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이슈

[현장] 천안 시내버스 청소노동자 두 달째 '유노동 무임금' 사연

근로시간 단축, 식대삭감에 노조 설립하자 계약해지…용역업체 "갑이 해지 당연"

2019.02.28(Thu) 10:33:30

[비즈한국]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주던 밥값(4000원)과 최저임금을 달라는 겁니다.” 지난 26일 천안시 시내버스 청소노동자 김연진 씨(66)가 손에 든 대걸레를 놓고 나지막히 말했다. 김 씨는 2013년 8월부터 쌍용2동 시내버스 회차지에서 일했다. 이곳에 들어와 1시간가량 정차하는 버스와 기사들이 이용하는 휴게실·화장실을 쓸고 닦았다. 

 

김 씨는 오전·오후 24대씩 하루에 버스 48대를 청소한다. 평일 7시간, 토요일 4시간 근무하고 용역업체로부터 받는 돈은 매월 150만 원 남짓이었다. 여기에 천안 시내버스 공동관리위원회에서 지급하는 식비 1300원을 더한 게 2018년도 김 씨 월소득이었다. 올해 들어선 이마저도 받을 수 없게 됐다. 

 

김 씨는 “올해 1월부로 계약이 해지됐다. 두 달간 무임금으로 일하고 있다. 계약이 해지될 즈음 ​남편이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병원비도 내야하고,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데 당장 살길이 막막하다.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26일 천안시 신부동 시내버스 회차지에서 청소노동자 박 아무개 씨가 버스 내부를 닦고 있다. 사진=차형조 기자

 

천안시 시내버스는 보성여객, 새천안교통, 삼안여객, 세 운수업체가 운영한다. 이 세 업체는 용역업체 한 곳과 계약해 시내버스 청소를 맡겨왔다. 용역업체는 청소노동자 9명과 반장(교통지도원) 1명을 고용해 천안 시내 8개 회차지를 관리해왔다. 계약은 1년 단위로 갱신했다.

 

청소노동자들이 받는 보수는 크게 용역업체가 지급하는 급여와 천안 시내버스공동관리위원회가 주는 식대로 나뉜다. 2017년 기준 각각 월 150만 원, 8만 원(평일기준 하루 4000원) 수준이었다. 시내버스공동관리위원회는 운수협정을 맺은 세 운수업체가 회사별 운행 노선을 조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의체다. 각 회사의 회비로 운영된다.

 

갈등은 2018년 천안 시내버스 청소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변경된 데서 시작됐다. 용역업체는 2018년 새로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청소노동자의 근로시간을 기존 7시간 30분에서 7시간으로 단축했다. 시내버스공동관리위원회 역시 하루 점심 식대를 하루 4000원에서 1300원으로 깎았다. 

 

이에 반발해 용역업체 소속 천안 시내버스 청소노동자 10명 전원은 지난 2018년 7월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시내버스공동관리위원회 측에 노조 설립을 통보하고 근로조건 정상화를 요구했다. 

 

반장을 맡았던 한국노총 소속 김수경 노조위원장은 “노동자들을 가장 화나게 한 것은 밥값이다. 먹고 사는 문제이다 보니 상실감이 너무 컸다”며 “용역업체는 급여만 줬을 뿐이다. 식대나 작업복, 청소용품 등을 지급하고 휴가관리, 교육 등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질적 관리 주체는 시내버스공동관리위원회였다”고 주장했다. 

 

천안시 쌍용2동 시내버스 회차지에서 청소노동자가 버스 운전기사와 대화하는 모습. 사진=차형조 기자

 

시내버스 청소노동자 10명은 2018년 11월 30일 용역업체로부터 ‘근로계약 만료’ 통보를 받았다. 천안 시내버스를 운영하는 세 운송업체가 용역업체와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데 따른 조치다. 현재 각 운송업체는 새로운 용역업체를 선정했지만 아직 새로운 청소노동자를 고용하지는 않았다. 청소노동자 9명이 자신들이 근무해오던 회차지에 출근해 3개월 가까이 ‘무임금 노동’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부동 회차지에서 2년째 근무한 청소노동자 박 아무개 씨(60)는 “이 일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계속 출근하고 있다. 밥값을 제대로 주라고 요구했다는 이유로 일을 못하게 된 것이 정말 억울하다”​며 “두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아 현재는 적금을 깨서 생활하고 있다. 전처럼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수경 위원장은 “우리 청소노동자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전처럼(2018년 이전) 최저임금에 맞춘 임금과 4000원 이상의 밥값을 달라”고 주장했다. 

 

당시 용역업체였던 A 종합관리 관계자는 “우리는 갑(운송업체)의 요구에 의해 계약이 해지된 상황이다. (2019년) 최저임금 인상분을 급여에 반영하기로 갑과 합의가 끝난 상태인데 갑자기 노동조합이 임금 협상당사자라고 등장하니 갑은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나오는 게 당연하다”며 “용역계약은 관리회사와 갑이 체결하는 것인데 계약당사자가 불명확한 것이 (재계약 거부의) 원인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최저임금 인상으로 회사 경영이 악화돼 청소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근로시간에 따라 최저임금을 지급했다. 시내버스공동관리위원회 측에서 식비와 출퇴근 버스 무료 이용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아는데 그건 계약서상 명시된 것이 아니다”고 입장을 밝혔다​

 

시내버스공동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식비는 비공식적으로 협조해준 것이다. 계약사항에 식비관계는 없다. 그것보다도 2017~2019년도부터 시작된 최저임금 인상이 원인이 됐을것”이라며  “용역업체가 재계약 거부를 한 것은 개별 회사 사정이기 때문에 답변이 불가하다. 공동관리위원회는 회사 간 노선 관계를 조정할 뿐 재산권 행사에 관한 부분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천안=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핫클릭]

· [퇴근야행] 미세먼지 청정구역, 창경궁 대온실·서울식물원
· '숟가락 넣다, 뺐다…' 커지는 아침식사 시장, 실험은 계속된다
· '버닝썬 마약' 케타민, 미국서 우울증 치료제로 출시 임박…한국은?
· 이마트 3분기 보고서 2600억 기재 오류 '단순 실수'라지만…
· '인사 안하면 벌금 120만 원' 천안 버스기사 인권위 진정 속사정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