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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물권 없는 동물보호법' 논의는 활발, 개정 가능성은?

국회 동물복지 정책 방향 모색 토론회…동물산업 종사자 빠져 한계

2019.02.26(Tue) 14:05:10

[비즈한국] “태어나 마주한 ‘운’에 따라 개체 별로 보호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너무도 다른 처우를 받는 지금의 현실은 문제가 있다.” 

 

지난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과 사단법인 선 등의 주최로 열린 ‘동물복지정책 세미나’에서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가 한 말이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50여 명의 동물 관련 단체와 학계 관계자들은 반려, 축산, 야생, 실험, 전시동물 등 5개 분야 동물 관련법의 ‘동물복지’ 보장 장치가 미흡하다고 입을 모았다.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서고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동물 관련 글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동물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법이 이를 뒷받침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법 개정이 이뤄지기 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세미나 끝 무렵에는 “다른 이해관계자들 없이 매년 똑같은 사람이 와서 논쟁을 벌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한 동물복지단체 대표의 한탄이 나올 정도다.

 

지난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동물복지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동물보호단체 및 관련자들은 동물 관련법에 동물복지 내용이 미흡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김명선 기자


# 반려 목적이어야만 동물보호법 적용?

 

현재 국내에는 동물보호법,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 40~50개의 동물 관련법이 존재한다. 해당 법은 동물을 어떻게 보호·이용하고 관리할지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이렇게 많은 동물 관련 법령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문제는 ​법이 동물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특히 동물보호의 일반법적 지위에 있는 동물보호법 대부분이 ‘가정에서 반려 목적으로 기르는 경우’의 동물들에게만 집중되어 있어 사실상 그 이외의 목적으로 키우는 동물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

 

서국화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공동대표는 “동물보호법 전체 47개 조문 중 38개가 반려 목적의 동물들에 관한 규정으로 구성돼 있다”며 “물론 파충류, 양서류 및 어류도 동물 학대 금지 보호 대상이지만 현실적으로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되는 동물들, 실험실의 동물 등을 대상으로 한 행위에 동물보호법이 적용돼 처벌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가정에서 반려 목적으로 기르지 않는 동물은 영업에서도 자유로워진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32조는 ‘영업’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그 대상은 반려 목적으로 기르는 개, 고양이, 토끼, 페럿, 기니피그, 햄스터, 6종에 한한다. 이 6종마저도 특정 개체가 정해져 있지 않아 반려 목적이 아니면 법망을 벗어날 수 있다. 6종 이외의 동물은 판매와 전시 등의 영업활동에 동원돼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물보호법 이외에 동물 관련법의 경우 동물복지 장치가 더욱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실험동물)이 대표적이다. 실험동물과 관련해서 동물보호법은 “동물실험의 원칙으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적시한다. 그러나 이는 모든 실험동물 관련법에 적용되지 않는다. 동물실험과 관련된 법령의 모든 상위법이 동물보호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보라미 동물보호단체 휴멘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정책국장은 “법적으로는 소관 부처가 발표하는 각각의 법령마다 요구되는 척추동물시험고시에 따라 실험 여부가 만들어진다”며 “동물실험과 관련된 법안으로는 화장품법이나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등이 있는데 여기에 실험동물 복지를 엄격히 하려면 법을 개정하고 관련 시험 고시를 모두 수정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 동물보호법 대다수 조항이 ‘가정에서 반려 목적으로 기르는 경우’의 동물들에게만 집중돼 있어 법적 사각지대가 생겨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사진=김명선 기자


동물법이 ‘동물 없는 법’​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 배경에는 정책 입안자들이 여전히 동물을 물건으로 간주한 1960년에 시행된 전통 법률을 그대로 따른다는 데 있다. 현재 동물은 민법상 물건, 형법상 재물에 해당한다.

 

함태성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물손괴죄는 ‘타인의 재물’을 손괴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것이므로 자기 소유의 동물을 학대했을 때 형법상의 재물손괴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우리 헌법에서 동물은 동물답게 존재하지 못하고 자원과 재산으로 취급되고 있다. 전통 법학 내에서 동물법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산업종사자들은 이 자리에 없어”

 

이날 동물 관련 단체 및 학계 관계자들은 동물보호법 적용대상 동물을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물 관련 업무만 맡는 정부 기관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컸다. 현재 동물 관련 행정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으로 분산돼 있는데 그러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 또 동물 소유 자체를 어렵게 하기 위해 동물을 소유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는 새로운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동물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무작정 동물복지 개념을 강화한 법을 내놓았다가 업계 종사자들의 반발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 현재 반려동물 인구는 새로운 소비층이 됐고, 그에 따라 반려동물 연관 사업 시장이 확장돼 관련 종사자들도 크게 늘었다. 최근 동물 사료와 미용 관련 시장이 성행하는 것은 물론 동물 장례 사업까지 진출해 있다.

 

자신을 동물 관련 교육업 종사자라고 밝힌 한 참석자도 “동물 관련 산업이 큰 시장인데 이것의 확대를 막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아쉽다”며 “그런데 정작 영향을 많이 받는 종사자들은 이 자리에 없다. 우리의 의견을 표현할 방법도 없다”고 항변했다.

 

세미나가 끝나갈 무렵, 무작정 동물복지를 강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동물 관련 업종 종사자와 개 식용을 먼저 금지하자는 참석자들이 등장하며 현장이 한때 소란스러웠다. 사진=김명선 기자


이날 참석한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정부 관계자들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명노현 해양수산부 해양생태과장은 “중앙정부의 역할 미비를 인정하고 대부분 내용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동물원 허가제 전환 같은 문제와 관련해서 실효성 면에서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동물 관련법들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윤문석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과 농업연구관은 “동물실험 관련법에서 동물복지를 보장하는 것은 엄청난 예산과 노력이 필요한 국가적인 프로젝트”라며 “식품·의약품 공전에 다 동물실험이 들어가 있는데 품목마다 동물실험 안전성 방법,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처법은 뭔지, 그 대처법이 안전한지 등을 다 검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세미나에서는 몇몇 참석자가 개 식용을 금지할 것을 주장하며 현장이 한바탕 시끄러워지기도 했다. 세미나가 마무리될 무렵 한 참석자는 “​겁이 난다”​며 “개를 때려잡는 나라에서 무슨 동물보호법을 이야기하느냐”고 외쳤다. 그러자 좌장을 맡은 이항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는 “여기에 온 대다수가 동물보호단체 등 동물복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겠지만 세상에는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며 세미나는 겨우 마무리됐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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