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결혼은 했나요?’ ‘아이는 있으세요?’ 같은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질문을 일상적인 질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무례한 질문이다.
학업성적, 진학, 연애, 진로 등에 대해 질문을 받는 10대, 20대는 사회에 진출하면서 결혼과 출산 같은 사회적 가족 구성에 대한 질문을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40대, 혹은 그 이후라도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결혼에 대한 질문에, 결혼하고 출산을 하지 않은 이에게는 출산에 대한 질문에 부닥치게 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질문들은 타인을 정상(Normal)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 범주 안에 놓고 이루어진다.
‘정상가족’의 개념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고 남성이 외부 경제활동을 하고 여성이 가사를 돌보는 것을 전제하는 근대 산업사회의 일반적인 가족형태다. 우리 사회는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한 사회제도를 만들어왔으며, 특히 기성세대는 이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정상가족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많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상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그와 다른 형태의 가족 형태는 물론이고 정상가족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곤 한다.
우리 사회에는 비혼(非婚)자, 아이를 낳지 않고 부부로 구성된 가정, 아이를 아빠나 엄마 혼자 양육하는 가정, 혼인신고를 전제로 하지 않는 가정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이들은 정상가족과 비교하면 각종 복지는 물론 조세, 상속, 입양 등 제도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독신자는 친양자 입양을 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2013년 9월 이에 대해 합헌결정을 했다. 독신자를 친양자의 양친으로 하면 처음부터 편친가정을 이루게 하고 사실상 혼인 외의 자를 만드는 결과가 발생하므로, 독신자 가정은 기혼자 가정에 비하여 양자의 양육에 있어 불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편친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강화시키는 결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고, 실제로도 재판관 9인 중 위헌의견이 5인으로 다수였지만 정족수 미달로 합헌결정이 되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지만 독신자 친양자 입양 제한은 여전하다.
또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정상가족 체제에서는 가족이라는 이름만으로 행해지는 강압적인 교육, 가족 간 폭력, 노인의 방치 등의 문제를 묵인한다. 나아가 가족이라는 이유,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가족의 동반자살이라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 7일 임명된 김희경 여성가족부 차관이 2017년에 출간한 ‘이상한 정상가족’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선량한 많은 이들이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금을 매우 쉽게 긋는다는 걸 깨달았다. ‘정상가족’ 내에서 허용하는 체벌과 ‘비정상가족’에서나 일어나는 학대. 두 가지는 서로 다르고 섞이지 않는다고들 생각한다. 마치 정상과 비정상이 매우 동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헌법 제10조로부터 도출되는 일반적 인격권에는 각 개인이 그 삶을 사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자율영역에 대한 보장이 포함되어 있다. 결혼을 하지 않든, 동거하되 혼인신고 하지 않든 개인의 자율영역으로 존중돼야 한다. 한부모 가족에 대해서는 편견을 버리고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올해부터 저소득 한부모 가족의 정부지원 아동양육비가 확대됐다).
근대적 정상가족의 쇠퇴는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이미 후기 산업사회에 진입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이다. 이미 영국의 시민동반자법(Civil Partnerships Act),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te civile de solidarite: PACS) 등과 같이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더라도 일정한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가 존재한다.
1인가구가 증가하고 출산이 저조한 시절이다. 정부가 이에 대해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뿌리 깊은 정상가족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족과 가구의 형태를 받아들이고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보호받고 인정받는 제도 구축도 필요하지 않을까.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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