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멜라토닌만큼은 계속해서 수요가 있을 거고 이걸 직구(직접 구매)하는 게 불법이라 해도 못 잡을 거예요. 지금도 구글에 ‘멜라토닌 통관’ 등으로 키워드 검색을 하면 최신 글이 계속 올라오잖아요. 우리나라에도 멜라토닌 의약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 국민이 쉽게 먹을 수 없다는 게 문제예요. 저같이 향정신성 수면 치료제에는 부작용을 일으켜서 멜라토닌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큰일인 거죠.”
불안정한 수면시간대를 지속하는 만성 질환인 수면위상지연장애(DSPD)를 앓는 유 아무개 씨는 3년째 해외에서 멜라토닌을 구매해 먹고 있다. 국내에서도 건일제약의 ‘서카딘서방정’을 구입하면 멜라토닌 성분 수면유도제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유 씨는 이 대신 해외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는 멜라토닌을 택했다.
국내의 멜라토닌 의약품 대신 해외의 멜라토닌 제재 건강기능식품을 택한 사람은 유 씨뿐만이 아니다. 의사와 간호사도 의약품을 처방받는 대신 해외에서 멜라토닌 성분 수면유도제를 구하는 실정. 현직 간호사 김 아무개 씨는 “간호사 중에 쿠팡 같은 곳에서 제품을 사서 먹는 경우도 있고, 특히 의사들은 외국 연수에 갔을 때 많이 산다”고 말했다. 이들이 굳이 해외 제품을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국내 멜라토닌 의약품 외면하는 이유 ‘비싼 가격’
멜라토닌은 수면 사이클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 ‘숙면 호르몬’이라 불리는 천연 호르몬이다. 솔방울 모양을 띤 내분비 기관인 뇌의 송과선에서 생성되며 어두울 때 분비가 촉진된다. 사람들이 밤에 숙면에 드는 것도 밤에 체내 멜라토닌 수치가 가장 높아지기 때문. 나이가 들수록 멜라토닌의 분비는 감소한다. 나이든 사람이 새벽잠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58년에 예일대학교에서 처음 발견된 멜라토닌은 항산화 효과가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멜라토닌을 이용한 보조제나 의약품의 수요는 나날이 늘고 있다. 트위터나 포털 사이트에 ‘멜라토닌’을 검색하면 ‘해외에서 멜라토닌 영양제를 샀다’는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수면장애를 앓는 현대인들이 증가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수면장애 환자 수는 2013년 38만 686명에서 2017년 51만 5326명으로 30%가량 증가했다.
높은 수요를 기록하는 것과는 별개로 현재 멜라토닌제재를 사용한 수면유도제는 국내에 딱 하나뿐이다. 2014년 7월 건일제약이 이스라엘 제약사 뉴림(Neurim)으로부터 수입해 출시한 서카딘정이 그것. 서카딘정과 성분을 똑같이 해 제조한 제네릭 의약품(복제약)도 현재로서는 없다. 약사법 제32조에 따라 현재 서카딘정은 2020년 6월까지 신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재평가한다는 취지로 복제품을 허가하지 않는 ‘의약품 재심사 기간’에 있기 때문이다.
출시 당시 서카딘정은 향정신성 의약품이 주류를 이뤄온 불면증 치료제 시장에서 새로 등장한 비 향정신성 의약품 신약이라는 점에서 수면장애 환자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다. ‘졸피뎀’ ‘트리아졸람’ 등 향정신성 의약품은 금단 현상이 생기는 등 부작용 우려가 큰 탓에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엄격하게 취급 및 관리되는 반면, 멜라토닌 성분 이용 수면유도제의 경우 큰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멜라토닌 성분 제품도 13주 이상 복용하면 불면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 임상시험에서 두통과 비인두염, 요통, 관절통 등의 이상반응이 발견됐다.
그런데 당시 분위기와는 달리 수면장애 환자들은 의약품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가장 크게 불만을 제기하는 부분은 가격이다. 서카딘정은 비급여 의약품에 해당하는 동시에 또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섭취하려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의 진료와 처방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진료비와 약값만 한 달에 5만 원을 웃돈다는 것이다. 앞서의 유 씨는 “영양제 형태의 멜라토닌을 해외배송으로 구입하면 2만 원 정도에 18개월간 복용할 수 있는 540정을 구할 수 있다. 같은 기간 동안 국내 처방약에는 약 90만 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멜라토닌 성분 의약품을 얻으려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건강보험 기록에 남아 추후 민간의료보험 가입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어떤 병명과 연관되느냐에 따라 관련 기록이 있는 사람은 해당 보험에 가입할 수 없거나 가입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보다 위험률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험료율이 높게 책정될 수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면장애 환자들은 자연스럽게 국내 의약품 대신 해외 제품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식약처 의약품관리과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멜라토닌 제재 약품이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됐다 하더라도 해외에서 해당 성분 제품을 직접 구매하는 경우는 불법이 아니다. 다만 국내에서 처방전 없는 통신구매, 이른바 직구는 불법이다.
그럼에도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해외 배송을 통해 제품을 받으면 마약류를 제외한 제품은 관세청이 검사하기 힘들다는 것. 게다가 멜라토닌이 향정신성의약품은 아니기에 자가 치료 목적으로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는 처벌하기 어렵다. 다만 판매자는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 약사법 44조는 ‘약국 개설자가 아니면 의약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취득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이의경 신임 식약처장이 의약품의 불법 유통을 철저히 감독하겠다고 밝혔지만 멜라토닌 수요가 많은 탓에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식약처 “건강기능식품 전환 사실상 불가능”
수면장애 환자들 사이에서는 멜라토닌 성분 수면유도제를 국내에서도 영양보충제로 지정해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미국 등에서는 멜라토닌 제재 약품 등을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하고 판매 중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영양보충제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는다.
비급여 의약품인 서카딘정에 급여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약값이 높으면 그 약이 필요한 만성질환자들이 걱정이 많을 것”이라며 “원가가 비싼 것인지 세금이 많이 붙어서 그런 것인지를 따져본 후 세금을 좀 감면해주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제네릭이 나오면 가격이 낮아지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다. 의약품 재심사 기간인 내년 6월까지는 복제약 제조가 금지돼 있지만 그 이후에는 가능하기 때문. 지난 15일 식약처는 서카딘을 대조약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대조약은 제약사가 복제약을 개발할 때 약효를 비교하는 기준으로 삼는 의약품이다. 그러나 복제약이 반드시 싸지만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수면장애 환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멜라토닌 제재가 쉽게 유통되기 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 대변인실 관계자는 “해외처럼 건강기능식품으로 규정될 가능성은 없다. 재평가나 재심사를 거치면 분류가 바뀔 수 있지만, 분류할 때 사회적 합의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기 때문에 처음에 의약품으로 분류된 서카딘정을 건강기능식품으로 바꾸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식약처에서 약값을 내리라고 강제할 수도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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