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신흥국에 투자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이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답이 달라지겠지만,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면서 2010년을 전후한 브라질 펀드의 대규모 손실 사태, 그리고 2018년의 터키 금융시장 혼란을 겪은 후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최근 베트남 동화 환율의 흐름은 매우 인상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환율이 급등한 것은 다른 신흥국과 비슷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환율이 매우 안정적임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베트남 동화 가치는 계속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까?
먼 미래의 일까지는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2~3년 동안에는 베트남 외환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정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 이유는 바로 물가 안정 때문이다. 아래의 그래프에 잘 나타난 바와 같이, 미국과 비교한 베트남의 상대물가는 꾸준히 상승했고 이는 베트남 동화의 약세(달러/동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대목에서 잠깐 상대물가가 상승하는 게 왜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예를 들어 2010년을 기준(=100)으로 할 때,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2018년 말 116으로 상승한 반면 베트남의 물가가 200이 되었다고 하자. 만일 두 나라의 환율이 1달러에 2만 동으로 고정되어 있다면, 베트남에는 만성적인 무역적자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환율이 바뀌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미국산 제품은 (베트남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이전보다 싸게 느껴질 것이고 이는 미국 제품에 대한 수요 증가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베트남에서 생산된 제품은 원가 상승으로 인해 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요약하자면,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나라는 환율을 조정하지 않으면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신흥국이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경험하면, 부족한 외환을 조달하기 위해 선진국의 금융기관에서 계속 돈을 빌려야 한다. 금융시장이 안정되어 늘 돈을 빌릴 수 있다면 모르지만, 2018년 7월 터키처럼 외국인 투자자들이 부정적인 뉴스에 놀라 자금을 인출하고 또 외채의 만기 상환에 난색을 표명할 때에는 외환시장에 큰 충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베트남은 터키와 상황이 다르다. 아래 그래프에 나타난 것처럼, 베트남의 물가는 미국에 비해 그렇게 크게 상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미국보다 베트남 물가가 높아졌다 싶을 때에는 베트남 동화 환율이 적기에 인상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어떻게 해서 베트남 물가는 안정되기 시작했을까? 혹시 일시적으로 안정된 것에 불과하고, 다시 2000년대 후반처럼 물가가 급등하는 것은 아닐까? 이 의문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 발간된 책 ‘기회의 땅, 베트남’ 덕분에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이광욱 변호사는 베트남으로 유입되는 대규모 외국인직접투자(FDI)에 주목하라고 지적한다.
베트남 해외투자청의 발표에 따르면 베트남으로의 FDI는 꾸준히 증가해, 2018년에는 30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7년의 230억 달러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제조업 관련 설비에 대한 투자가 46.2%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리테일과 부동산 관련 투자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책 14쪽
FDI가 크게 늘어나고 그 대부분이 제조업에 집중된 것은 베트남 경제에 매우 밝은 신호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제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생산성의 향상이 빨라 경제 전체의 물가 압력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제조업은 기계를 도입한 후 생산량을 늘려 나가는 과정에서 숙련 수준이 낮은 근로자들이 점점 숙련 근로자로 발전할 기회를 제공하기에 경제 전체의 기술 수준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대규모의 투자를 누가 주도하는 것일까?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선진 공업국가들 비중이 여전히 높기는 하지만, 최근 해외에서 활동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본국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중략) 약 200만 명이 고향을 버리고 베트남을 떠났다. (중략)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많은 베트남 난민은 허드렛일로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베트남인 특유의 근면 성실함과 끈기로 새 삶을 개척한 베트남인도 많다. (중략)
‘비엣큐(Viet Kieu)’라고 통칭되는 해외동포들이 베트남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지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비엣큐는 베트남 경제개발의 주요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오랫동안 베트남 정부는 비엣큐를 공산주의 체제를 버리고 나라를 떠난 ‘배신자’로 인식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그들의 자금과 네트워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은 베트남 정부는 1999년부터 국내 투자를 허용했다. (중략)
현재 비엣큐가 베트남으로 송금하는 금액은 베트남 GDP의 8% 수준에 달한다. (중략) 이 중 과반 이상을 미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에 거주하는 비엣큐가 송금했다. 전문가들은 송금 금액이 꾸준히 증가한 이유를 비엣큐들이 조국의 성장에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고, 베트남에 다양한 투자의 기회가 열렸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책 48~50쪽
중국의 경제 발전 초기에 화교 자본이 큰 역할을 했던 것처럼, 해외에 거주하는 베트남 사람, 즉 비엣큐가 최근 점점 더 큰 역할을 담당한다는 이야기다. 미국 내 주요 소수민족 가운데 베트남 사람들은 인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 다른 아시아계 이민자들과 달리 베트남 사람끼리 결혼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즉, 베트남 사람들은 해외에 살면서도 ‘베트남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고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비엣큐들의 태도는 점점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 베트남의 소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제조업에 집중된 FDI 흐름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그렇지만 제조업 중심의 해외자금 유입이 당분간은 베트남 경제의 생산성을 더 향상시키고, 더 나아가 무역수지를 개선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Pew Research Center(2013.4.4.), ‘The Rise of Asian Americans’.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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