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 강남의 클럽 ‘버닝썬’에서 마약 ‘케타민’이 발견돼 사회적 파장이 증폭되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케타민 유사 성분의 신약이 출시될 예정이다. 사람 및 동물을 대상으로 마취제로만 쓰이던 케타민이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되는 것은 미국에서 마취제로 승인돼 시중 판매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약 50년 만이다.
지난 12일 미국 FDA(식품의약국) 자문위원회는 존슨앤존슨(J&J)의 ‘에스케타민(esketamin)’ 승인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에스케타민은 케타민 중 하나로 존슨앤존슨이 우울증 치료 신약에 사용하겠다고 밝힌 약물이다. 자문위가 승인 권고를 내며 이제는 FDA의 최종 승인 결정만 남은 상황. FDA는 대개 자문위의 권고를 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 ‘클럽 약물’ 케타민이 우울증 치료제로 쓰이는 이유
케타민은 ‘스페셜 K’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엑스터시, 루피와 함께 클럽에서 환각제나 강간 약물로 쓰여 ‘클럽 약물’ 로도 불린다. 흰 가루 형태로 냄새가 없는 것이 특징. 케타민은 1962년 미국에서 개발된 이후 국내외에서 줄곧 마취 용도로만 제한적으로 사용돼왔다. 강한 진통 효과가 있지만 그만큼 환각 효과도 강한 탓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케타민의 오프라벨 사용이 비일비재했다. 오프라벨은 적합한 약이 없거나 환자의 치료를 위해 의료기관이 FDA 승인 없이 의약품용도 외 목적으로 처방하는 행위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울증 환자들이 케타민을 암암리에 이용해왔다는 후문. FDA 약물 사건보고 시스템 등에 따르면 미국에서 케타민 판매는 2013년에서 2017년까지 전체적으로 72% 증가했다. 특히 5년 동안 의료기관에서의 케타민 판매는 2배 이상 늘었다.
FDA는 1970년 이후 케타민을 마취제 혹은 마취 유도제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다 보니 케타민이 불법 유통되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 DEA(마약단속국)에 따르면 케타민이 불법 유통될 때 대부분은 미국 수의과 병원에서 빼돌리거나 멕시코에서 밀반출됐다. 그 후 치료 목적으로 쓰이거나 클럽 약물로 사용됐다.
의료계가 존슨앤존슨의 케타민 이용 우울증 치료 신약에 주목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기존의 우울증 약으로 치료에 한계를 느끼던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 존슨앤존슨이 ‘스프라바토(Spravato)’라 이름 붙인 이 치료제는 비강(코안)에 직접 분무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우울증 약들과는 차별화 된다.
FDA 자문위가 50년 만에 케타민을 마취제 이외 용도로도 승인해야 한다고 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풀이된다. 우선 현재 시중에 나온 우울증 치료제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탓이다.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우울증 약 성분은 대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SSRI), 세로토닌·노르아드레날린 재흡수 억제제(SNRI) 등인데 이 성분들이 우울증 치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문위는 이 성분들은 치료 기간이 길어 중증 우울증 환자들의 고통과 비용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케타민이 우울증 환자들의 자살 충동을 막을 수 있다고 본 것도 자문위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자문위는 “에스케타민을 투여 받은 환자들은 기존 항우울제를 투여 받은 환자들보다 통계적으로 훨씬 큰 증상 개선을 경험했다”며 “케타민 투여로 자살이 지연된 것으로 기술된 두 건의 사례보고가 있었다”고 밝혔다. FDA에 따르면 현재 우울증 환자는 미국에만 1600만 명 이상, 전 세계 3억 명 이상이다.
부작용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간염과 요로감염, 혈압 증가 등의 가능성이 있다. 또 임상실험 도중 에스케타민을 투여한 연구대상자 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중 세 명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데 각각 마지막으로 에스케타민을 투약한 지 4일, 12일, 20일 만에 숨졌다. 나머지 세 명은 오토바이 사고와 심근경색 등으로 사망했다. 다만 자문위는 이런 사고들이 에스케타민 투여와 연관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자문위는 케타민의 부작용보다 효능이 더 크다고 봤다.
# 국내 출시 여부는 아직 예측 어려워
FDA 자문위의 발표 이후 제약업계는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미국의 ‘블룸버그’ 등은 미국의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가 1987년에 내놓은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 이후 획기적인 신약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에스케타민에 대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경희대학교병원, 삼성서울병원, 전남대학교병원, 고려대학교의과대학부속병원 등 네 곳에서 실시하고 있다. 임상시험은 신약 후보물질의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과정인데 그 중 임상 3상은 수백에서 수천 명에게 대규모로 시행된다. 대개 3상은 1~2년이 소요되므로 이르면 올해 4월에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임상시험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상업화되기까지 넘어야 할 관문은 많다. 의약품 허가 심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 일반적인 신약 물질의 경우 임상시험을 근거로 의약품 판매와 허가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나 케타민은 향정신성 의약품에 해당하기 때문에 허가 절차가 더 까다롭다. 국내에서 실시한 임상시험성적 자료로 의약품재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현재 우울증 약을 판매하는 다른 제약사들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우울증약 ‘브린텔릭스’를 판매하고 있는 한국룬드벡 관계자는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 약이 우리 제품과 어떤 기능이 비슷한지 등을 파악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이미 2015년에 브린텔릭스를 출시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빠른 시일 내에 우울증 신약을 내놓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항우울제 ‘로프람정’을 제조·판매하는 한미약품 관계자도 “케타민을 이용한 신약을 판매한다고 해서 그것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 한미약품에 미칠 영향을 지금 시점에서 추론하기는 어렵다”며 “(기존 우울증 환자 분들이 그 약을 찾을)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 사용되는 우울증 약들을 이 약 한 가지가 대체한다는 보장이 없다. 또 그 약이 어느 정도를 치환한다고 해도 우리 제품의 셰어(점유율)를 얼마나 차지할지 예측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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