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 피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미 한 차례 검찰 수사가 진행됐던 사건이지만, 이번 2차 수사는 흐름이 사뭇 다르다. 첫 수사 때 옥시 등 외국계 기업이 타깃 이었다면, 이번에는 국내 대기업들이 수사 대상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굴지의 로펌 대표급 변호사가 증거인멸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어디까지 미칠지 주목된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 논란이 처음 불거진 건 2011년. 정부 집계 기준, 50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하고 1200여 명이 숨진 사건이다. 2016년 수사는 옥시 등 외국계 가습기 살균제 업체만 기소하고 중단됐다.
다국적기업인 옥시 제품 다음으로 피해자가 많았던 제품은 ‘가습기 메이트’.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가 만들거나 유통, 판매한 제품이다. 당시 가습기살균제 사건 피해자 등으로 구성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는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 애경산업 등 국내 업체들도 처벌해달라고 검찰에 고발했지만,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1차 수사 때 기소된 옥시는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을 썼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반면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사용한 SK케미칼 등은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환경부로부터 가습기를 살균하는 CMIT 등에서도 유해성이 일부 검출됐다는 독성실험 연구 자료를 받으면서 올해 1월 검찰 수사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는 곧바로 SK케미칼을 비롯해 제조·유통 등을 담당한 애경산업과 이마트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해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첫 수사 대상은 SK케미칼로부터 하청 받아 제조한 업체 대표.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형 로펌과 애경산업 간 증거인멸을 놓고 긴밀한 소통이 있었던 정황도 드러났다. 사라졌던 애경산업 일부 자료가 법률대리를 맡았던 로펌 사무실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것. 검찰은 곧바로 증거인멸에 가담한 전직 임원 두 명을 증거인멸 및 증거인멸 교사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이 로펌 대표급 변호사에 대한 입건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흐름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증거인멸 과정에서 로펌이 기업 측에 조언한 수준이 도를 넘어 관여했다고 검찰이 보고 입건을 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은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게 메인이지만, 기업과 로펌이 변호 과정에서 어디까지 어떻게 조력을 해도 될지를 가늠하는 의미도 있는 수사”라고 풀이했다.
기업들은 압수수색 등에 대비해 증거를 사전에 없애곤 한다. 로펌은 이를 암암리에 조언하는 역할을 맡는다. 검찰은 이 관행을 문제로 삼았고 입건할 경우 ‘의뢰인 변호 조력 시 증거물 처분’에 큰 기준이 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변호인으로서 기소를 막기 위해 문제가 될 증거에 대한 조언이 어디까지 합법적인지 가늠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조심스레 덧붙였다.
검찰은 SK케미칼에 대한 본격 소환 조사에도 나섰다. 5일 오전에는 SK케미칼 이 아무개 전무 등 임원 5명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 원료 물질의 인체 유해성을 사전에 인지했는지, 안전 검사를 제대로 했는지, 제품에 화학물질 성분이나 인체 유해성을 제대로 표기했는지를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미 기소된 신현우 전 옥시 대표는 1심에서 징역 7년, 2심에서는 이보다 1년 감형된 징역 6년을 선고 받았다. 신 전 대표 등은 가습기살균제를 출시하면서 흡입독성 실험 등 안전성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154명의 인명피해를 낸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법조계의 다른 관계자는 “이미 한 차례 진행됐던 수사의 연장선상이라 주목을 덜 받지만 옥시 판례가 있어 기소되면 (피고 측이) 재판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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