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LG전자가 새로운 스마트폰 G8과 V50을 발표하자 뜨거운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반응이 썩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그간 LG전자 스마트폰들의 아쉬움들이 쏟아져 나온다. 기대와 환영의 반응이 많이 나오는 MWC 행사임에도 신제품 발표의 분위기를 충분히 이끌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특히 V50의 듀얼 디스플레이는 자칫 ‘흐름을 읽지 못하는 무모한 도전’으로 읽힐 수 있다. 듀얼 디스플레이는 와이파이 다이렉트를 이용해 두 개의 디스플레이에 각기 다른 앱을 구동시키는 것으로 기술적으로 꽤 괜찮은 방법이다. 그동안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큰 화면을 갈라 쓰는 멀티태스킹을 아예 다른 화면으로 구분하는 것으로 UX(사용자경험)적인 관점에서 봐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시장의 반응이 냉소적일까? 특히나 시장에서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LG전자의 제품인데 말이다.
LG전자가 스마트폰을 개발하는 기준은 ‘기술력’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LG전자는 제품을 과하게 포장해서 알리는 것보다 제품의 기본기를 다지고 시장이 기대하는 요소를 꼼꼼하게 챙기는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그게 지금까지 가전 시장에서 LG전자가 갖고 있는 가장 큰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에 접근하는 LG전자는 조금 급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물론 몇 년째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받은 상황에서 마음이 조급해지는 점도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다.
시장이 스마트폰에 바라는 것은 이른바 ‘혁신’으로 대변되는 신기술인 것은 맞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할 때만큼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 MWC를 달구는 ‘접는(폴더블) 스마트폰’도 결국 스마트폰이라는 기본 틀을 벗어날 수는 없다. 오히려 시장은 소극적인 범위 안에서 적극적인 변화를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기술이 가는 방향성과 속도를 정확히 맞추는 일부 제조사가 냉정하게 독식하는 것이 최근 스마트폰 시장의 냉정한 현실이기도 하다.
어쨌든 LG전자의 도전은 기술을 중심에 두고 꾸준히 이어져 왔다. ‘기술의 LG’는 자존심이었고 중요한 가치관이었다. 결국 더 나은 제품은 새로운 기술과 높은 기술력에서 나온다고 보는 것이 LG그룹 전체 사업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다. 그게 때로는 뜻하지 않은 기술 과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시장이 기대하지 않은 기술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것이다. 물론 결과론적이지만 그간 LG전자가 내놓았던 몇 가지 제품들을 돌아보자.
# 기술 욕심이 낳은 비운의 LG 스마트폰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경쟁에서 야심차게 꺼내 놓았던 ‘G플렉스’는 어느새 시장에서 슬쩍 사라졌다. ‘왜 구부러져야 하는지’에 대해 시장을 시원스레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어 2세대 제품인 ‘G플렉스 2’는 퀄컴의 스냅드래곤 810의 발열 문제를 무리하게 떠안으면서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결국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는 모바일에서 별로 필요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디스플레이에 대한 시도는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찾아볼 수 있다. 2011년 출시됐던 옵티머스 3D는 안경 없이도 3D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스마트폰이었다. 3D로 사진이나 영상도 찍을 수 있었다. 당시 세상은 3D TV를 비롯해 입체 콘텐츠에 대한 열기로 뜨거웠다. 스마트폰에도 발 빠르게 적용하면서 기술을 과시했지만 콘텐츠가 TV나 블루레이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고, 모바일에서는 더더욱 그 빛을 보지 못했다. TV시장에서 편광 디스플레이로 3D를 꽉 잡았던 자신감이 있었지만 무안경 3D 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로서도 그리 알맞지 않았다.
LG전자의 엔지니어링 욕심을 가장 극적으로 볼 수 있었던 제품은 2016년 MWC에서 발표된 G5다. G5는 지금 봐도 그 아이디어가 획기적이다. LG전자는 배터리 커버를 아래로 옮기면서 많은 문제를 혁신적으로 풀어냈다. 일체형 배터리를 쓴 것처럼 매끄러운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배터리를 갈아 끼울 수 있었고, 아래 배터리 커버는 안테나이자 다른 기기를 꽂을 수 있는 하드웨어 모듈의 역할을 했다. 이 부분을 갈아 끼우는 것으로 사진을 더 편하게 찍을 수도 있었고, 32비트 음원을 재생하는 고급 오디오로도 변신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LG전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듈을 더 추가하지 못했고, 기대했던 서드파티 모듈도 안 나왔다. 그리고 1년 만에 G6를 내놓으면서 모듈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외장 모듈은 디자인을 한정짓기 때문에 신제품까지 끌고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G5는 약간 손봐야 할 부분이 있었지만 아이디어가 뛰어났기에 별도 시리즈로 가져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기술적 상상력이 현실로 싹틔우지 못한 것이 아쉽다. 여기에 모듈을 포기하면서까지 서둘러 준비했던 G6가 어쩔 수 없이 구형 프로세서를 채택하면서 시장에서도 아쉬움을 샀다.
# 기술만 있고 마케팅과 브랜드 전략이 없다
네티즌들은 LG전자의 마케팅을 지적한다. 겸손함에 제품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농담조의 이야기는 하나의 재미거리다. 아마도 시장이 LG전자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반응일 것이다. 조금 진지하게 바라보자면 LG전자의 마케팅에서 조금 중요도를 높게 봤으면 하는 요소 중 하나는 브랜드다.
G6 이후의 LG전자가 보여준 브랜드 정책은 지금까지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G 시리즈는 LG전자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V 시리즈는 LG전자의 과감한 기술적 시도를 현실적으로 표현한 기기였다. 명확하게 구분하진 않았지만 G 시리즈의 팬과 V 시리즈의 팬이 나뉘는 것을 보면 브랜드별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G 시리즈는 LG전자의 스마트폰으로서 큰 획을 그었던 상징성이 있다. ‘LG스럽게’ 문제를 풀어내고 흥행까지 성공한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하던 LG전자가 2012년 꺼내 놓은 G, 그러니까 ‘옵티머스 G’는 LG전자를 넘어 LG그룹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만든 스마트폰이었다. LG디스플레이의 디스플레이, LG이노텍의 카메라 모듈, LG화학의 배터리를 바탕으로 LG전자가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경험을 쏟아 부어 만들었다. 당시 구본무 회장의 이름을 따 ‘G’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로 그룹 전체가 이 제품에 공을 들였다.
출시 기자간담회에서도 프리미엄 브랜드로 G를 강조했고, 이후 LG전자는 ‘옵티머스’를 버리고 G로 브랜드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제품뿐 아니라 마케팅, 브랜딩까지 잘 됐다. LG전자는 이후 비슷한 기조로 G시리즈를 만들었고, 기본기를 강조하면서 쓰지 않을 과시성 기술보다 현실적인 기술에 집중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욕심을 쉽게 떨쳐내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기술로 차별성을 갖고 싶은 유혹은 묘한 결과물들을 낳았다. 그래도 중심은 G 시리즈가 잡았고, V 시리즈는 듀얼 디스플레이나 오디오 등의 특성을 갖추는 데에 집중했다. ‘LG는 오디오’라는 인식이 자리 잡는 과정이 바로 LG전자가 기술로 인정받는 적절한 예다. 마치 ‘모터는 LG’라는 신앙에 가까운 시장의 믿음처럼 말이다.
하지만 G6를 급하게 내놓고, 싸늘한 시장의 공백을 V30으로 막으면서 V 시리즈는 세컨드 스크린이라는 색깔을 놓쳤다. 그 이후로 G7에 뉴 세컨드 스크린을 넣으면서 브랜드가 헷갈리기 시작했고, V40까지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모호해졌다. 사실상 G와 V는 출시 순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마음이 급해진 2019년 MWC, LG전자는 특유의 기술 과시욕을 드러냈다. G8에는 제스처로 기기를 다루는 ‘에어모션’이 들어갔고, V50에는 듀얼 스크린이 핵심이 됐다. 실제 제품이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손과 입을 통해 평가받아야 하겠지만 ‘놀랍다’ ‘쓰고 싶다’는 평가보다 ‘이상하다’ ‘필요 없어 보인다’는 평가가 더 많다.
이를 특유의 마케팅 탓으로 풀어보자면 기술에 이야기를 제대로 담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기술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인터넷, 소셜미디어, 게임, 동영상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다른 기능은 잘 쓰지 않는다. 새로운 기능을 써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건 기술을 내는 기업들의 중요한 숙제다. 지금까지는 효과적으로 설득하지 못했고, ‘바라던 게 그건 아니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 지금 필요한 것은 ‘필살기가 아닌 기본기’
V50은 그 혼란의 가장 중심에 있는 기기다. 다른 시기에 내놓거나 혹은 출시한 이후에 내놓았으면 반응이 어땠을까 싶다. 현재 MWC는 효용성을 떠나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를 접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안쪽으로 접어야 하는지 바깥으로 접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여기에 디스플레이를 하나 더 붙이는 것이 시장에 어떻게 보였는지는 지금의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이 디스플레이 역시 기술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일반적인 스마트폰처럼 쓰다가 필요에 따라서 화면을 하나 더 붙이고 두 가지 앱을 화면으로 완전히 분할해서 쓰는 게 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접는 스마트폰은 그에 맞는 앱 화면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스마트폰 앱의 경우 창으로 띄우는 것도 고민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한쪽 화면으로 유튜브를 보면서 다른 한쪽으로 메시지 앱을 쓰는 등의 멀티태스킹 시나리오는 충분히 상상할 만하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접는 스마트폰의 부재를 덮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화웨이에도 밀린 것처럼 비친다.
지금 시장이 LG전자에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기본기’다. 무난한, 그리고 평범하면서 완성도 높고 부담 없는 가격대의 제품이 스마트폰 시장의 가장 큰 수요다. LG전자는 구글의 픽셀로 이 부분에 가장 가까운 기기를 이미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위기로 꼽힐 때마다 다시 제품을 끌어올린 것이 바로 이 기본기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LG전자가 이용자들과 간담회를 거치면서 시작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강화 정책이 바로 그 부분이다. 안드로이드에 대한 LG의 기술력을 자랑할 수 있는, 그리고 자랑해야 하는 것이 바로 소프트웨어다.
LG전자는 아주 오랫동안 구글과 하드웨어를 개발해 왔다. 안드로이드를 잘 돌릴 수 있는 기기를 만드는 경험을 쌓았고, 그 위에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글에게 직접 ‘과외’를 받은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소프트웨어 지원을 장담한 이후 G6, V20 등의 기기들은 새로운 기기를 산 것처럼 바뀌었다. 이용자들의 신뢰와 충성도는 따라서 높아지게 마련이다. 모든 기기가 완벽하진 않더라도 오랫동안 챙겨주는 기기에 대한 믿음은 교체 주기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재구매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쌓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여전히 시장은 LG전자의 스마트폰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LG전자의 기술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들도 있을 것이다. 시장과 기술 사이의 교감, 그리고 필요성에 대한 스토리와 설득이 적절한 시기에 뒤따라 주어야 한다는 것을 MWC 무대에서 다시금 확인한 듯하다.
최호섭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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