 현대글로벌서비스유럽(Hyundai Global Service Europe)이다. 지난해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매출 중 현대중공업과 현대글로벌서비스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6.8%, 17.8%에 달했다. 총 내부거래로 발생한 매출 비중은 전체의 35.6%(약 849억 원)로 나타났다.
이대로라면 공정거래법 위반하게 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될 전망이기 때문.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 총수 일가 지분이 20%를 넘는 상장사와 비상장사, 그리고 이 회사가 지분 50% 이상 보유한 자회사까지 규제 범위가 넓어진다.
정씨 일가의 현대중공업지주 지분은 총 30.8%이고, 현대중공업지주는 현대글로벌서비스를 100% 자회사로 두고 있기 때문에 넓어진 규제 대상이 된다. 이 경우 내부 거래 금액이 200억 원을 넘거나 연 매출 비중이 12%를 넘을 수 없다. 여기서 묘수가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그것.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경영승계의 상관관계는 다음 편([현대중 경영승계 빅피처2] 중간지주 '우산' 내부거래 칼날 피하나)으로 이어진다.
한편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현대중공업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꾸준히 1조 5000억 원가량의 자사주를 취득한다. 2009년부터 처분하지만 전량을 처분하지 않고 9670억 원이라는 자사주를 남겨서 인적분할 당시 지주사에 배정했다”며 “지주사에 배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재무개선 목적으로 전량 처리했더라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의 고통이 줄어들 수 있었고, 경영 상태가 개선됐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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