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거위, 이슬, 대포.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달나라 여행’에 쓰였다는 점이다.
1638년 영국 교회의 사제 프랜시스 고드윈은 달나라 여행을 무대로 하는 SF 작품의 시조격이라고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을 썼다. 그의 소설 ‘달에 간 사나이’에서 주인공은 하늘을 나는 거위떼의 힘을 빌려 달나라를 향해 날아간다.
프랑스의 소설가 시라노 드베르주라크는 1657년 소설 ‘또 다른 세계: 만화로 그린 달나라 제국’에서 유리병 속에 이슬을 담아 하늘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달나라 여행을 그려냈다.
드베르주라크는 아침이면 햇빛을 받아 증발하는 이슬을 보고, 그 이슬을 유리병에 담아 햇빛을 비추면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은 허리춤에 이슬을 담은 유리병을 둘러메고 우주로 올라간다. 안타깝게도 주인공은 그만 유리병이 깨지는 바람에 지구로 돌아오는 길에 추락한다.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은 1865년 SF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이 작품 속에서 달까지 날아가는 탐험가들은 대포 탄두처럼 생긴 우주선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대포에 불을 붙여 하늘을 향해 힘차게 대포를 발사한다. 그의 소설은 1902년 최초의 SF 영화로 불리는 조르주 멜리에스 감독의 ‘달세계 여행’을 통해 스크린에 옮겨졌다.
이처럼 달은 오래전부터 지구의 밤하늘을 밝게 비추며 인류의 상상력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달은 지구의 유일한 자연 위성으로 망원경이 없어도 어렵지 않게 매일 볼 수 있지만 쉽게 다가갈 수는 없는, 무지개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달나라 여행은 로맨틱한 모험가들의 소망이자 다양한 기술자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놀이터였다.
하지만 우주 개발은 순전히 몽상가들의 아름다운 꿈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지구의 중력을 벗어날 수 있는 강한 추력을 내뿜는 거대 로켓 기술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여기에는 정책 결정자들과 시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미국 행정부와 시민들은 달이라는 천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달의 암석과 지구의 암석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달의 환경에서 생물이 생존할 수 있는지 등 과학적인 호기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이런 순수한 호기심을 근거로 과학자들이 우주 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요구했다면 행정부와 시민들은 동의하지 못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주에 대한 순수한 꿈은 숨긴 채, 소련을 앞질러야 한다는 지극히 정치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나서야 시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아폴로 11호를 시작으로 17호까지, 중간에 우주선 탱크가 폭발하면서 달을 코앞에 두고 돌아와야 했던 13호를 제외한 총 여섯 번의 미션을 통해 우주인들이 달에 발자국을 남겼다. 여섯 번의 미션이 진행되는 동안 달에 다녀온 우주인 가운데에 ‘진짜 과학자’는 없었다. 모두 공군 전투기를 몰던 군인 출신이었다. 마지막 17호 미션에서 처음으로 지질학자가 달의 암석을 연구하기 위해 아폴로에 올랐다. 그리고 과학자가 처음 우주에 올라갔던 17호를 끝으로 더 이상의 아폴로 미션은 진행되지 않았다.
이제 인류는 하루 만에 달까지 날아갈 수 있다. 지난 1월에는 중국이 처음으로 지구에서는 직접 신호를 주고받을 수 없는, 달의 뒷면에 자국의 로봇 ‘청어 4호’를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난 1월 처음으로 달 뒷면에 착륙하는 데 성공한 중국 달 착륙선 창어 4호와 함께 타고 있는 로버 유투의 착륙 모습. 영상=CCTV Video News Agency
최근 NASA는 호기롭게 지구 주변의 가까운 스페이스는 이제 민간의 영역으로 넘기고, 자신들은 더 도전적인 달 주변 우주 개발에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실제로 이제 많은 우주 개발 선진국에서는 국가 기관이 아닌 민간 기업 수준에서 우주 개발에 많은 투자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영화 ‘아이언맨’의 모델로 알려진 유명 사업가 일론 머스크는 로켓을 개발하는 기업 ‘스페이스엑스(SpaceX)’를 설립했다. SpaceX는 세계 최고의 파워를 자랑하는 로켓 ‘팰컨 헤비(Falcon Heavy)’을 만들었고, 하늘로 쏴 올린 로켓 하단부를 다시 거꾸로 땅 위에 바로 세워 수직 착륙시키는 기술을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1]
또 다른 항공우주 민간 기업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에서는 며칠 전 처음으로 승무원을 태우고 대기권을 돌파해 우주를 비행하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2]
2019년 2월 22일 버진 캘럭틱의 우주선이 또 다시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 비행기에 연결된 우주선이 대기권 경계에서 분리되면서 우주로 진입한다. 영상=Virgin Galactic
몽상가들의 허황하고 순진한 꿈은 서서히 지구 대기권을 돌파해 진짜 우주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2월 21일 구글에서 진행한 달 탐사선 공모전 ‘루나엑스 프라이즈(Lunar X Prize)’에 선정된 이스라엘 기업의 탐사선이 SpaceX의 팰컨 9 로켓을 타고 달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개발 비용 모금부터 우주선 개발, 그리고 발사 과정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국가나 정치가 배제된 미션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삼성에서 진행한 공모전에 당선된 한 중소 기업의 탐사선이 아시아나항공에서 개발한 로켓을 타고 달을 향해 날아간 셈이다.[3]
지난 2월 21일 스페이스엑스의 팰컨 9 로켓은 이스라엘에서 개발한 달 탐사선과 인도네시아 위성을 함께 싣고 우주로 발사되었다. 이스라엘에서 개발한 SpaceIL 착륙선은 올해 4월 11일경 달 표면에 착륙할 예정이다. 성공한다면 순전히 민간에서 개발 제작된 탐사선으론 처음으로 달에 착륙하는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영상=VideoFromSpace
역사상 첫 인공위성이 궤도에 오른 이후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드디어 인류는 전쟁이 배제된 우주 개발이라는 꿈을 꿀 여유를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우주 개발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들이는 것에 대해 충분히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지난해 11월 28일 우리나라는 새로 개발한 발사체 시험 발사에 성공해 75톤급에 달하는 중대형 발사체 엔진 기술을 보유한 나라에 올랐다. 그러나 한국의 탐사선을 달 표면에 착륙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실패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도 여러 번의 실패가 뻔히 예상되는 우주 덕후들의 로켓 개발에 과연 우리는 얼마나 동의하고 응원할까?
과거 나로호 발사 이전 두 번의 실패 때 적지 않은 시민이 “불꽃놀이하는 데 헛돈 쓴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접경 지역에서 누가 더 하늘 높이 깃발을 세우는지를 두고 벌어진 어이없는 싸움에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데에는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나로호 발사가 연기되고 실패했을 때, 많은 시민이 분노한 것도 북한에서 광명성 위성을 먼저 쏘아올렸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곳보다 발전한 IT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우주 개발에 대한 감수성만큼은 아직 냉전 시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닐까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강연이나 모임에서 당장 경제적 이득이 없는 우주 개발 같은 ‘쓸모없는’ 분야에 왜 과학자들은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는지를 묻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동안은 소심하게 두리뭉실한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하지만 달 탐사 영역까지 진짜 ‘민간’으로 넘어오는 오늘의 모습을 보며 조금 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우주에 가야만 한다는 현실적, 경제적으로 타당한 이유는 없다. 다만 우주에 가고 싶은 간절한 꿈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인류가 우주로 나아가려는 도전을 멈추지 않을 충분한 명분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이자 내일의 현실이다(The dream of yesterday is the hope of today and the reality of tomorrow).” -로버트 고다드(로켓 과학자로 최초의 액체 연료 로켓 개발)
[1] https://www.nasaspaceflight.com/2018/02/falcon-heavy-success-paves-space-beyond-earth/
[2] https://www.space.com/virgin-galactic-powered-flight-february-2019.html
[3] https://spacenews.com/spaceil-lunar-lander-makes-first-post-launch-maneuvers/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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