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주 먼 옛날, 겨울이 오면 밤하늘에 7명의 공주님이 살고 있는 반짝이는 성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 성의 공주님을 직접 만나고 싶었지만 그 성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을 노인들이 오래전 어림짐작으로 계산해본 거리는 대략 430광년이었다. 사람들은 이 거리를 기준으로 밤하늘의 지도를 그렸다.
어느 날 하늘에서 젊은 요정이 내려와 공주님들이 살고 있는 성까지의 거리가 사실은 390광년이라고 알려주었다. 히파르코스라는 이름의 이 자신감 넘치는 요정은 마을 사람들에게 11만 개가 넘는 별까지의 거리를 알려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히파르코스를 닮은 요정들을 만들어 더 많은 별까지의 거리를 알아오도록 하늘에 띄워 보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히파르코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 마을의 시력 좋은 젊은이들이 힘을 합쳐 땅에서 1년 동안 별들을 바라보면서 공주님의 성까지의 거리를 아주 정밀하게 확인했다. 놀랍게도 그 거리는 390광년이 아니라, 노인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430광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혼란스러워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지?
위의 짧은 자작 동화에 나오는 ‘공주님의 성’은 겨울철 밤하늘 황소자리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산개성단 ‘플레이아데스’를 말한다. 이 산개성단은 맨눈으로 봐도 별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임을 알 수 있다. 7개 정도의 별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이 성단을 일곱 명의 공주님, ‘칠공주’라고 부르며 관련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수천 년 전 고대 서양에서는 군인을 모집할 때 플레이아데스의 별이 몇 개까지 보이는지로 시력 검사를 하기도 했다.
실제 플레이아데스성단은 7개보다 훨씬 더 많은 푸른 아기별들이 모여 있는 산개성단이다. 다른 천체에 비해 지구와 비교적 가까워서, 지금까지도 더 먼 성단을 관측하기 위해 기준을 잡고 망원경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용도로 많이 활용된다.
천문학에서 별까지의 거리를 재는 것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까다로운 문제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모든 별빛은 실제 밝기가 아니다. 멀리 있는 별일수록 실제보다 더 어둡게 보이므로, 실제 별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만들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별까지의 거리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거리가 멀면 멀수록 오차가 커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천체까지의 거리를 추정해서 그 천체와 상대적인 거리를 비교하면서 조금씩 우주의 지도를 넓혀가는 방법을 사용한다.
플레이아데스까지의 거리는 약 400광년으로 엄청 먼 다른 천체들에 비해서는 그래도 가까운 편에 속하기 때문에 우주 지도를 그리기 위한 축척을 잡는 데 잘 활용된다. 또 이 성단에 있는 어린 별들의 밝기와 특성을 통해 별의 내부, 물리·화학적 특성을 연구해왔다. 따라서 현대 천문학에서 플레이아데스는 다른 모든 별의 기준 모델로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상 망원경을 이용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성단까지의 거리를 유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성단 안에서 돌아다니는 별들의 운동이나 별들의 밝기 분포 등 다른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잴 수 있지만, 그리 정확한 방법은 아니기 때문에 오차가 크다.
대신 플레이아데스처럼 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에 놓인 별들까지의 거리를 아주 정확하게 재는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1년을 주기로 태양 주변을 맴도는 지구의 운동, 공전 자체를 이용하는 ‘연주 시차(Parallax)’ 방법이다.
달리는 차를 타고 창문 밖을 바라보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차도 바로 옆에 있는 가로수들은 쌩쌩 빠르게 시야에서 벗어나지만, 멀리 있는 산이나 마을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1년을 주기로 움직이는 지구에 앉아 별들을 바라보면, 상대적으로 가까운 별들은 조금씩 하늘에서 왔다갔다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먼 별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1년간 지구가 움직이는 동안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의 상대적인 움직임의 차이를 이용하면 꽤 정확하게 그 거리를 잴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구의 하늘에서는 이 좋은 방법을 써도 큰 한계가 있다. 바로 지구의 대기, 윤동주의 시구처럼 ‘바람에 스치우는’ 별빛은 1년간 순전히 지구의 시야가 변하면서 움직인 별들의 위치 변화를 알기 어렵게 만든다.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히파르코스(Hipparchos)라는 우주 망원경, 요정을 만들어서 지구 대기 바깥 우주에 띄워 올렸다. 히파르코스가 새롭게 잰 플레이아데스까지의 거리는 390광년. 그동안 알고 있던 값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였다.
천문학자들은 히파르코스가 알려주는 값이 사실이라고 믿었다. 이후 히파르코스는 이 연주 시차라는 꽤 간단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지금껏 11만 개가 넘는 별들의 거리를 아주 적은 오차로 측정했고, 지금껏 천문학자들은 그 값을 기준으로 우주의 지도를 그리고 별들의 특징을 공부했다.
2013년에는 히파르코스의 대를 잇는 두 번째 우주 망원경 가이아(Gaia)가 발사되었다. 히파르코스와 본질적으로 같은 원리로 작동하지만 조금 더 정밀해 거리를 더 정확하게 알려줄 것으로 기대했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지상에 있는 거대한 전파망원경들을 이용해 히파르코스만큼의 정밀도로 플레이아데스성단까지의 거리를 확인하는 작업을 다시 수행했다. 지구에 있는 온갖 전파 안테나들이 힘을 합쳐 거리를 쟀기 때문에 그 값이 꽤 믿을 만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확인한 플레이아데스성단까지의 거리는 히파르코스 전에 알고 있던 것과 비슷한 443광년이었다![1]
새롭게 나타난 요정의 말만 곧이곧대로 믿었는데, 놀랍게도 마을 젊은이들이 힘을 모아 확인해보니 노인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던 수치가 맞았던 것이다.
지금껏 히파르코스가 알려준 11만 개가 넘는 별들까지의 거리는 수십 수백 편의 논문에 인용되며 천문학자들이 별들의 특징을 연구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또 히파르코스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두 번째 최신 우주 망원경까지 띄워 올려 더 넓은 영역의 지도를 그려줄 것을 기다리던 상황이다.[2][3]
따라서 정말로 히파르코스가 알려준 값이 틀렸다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진다. 히파르코스가 왜 거리를 잘못 측정했는지 원인은 아직 밝히지 못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히파르코스를 닮은 두 번째 우주 망원경 가이아를 띄운 이후에 이 문제가 밝혀졌다는 것이다.
최근 가이아의 답이 도착했다. 가이아가 새로 확인한 플레이아데스까지의 거리는 오래전 다른 망원경들이 추정했던 443광년과 비슷하다.[4]
이제 천문학자들은 당분간 가이아에 대한 염려를 뒤로하고 우주 지도를 계속 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히파르코스 요정이 외롭게 던져준 이상한 관측 결과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혹시 줄곧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히파르코스가 아닐까? 외눈박이가 가득한 세상에서는 눈이 두 개인 사람이 ‘비정상’ 취급을 받는 것처럼, 어쩌면 히파르코스만이 혼자 외롭게 제대로 된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대체 플레이아데스 공주님들은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일까?
자신들의 성에 앉아 혼란에 빠진 지구의 천문학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공주님들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1]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45/6200/1029
[2] https://www.aanda.org/articles/aa/full_html/2019/02/aa33273-18/aa33273-18.html
[3] https://arxiv.org/abs/1808.02968
[4]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515-5172/aada8b/meta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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