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농에 따른 농업 인구 감소, 수입 농산물 개방, 고령화 등으로 농촌이 예전 같지 않다. 일부 농가는 소득이 줄어 정부 지원금으로 근근이 버틴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마을도 적지 않다. 농사만으론 살 수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농촌에 문화를 심기로 했다. 고광자 농부가 10년여 전 생각한 대안이다. 외지인들을 삼삼오오 불러 마을 행사를 열었다. 전국 팔도 여성 농부들과 함께 지역 농수산물로 밥상 차리는 프로젝트를 벌이기까지 했다. 출처 모를 음식을 내몰고 생산자의 얼굴과 이름이 있는 음식들로 밥상을 구성했다. 이는 ‘공존밥상실록’이란 모임을 탄생시켰다. 그는 여기서 2년째 대표를 맡고 있다.
돌이켜 보면 고광자 대표의 이러한 활동은 1차산업(농수산업)과 2차산업(제조업), 3차산업(서비스업)을 융·복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6차산업’의 일환이었다. 고 대표는 “관광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곳은 이제 농촌뿐”이라고 말한다. 지난 20일 ‘비즈한국’이 고 대표를 만나 공존밥상실록 활동과 6차산업의 필요성,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해 물었다.
Q. 과거부터 농업에 종사했나.
A. 아니다. 도시에서 8년간 일하다 2009년 12월에 귀농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결정했다. 농사일을 했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유년시절을 농촌에서 보내다 보니 논밭이 익숙하기도 했다. 이에 남원 상신마을로 내려갔다. 아담한 산골마을이었다. 미술관도 있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Q. 귀농해서 어떤 일을 했나.
A. 마을 주민 분들이 지은 농산물로 고추장, 된장, 간장 등을 만드는 장류 사업을 했다. 상신마을이 발효 작업을 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란 이야기를 듣던 터였다. 이곳 바람, 습기, 햇볕이 적절했다. 듣던 대로 맛있었다. 초기엔 판매처 등을 넓히기 위해 각종 농업 관련 행사, 센터, 장터를 찾아다니며 상품을 팔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래처가 늘었고 사업은 조금씩 자리 잡았다.
Q. 난관은 없었나.
A.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발했다. 마을 주민이 20명이 안 됐고 평균 나이는 약 72세였다. 일부 농가의 1년 매출은 1000만 원에 못 미치기도 했다. 이대로는 마을 자체가 무너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을을 건강히 유지해야 장류사업도 가능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마을에 있는 미술관이었다. 주민은 적었지만 전국에서 미술관을 찾는 사람은 상당했다. 마을에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면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Q. 그래서 무엇을 기획했나.
A.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작은 마을 음악회를 열었다. 마을 정자에 피아노를 놓고 피아노 잘 치는 사람, 시 낭송할 사람 등을 불렀다. 서울, 광주, 여수 등 도시에 사는 동생과 자녀, 지인들을 알음알음 초청했다. 이들은 막걸리와 떡, 과일 등을 준비해오기로 했다. 마을 주민들은 도시민을 위해 직접 수확한 농수산물로 밥상을 차렸다. 그날 총 100명이 함께 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저녁 10시가 되도록 도시로 돌아갈 생각들을 안했다. 밤 하늘의 별, 마을 협곡 등이 너무 아름다워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역음식도 언제든지 먹고 싶다 하더라. 그때 우리 마을에서도 문화를 만들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이후 산나물 축제 등 크고 작은 행사를 이어나갔다. 나중에 보니 이게 ‘6차산업’이었다.
Q. 6차산업이 정확히 무엇인가.
A. 쉽게 말하면 농촌에 사람들이 와서 먹고 마시고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하는 농촌 관광산업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먹거리와 경관, 문화가 더해진다. 농촌 체험마을 등이 그 일례다. 농촌 내 문화 활동, 관광이 활성화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농촌 내 직업군은 다양해진다. 반드시 농사만 할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다. 귀농에 대한 막연함이 사라지니 자연스레 주민들도 늘어난다. 농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6차산업이 중요한 이유다. 유럽은 6차산업이 잘 정착돼 전 국민의 50%가 시골에서 휴가를 보낸다고까지 한다.
Q. 공존밥상실록은 그 일환으로 만들었나.
A. 그렇다. 마을행사를 이어나가면서 6차산업을 체계적으로 알고 싶었다.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농정원)에서 진행하는 ‘6차산업 농촌관광 여성농업인 후속교육’을 찾아 들었다. 교육 이수 후 전국 팔도 여성 농부 40여명과 함께 우리가 잘하는 걸 해보기로 했다. 수확한 농산물로 음식 해먹는 일을 제일 잘했다. 밥상을 보여주고 밥상을 팔기로 했다. 출처 모를 음식이 아닌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하나하나 알 수 있는 밥상을 차렸다. 팔도지역은 물론 도시와 농촌, 동양과 서양의 문화·맛을 공존하자는 의미로 공존밥상실록이라 이름을 짓고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Q.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나.
A. 기존 상신마을보다 진보된 행사를 기획, 진행했다. 도시민이 농촌을 방문해 즐기는 ‘팜파티’ 등이 일례다. 기존 팜파티는 지역 농산물을 단순히 판매하는 것에 그쳤다. 우리는 도시민에게 농촌을 보여줬다. 음식 등을 맛보게 하며 경험할 수 있는 팜파티를 만들었다. 도라지가 유명한 고장에선 도라지 음료, 음식, 술을 만들며 어울리는 식이었다. 도라지꽃으로 화관을 만들기도 했다. 농부들의 토크쇼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농산물 판매와 농부·외지인 간 교류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이 밖에 지자체 지원을 따내 로컬푸드 스타일리스트 등 6차산업을 도모할 수 있는 직업 양성 교육, 각종 상차림 지원 등을 진행했다.
Q. 정부의 6차산업 활성화 방안은 적절한가.
A. 농림축산식품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부처에서 농촌을 살려보자는 목표로 다양한 사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방향은 맞다. 근데 정작 농민들이 6차산업을 모른다. 반대로 정부는 농민들이 농촌에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농민들 모집이 안 되는 사업도 허다하다. 서로 간 교류와 대화가 우선이다. 관련 사업 주도는 지자체가 아닌 농민들이 해야 한다. 지자체는 이를 지원하는 것으로 그쳐야한다.
Q. 앞으로 계획은?
A. 활동 범위를 넓혀보려 한다. 농정원 등의 지원비를 따내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6차산업 교육을 더 크게 진행하고자 한다. 문화 사업도 확대할 계획이다. 농민이라면 누구든지 참여 가능하도록 말이다. 쇠락하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계속 고민할 것이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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