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세먼지를 피하기 위한 국내 소비자들의 지출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외출 필수품이 된 마스크와 공기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가운데, 미세먼지는 좀 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세먼지 빈부격차’가 점차 현실화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거세다.
# 4인 가족 기준 월 20만 원, 건강보험 적용 안 돼
지난 3월 1일부터 7일, 사상 처음으로 7일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됐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미세먼지 농도가 환경부령에서 정하는 일정 기준을 넘었을 때 차량 운행을 제한한다. 이에 따라 미세먼지 대비 용품을 구매하는 비율도 급증했다. 다이소는 2월 28일부터 3월 4일까지 미세먼지 대비 용품 판매를 분석한 결과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약 3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 소비’를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미세먼지 대비 용품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특히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제품인 미세먼지 마스크를 두고 ‘가격 불만’이 거세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미세먼지 마스크 등 미세먼지 대비 용품의 가격을 조정해 달라’는 청원이 하루에 네다섯 개꼴로 올라오고 있다.
현재 식약처로부터 인증 표시 KF(Korean Filter)를 받아 시판되는 보건용 미세먼지 마스크 제품은 540여 종. 가격은 보통 2000~2500원선이다. 다만 KF등급이 높아지면 비용도 상승한다. 평균 0.6㎛(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미세입자를 80% 이상 걸러내는 KF80 제품보다, 평균 0.4㎛ 크기의 입자를 94% 걸러내는 KF94 제품이 비싸다. 신제품 ‘메디마스크’를 지난 6일 출시한 국제약품 관계자에 따르면, 숫자가 높을수록 가격이 비싸지는 이유는 마스크에서 공기 정화 역할을 하는 필터를 더 촘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일 기승을 부리는 미세먼지를 마스크 하나로 버티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비즈한국’이 자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월 14일부터 3월 14일까지 수도권 17시 기준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을 기록한 일수는 20일에 달했다. 만약 매일 2500원짜리 마스크를 구입했다면 가격은 5만 원이다. 마스크는 대개 일회용으로 써야 효과가 있으니 출퇴근할 때 다른 마스크를 써야 했다면 가격은 두 배로 뛴다. 4인 가족일 경우 마스크를 구매하는 비용은 한 달에 20만~40만 원이 소요된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한 별다른 지원책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미세먼지 마스크는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건강보험 적용 항목에서 제외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건강보험은 의료행위 의약품 관련 부분에만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 의료급여 지원 항목에서도 미세먼지 마스크는 빠진다. 의료급여법 제7조에 따라 진찰·검사, 약제·치료재료 지급, 처치·수술, 예방·재활, 입원 등에만 급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소득수준이 낮은 취약계층에게 가해지는 경제적 부담은 더욱 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들 취약계층은 마스크를 사지 않고 미세먼지에 자발적으로 본인을 노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 ‘돈 없으니 죽어야 하나’ 심리적 위축감 든다
정부는 미세먼지로 인한 국민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대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지난 13일 국회는 사회재난에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미세먼지 위기관리 매뉴얼을 작성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날 일반인들도 LPG차량을 구매할 수 있게 한 ‘액화석유가스의 안전관리 및 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미세먼지 관련 8개 법안이 가결됐다.
그러나 정부가 미세먼지를 ‘어떻게’ 막을지 초점을 둔 나머지, 현재 미세먼지로 인해 고통받으면서 경제적 비용을 부담하는 국민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환경학 연구소 관계자는 “미세먼지는 절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단언했다. 또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로 어린이와 노인을 대상으로 보건용 미세먼지 마스크를 지급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단기적인 정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따라서 현재 이 시점에서 고통 받는 국민을 위해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세먼지 마스크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논의해야 한다는 게 주요 대안으로 꼽힌다. 김범중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미세먼지가 심한 경우 정부가 가끔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지만, 인력과 예산 문제 때문에 모든 취약계층이 접근할 수 없는 등 여기저기서 허점이 발생한다. 그래서 취약계층 등 사이에서 ‘돈도 없으니 죽어야 하나’ 하는 심리적 위축감이 드는 것은 물론 생존권이 약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건강보험 항목에 미세먼지 마스크를 포함시켜 자기부담금을 줄여주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모든 건강보험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건강보험을 적용하게 되면 재정 적자가 너무 심할 수 있으니 의료보호 대상자, 빈곤층 바로 위 차상위계층 등을 대상으로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세먼지 마스크를 생활필수품으로 지정해 가격을 공개하고 판매업체 간 가격 인하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3월 8일 기준으로 ‘소비자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제품’ 443종의 가격 정보를 공개 중이다. 현재 의약외품 중 생활필수품은 ‘가그린’과 ‘리스테린’ 등 구강청결제, ‘까스명수’ 등 소화제, ‘박카스F’와 ‘영진 구론산 바몬드 오리지날’ 등 피로회복제로 한정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마스크를 제조·공급하는 제약회사나 공급 업체들에 일회용 마스크가 아닌 몇 번 써도 효과에 문제가 없는 필터 교체용 마스크를 제조해 판매하도록 권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 미세먼지를 거르는 역할을 하는 필터를 교체하기 위해 일회용 마스크를 지속적으로 사다 보니 가격 부담이 더 커진다는 것. 더불어 일회용 제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환경오염이 발생해 미세먼지가 악화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니 악순환을 애초에 막자는 주장이다.
한편 현재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이 ‘보여주기식’에 그친다는 지적도 있다.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젠더 폭력 대책과 마찬가지로 미세먼지 대책도 여전히 ‘피해자 중심적인 대책’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세먼지가 말썽이니 마스크를 제대로 쓰라고 말하는 것이다”며 “미세먼지는 친환경적으로 살지 않는 모두가 가해자다. 사람들의 환경 의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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