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니콘 스타트업이자 세계 최대의 카풀 서비스인 ‘블라블라카’는 흔히 ‘유럽의 우버’로 일컬어지지만, 사실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전혀 다르다. 타깃 소비자 계층이나 사용 영역도 거의 겹치지 않는다. 우버가 도시 내 단거리 이동 수단, 즉 택시를 대체하는 반면 블라블라카는 도시 간 이동, 즉 시외버스나 기차를 대체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 카풀 서비스가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혁신 경제와 관련한 논란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는 카풀 자체보다는 각종 규제로 경직된 공유 경제 및 모빌리티 시장, 특히 택시 관련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서 논쟁이 되는 면이 크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차량을 비롯한 자산의 공유가 경제 논리를 넘어 환경 보호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오래전부터 사회 전반의 지지를 얻었다.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공유 경제 붐이 일기 훨씬 전인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이미 조합 형태의 비영리 차량 공유 등이 상당히 활성화되었다.
프랑스어에서 ‘차량 공유’는 자동차를 뜻하는 ‘보아튀르(voiture)’라는 단어의 앞뒤로 공유를 뜻하는 접두어 co-와 명사형 어미 -age를 붙여 ‘코보아튀라주(covoiturage)’라고 한다. 블라블라카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코보아튀라주(covoiturage.fr)’는 2004년 전산학과 대학생이던 뱅상 카론(Vincent Caron)이 도메인을 구입하여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온라인 카풀은 그저 단순히 교통비를 아끼려는 저소득층이나 대학생 등 젊은 층의 수요를 연결하는 게시판 역할 정도였을 뿐, 별다른 수익모델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사한 종류의 온라인 서비스가 난립했는데, 이러한 판도는 프레데릭 마젤라가 창업을 결심하고 2006년 코보아튀라주를 사들이면서 바뀌게 된다.
마젤라는 당시 프랑스 내에서만 80여 개에 달하던 유사 서비스들을 하나하나 통합하여 불과 2년 만에 프랑스 최대의 카풀 사이트를 만들었다. 프랑스 통일 후 다음 단계는 인접 국가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로의 확산. 2009년에 프랑스와 지리적, 문화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편인 스페인에 진출하는 한편, 이케아를 비롯한 대기업들과 지자체들에 특화된 다양한 서비스를 출시하고, 빠르게 보급되는 스마트폰에 특화된 모바일 앱을 선보이며 점차 사업 고도화를 이루어 나갔다.
‘블라블라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은 2011년 영국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코보아튀라주’라는 프랑스어 이름이 다양한 국가와 언어권으로의 확장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마젤라는, 250개의 이름을 두고 고민 끝에 30개를 추려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보냈다. 2~3주 후에 이들에게 어떤 이름이 기억 나느냐고 물었는데, 가장 많이 꼽힌 것이 바로 블라블라카였다. 물론 이름이 좋아서라기보다는 황당해서였을 테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가장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이름이 가장 좋은 이름이라는 판단에 영국 서비스는 ‘블라블라카(blablacar.com)’로 시작했고, 이후 본국인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차례차례 같은 이름으로 통합했다.
블라블라카는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 직접 신규 사업을 론칭하기보다는 기존 사업자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확장해 나갔다. 결정적인 순간은 2015년 독일의 카풀 서비스 ‘카풀링(carpooling.com)’을 인수한 것이다.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자 프랑스와 함께 서유럽 경제의 양축을 이루는 독일은 카풀 서비스에서도 프랑스 못지않은 시장을 갖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카풀링은 블라블라카의 전신인 코보아튀라주보다 빠른 2001년부터 이미 ‘미트파르겔레겐하이트(mitfahrgelegenheit.de)’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자국 외 시장 확장에는 코보아튀라주 이상으로 난감한 이름이다. 2011년에 카풀링으로 이름을 바꿨다.) 다임러 등 대기업의 투자를 유치하여 2015년 당시에는 독일을 비롯한 중부 유럽권에서 이미 6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유럽 2위 업체였다.
유럽에서 빠르게 확장을 거듭하던 두 회사의 격돌은 예견되었던 바이나, 2014년에 1억 달러 투자 유치에 성공해 충분한 자금을 확보한 블라블라카가 선수를 치면서 의외로 싱겁게 정리가 되었다고나 할까.
2015년 유럽 19개 국가에 진출하며 2000만 가입자를 확보해 명실상부 유럽 카풀 시장을 통일한 블라블라카는, 커진 덩치만큼이나 신중한 성장 전략을 전개해 나가야 했다. 첫 번째는 유럽 이외 지역으로의 확장. 인수한 유럽 카풀 업체들이 이미 진출한 인도, 브라질, 멕시코를 중심으로 조심스레 가능성을 타진하였으나, 도시 간 이동에 특화된 블라블라카의 사업 모델은 비유럽 지역에서는 확장에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진출은 일찌감치 포기했는데,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미국은 기름값이 지나치게 싸서, ‘장거리 자동차 여행에 드는 비용을 분담한다’는 것이 기본 콘셉트인 유럽식 카풀 모델이 맞지 않는다는 것, 둘째 도시 간 거리가 너무 멀어 자동차나 철도 등 육상 교통보다 항공 교통이 더 발달했다는 것, 셋째 도시가 너무 커서 카풀을 위한 동승 지점을 쉽게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는 곧 우버와 블라블라카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두 사업 모델이 경쟁은커녕 대체재나 보완재도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역 확장의 한계에 부딪힌 블라블라카의 두 번째 성장 전략은 유료화를 포함한 수익 모델의 다각화였다. 이 과정에서 또 여러 결정적인 순간을 맞게 되는데, 이 내용은 후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블라블라카의 성장 과정을 되짚어보면, 플랫폼 선점을 위해 빠른 성장을 최우선 전략으로 삼되 사업 모델의 다각화·고도화를 동시에 추구했다. 유니콘들의 공통적인 성공 방정식이 블라블라카에도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최근 수년 사이에 빠르게 성장하며 유니콘으로 등극한 배달의민족 등 국내 스타트업 사례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쟁사를 압도하는 기술적 차별점 못지않게, 전략적이고 시의적절한 인수 합병과 이를 위한 자금 유치,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신중하게 성장 전략을 펼치면서도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는 균형 감각, 아울러 끝까지 버티는 근성을 가진 창업자와 경영진의 능력이 핵심임은 물론이다. 유니콘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필자 곽원철은 한국의 ICT 업계에서 12년간 일한 뒤 2009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현재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 담당으로 일하고 있으며, 2018년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기재부 주최로 열린 디지털이코노미포럼에서 유럽의 모빌리티 시장을 소개하는 등 한국-프랑스 스타트업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곽원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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