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저만 만족하는 직업을 가지고 싶지는 않았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지만 솔루션이 없는 문제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그게 바로 희귀질환 진단이죠.”
지난 27일 서울시 성동구 헤이그라운드에서 금창원 쓰리빌리언(3billion) 대표를 만났다. 쓰리빌리언은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희귀질환 유전자 진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바이오 스타트업이다. 생명공학기업 ‘마크로젠’에서 스핀오프(회사분할)해 2016년 11월 설립된 쓰리빌리언은 현재 직원 10명이 회사를 꾸려나간다. 회사 설립 후 불과 2년 사이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의료데이터를 분석해 환자 특성에 맞는 치료와 질병 예측 서비스를 지원하는 한국형 의료 AI ‘닥터 앤서’ 개발 사업에 참여할 정도. 정부는 이 사업에 2020년까지 357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희귀질환 유전자 진단의 경우 환자의 유전자를 받아 그 유전 정보(게놈)를 해독한 후 유전자 중 문제를 일으킨 변이를 해석해 진단을 내리는 절차를 거친다. 이 중 쓰리빌리언은 ‘변이 해석’에 집중한다. 유전자 진단 공동 제품 출시 계약을 맺은 마크로젠이 게놈을 해독해 데이터를 생성하는 것처럼.
쓰리빌리언의 타깃은 환자와 의사 모두다. 금 대표는 “엑스레이나 MRI(자기공명영상)의 경우 환자에게 필요하다고 느끼면 의사의 권유와 환자의 요구가 결합돼 제공된다. 우리 제품도 마찬가지”라며 “희귀질환자들이 어떤 질병인지를 알고자 할 때 의사가 권유하고 환자가 필요에 의해 응할 경우 (제품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금 대표가 처음부터 유전자 진단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사업 초기에는 ‘유전자 진단’이 아닌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 검사(DTC)’ 상품을 개발하려 했다. DTC 제품 개발을 위해 미국에서 베타테스트까지 거쳤다. 그러나 지금은 유전자 진단에만 주력한다.
“유전자 검사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이 아니라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건강한 일반인들은 20~30년 후에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지에 관심이 별로 없다는 거죠. 한국에서 DTC가 꽃을 피우지 못하는 이유도 사람들이 필요 없는 제품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아예 ‘진단’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희귀질환자 중에는 내가 정확히 어떤 질환인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죠. 이 제품이 시장에 나오면 의미도 있고 시장성도 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희귀질환자들만을 제품 타깃층으로 설정하면 수익성에 한계가 있지는 않을까. 금 대표는 자신 있다는 입장이다. 환자들의 ‘니즈(needs)’를 잘 읽었다는 것. 금 대표에 따르면 현재 희귀병 환자를 진단하는 데 평균 5년이 걸리고 이 중 30%는 5년이 지나도 진단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이러한 탓에 희귀질환자들이 빠르고 정확한 새로운 진단 서비스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 관점에서 새로운 제품이 나와도 가격이 비싸면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쓰리빌리언은 원가를 낮춰 제품 가격도 동시에 낮추는 전략을 택했다. 환자 한 명당 10만 개 이상의 변이를 생산하는데 이것을 모두 사람이 하게 되면 노동력에 대한 비용이 상당하지만 쓰리빌리언은 이를 AI 기술로 대체하고 있다는 것. 금 대표는 이 과정에서 원가가 90%가량 절감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외 몇몇 바이오 기업들이 저희와 비슷한 희귀질환 진단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수동 큐레이션 방식을 활용하면 의사들이나 사람이 하루에 20~30시간을 쏟아가며 10만 개의 변이를 일일이 해석해야 하니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AI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크로젠의 적극적인 지원도 비용을 절감하는 데 도움이 됐다. 금 대표는 “유전자 진단 서비스가 비싼 것은 게놈 해독 때문이다. 그런데 해독비용도 마크로젠과 협업하기에 최소화할 수 있었다”며 “혼자 제품을 출시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못한다’고 답한다. 마크로젠과의 협력 없이 자체적으로 해야 했다면 게놈 해독에 드는 비용은 지금의 세 배 정도였을 것”이라 밝혔다.
이렇듯 2년 만에 바이오 시장에 안전하게 안착했지만 국내환경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바이오 시장을 놓고 봤을 때 미국은 법이나 정책에서 금지하는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인 반면, 한국은 특정 항목만 허용하고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
“사업적으로 볼 때 새로운 것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는 와중에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뭔가 생각나면 시도를 해볼 수 있지만, 한국은 규제 때문에 장벽이 높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미국은 의료비가 엄청 높은 구조이기에 정부든 국민이든 의료혁신에 대한 요구가 큽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료보험 덕에 사람들이 평소에 의료와 관련해서 큰 불편을 안 느낍니다. 발등에 불이 안 떨어진 거죠.”
그렇다 할지라도 금 대표는 정부가 서둘러 혁신을 하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오 시장에서는 ‘패스트팔로어 전략’이 통하지 않을 거라 내다보기 때문. 패스트팔로어 전략은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전략이다. 금 대표는 “의료나 바이오 시장은 결국 데이터 기반 시장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데이터가 많이 축적된 1등 제품을 쓰지 2등 제품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며 “조금만 더 늦으면 뒤처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환경에 다소 불만은 있지만, 금 대표는 한국을 떠날 생각은 없다. 결국 소비자 즉 희귀질환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내놓는 게 사업 성공의 핵심이라고 판단한다. 지난 1월에는 블록체인 기반으로 환자 데이터를 관리하는 ‘휴먼스케이프’,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신약을 개발하는 ‘닥터노아바이오텍’과 함께 ‘희귀질환 스타트업 연합체’도 결성했다. 국내 희귀질환자의 발병 원인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취지다.
아직 대외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쓰리빌리언은 제약회사들과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신약 연구 프로젝트도 논의 중이다. 제약회사가 신약을 개발하기 전 그 약이 특정 질병에 어떻게 작용할지를 미리 연구해보는 역할을 맡는다는 설명이다.
원래부터 창업가가 되기를 원했다는 금 대표의 꿈은 무엇일까. 의외로 그는 간단한 답을 내놓았다. 금 대표는 “우리 제품을 제일 잘 만드는 게 꿈이다. 전 세계 많은 희귀질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병명을 진단해주고 싶다”며 “그러면 제대로 진료를 받는 환자들이 많아질 것이고 신기술이나 치료제들을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이렇게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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