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확실시되고 있다. 조선업 세계 1위가 세계 2위를 ‘먹는’ 대형 사건이다. 사회 각계각층이 술렁인다. 인수·합병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도 확실하다. 과당경쟁을 막고 국내 조선업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조치라는 긍정적인 전망과, 과도한 인적 구조조정과 기자재 업체 줄도산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엇갈린다.
대우조선이 위치한 거제의 분위기는 암울하다. 아무래도 ‘먹히는’ 쪽이 더 많은 피를 보지 않겠느냐는 걱정이다. 조선업 부흥으로 영광을 누렸던 거제가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도 나온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이 ‘결사반대’ 머리띠를 두르고 기자회견장에 나서보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혈세를 쏟아 부은 곳에서 여전히 ‘철밥통’만 지키려 한다는 비난이 인다.
조선업을 향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덩달아 주목받는 책이 있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오월의봄)가 그 주인공이다. 책은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이 자리한 ‘조선업의 도시’ 거제를 조명한다. 중공업 외적 성장이 가져다준 막대한 부가 어촌이었던 거제를 산업도시로 바꾸는 과정을 촘촘하게 보여준다. 조선소를 중심으로 어떤 삶의 형태가 구축됐는지, 중공업 신화가 걷히며 드러난 기형적인 ‘중공업 가족’의 속살까지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조선업을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으론 드물게 발간 한 달이 채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2쇄 발행을 내다본다. 빅이슈와 맞물린 덕도 있겠지만, 인기 비결은 따로 있다. 생생한 현장감이다. 저자 양승훈 경남대 조교수(37)는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 공부를 마친 뒤, 곧바로 대우조선에 취업해 5년을 일했다. 이 책은 저자가 5년간 보고 듣고 느낀 것의 기록인 셈이다. 여러 지표와 사회과학적 분석이 더해졌지만 사회과학 서적이라기 보단 ‘쫀쫀한’ 르포 느낌을 준다.
지난 14일 ‘비즈한국’은 경남 마산에 위치한 양승훈 조교수의 경남대 교수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이 사람들(조선업 노동자)이 이런 방식으로 비난을 당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다. 궤적을 보지 않고 바깥의 눈으로 손쉽게 비난받는 게 싫었다”며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인수·합병을 긍정적으로 보는 등 냉철한 분석을 이어갔다.
Q.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 공부를 마치고 조선소를 갔다. 보통 연구원 준비를 하는 것이 보통인데 특이하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A. 연세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대기업 공채로 가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연구원보다는 돈을 많이 주는 곳에 가고 싶었다. 우스갯소리로 염탐하러 간 거 아니냐는 말을 듣는데, 돈 벌러 간 게 맞다. 물론 제조업, 대공장을 가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조직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랄지, 노동조합 차원에서 기업을 보는 것과 상관없이 샐러리맨들이 갖고 있는 감각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현장이 있는 경우는 더.
Q. 조선소에선 어떤 일을 했나.
A. 인사에 있었다. 조직 문화 관리하는 부서에 있다가, 사내 홍보도 잠깐 했다. 전략혁신담당과에서 혁신 업무를 했는데, 이 업무가 재미있다. 생산 설계, 조달 각 부문들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걸 현장에서 듣고 같이 풀어야 한다. 배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류나 힘든 난간이 어디서 발생하는지 깊게 봐야 하니까 회사 상황을 아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됐다.
Q. 책을 쓴 계기나 과정을 들려준다면.
A. 책을 1년 정도 썼는데, 그 과정에서 옛 동료들을 인터뷰했다. 이 책을 쓴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궤적을 보지 않고 바깥의 눈으로 손쉽게 (조선소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게 싫었다. 국가는 공동체가 필요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가족’으로 불러낸 거고 대우, 삼성, 노동자 본인들도 다 필요에 의해서 ‘가족’으로 편입됐다. 이제 와서 공적자금이나 털어가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치는 게 싫었다. 둘째는 ‘추격형 경제’에서 ‘탈 추격형 경제’로 바뀌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제조업의 위기가 어떤 방식으로 현장에서 드러나고 있는지, 무엇을 개선해야 할 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싶었다.
Q. 산업 측면으로 넘어와서 기본적인 질문부터 하겠다. 조선업은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경기순환적인 산업이다. 그래서 사양 산업이 아니라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A. 25년이 지나면 배를 폐기해야 한다. 그러니까 발주가 계속될 거다. 그런 측면에서 조선업은 사양 산업이 아니라는 것엔 동의한다. 하지만 그 축은 이동한다. 산업이 죽지 않는 것과 어떤 나라가 독점해서 패권국으로 산업을 영위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Q. 우리나라 조선업이 지난해 세계 수주 1위 자리를 되찾았다. 특히 고부가가치선인 LNG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전망이 밝지 않다는 말인가.
A.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현재 동남아시아도 기술력을 확보한 상태다. 경쟁이 치열하다. 매출 말고 수익을 낼 수 있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경쟁력은 결국 혁신에서 나온다. 앞으로의 먹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수주가 많아졌으니 매출이 들고 도크(선박 건조장)가 돌아가는 이상 노동자 숫자는 늘어날 거다. 하지만 앞으로 4~5년 정도의 시간을 번 것뿐이다.
Q. 책에서 ‘국제해사기구의 환경 규제가 우수한 기술력을 확보한 우리나라에 호재다’라거나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숙련인력을 줄이면 안 된다’는 주장은 무책임하다고 책에서 말했다. 어떤 의미인가.
A.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고, 우리나라는 LNG운반선 기술이라든지 재액화기술(기체를 액체화 시키는 기술)이라든지 뛰어나다. 중국이 납기도 못 지키고, 품질의 문제가 있어서 당분간 우리나라에 호재는 맞다. 두 번째 노동자들을 숙련도 때문에 잡아놔야 한다는 말은 잘 모르겠다. 얼마나 잡아놔야 하는지, 최소 필요 인력이 산정이 잘 되지 않는다. 또 경기가 안 좋아지면 결국 공적자금이 거론된다.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잡아 두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전원 고용 보장해야 하고, 그것이 숙련도 때문이라고 말하기엔 함정이 많다. 수주 물량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노동의 유연성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산업이다. 또 생산직은 절반밖에 안 된다. 절반은 지원 부서다. 물론 필요한데, 그게 생산 역량이라고 말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Q.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한다. 우리나라 조선 산업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고 보나. 또 빅3에서 빅2로 재편은 어떻게 전망하나.
A. 가격경쟁력에서 도움이 된다. 현대와 대우는 상선을 잘하고 삼성은 해양을 잘한다. 그런 식으로 구분 짓는 걸 합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제는 대우 물량을 현대에 다 몰아주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그렇게 안 된다고 본다. 두 회사가 가진 기술이 다르다. 현대는 모스(LNG운반선 가스 창이 위로 봉긋 솟게 건조하는 기술)를 많이 짓게끔 도크가 만들어져 있다. 대우는 멤브레인(LNG운반선 가스 창이 아래로 들어가게 건조하는 기술)을 만든다. 군산조선소의 예를 들어서 걱정하는데, 군산은 설비가 작고, 원래 저부가가치 싼 배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배제된 거다. 대우와 다른 경우다. 현대와 대우는 영업도 같이 하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Q. 부울경 지역의 밴더(협력업체)는 비상인데.
A. 그게 문제다. 현대가 쓰는 밴더를 대우가 쓰는 거 아니냐. 그럴 가능성도 있다. 그럼 녹산 공단을 비롯해서 부산 지역 기자재 업체가 다 죽는데, 그 부분은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본다. 산업은행이 인수합병 후에도 지주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것은 공공적인 의사 결정의 책임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Q. 조선 업계는 정규직을 최소화하고, 물량팀, 돌관팀으로 불리는 하청업체 인원을 써서 공정의 80%를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 숙련공 확보에 문제가 있진 않을까.
A. 조선업은 상대적으로 용접 등 숙련도가 많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과의 싸움이다. 결국 단순화·자동화된 공정으로 갈 거다. 결국 혁신과 구조조정이다. 현대와 대우를 제치고 해양플랜트 수주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조인트벤처 같은 경우를 봐도 그렇다.
Q. 책 서두에 ‘열심히 묵묵히 일한 사람들의 시간이 이렇게 사라져야만 하는 것일까. 다시 재건될 수는 있을까. 그러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말이 인상 깊다. 우리나라 조선업이 취해야 할 전략은 무엇이라고 보나.
A. 결국 무엇을 지킬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지금 조선소의 주력은 50대 이상 생산직이다. 그분들 때는 대학 진학률이 25%가 안 된다. 공고, 상고를 나와서 작업한 것으로 보면 된다. 지금은 사실 대졸이 훨씬 많다. 75% 이상이다. 생산 관리나, R&D(연구·개발), 기술직 업무를 많이 한다. 생산직은 줄고 기술직이 많아지는 추세다. 언제까지 건조 작업을 한국에서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장기적으로 한국의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은 새로운 고부가가치 선박이나 해양플랜트의 테스트 베드가 되고, 공학도들의 테크노파크 같은, 즉 제조업의 판교 같은 클러스터를 지어야 한다. 그 때쯤 되면 조선업의 최종 생산은 국외에서 진행하게 될 거라고 본다. 아빠들(생산직)의 직장과, 아이들(사무기술직 엔지니어)의 일자리 중 무엇에 더 집중할 것인가는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질문이다 회사는 답을 못한다. 국가가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부품 소재 강소 기업을 미리 키우는 방향으로 끌고 가거나 주력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거나, 해양플랜트를 시도할 때처럼 아예 새로운 신사업을 찾아 나서는 방법도 있다. 솔루션은 모르겠다. 다만 (LNG운반선 수주로) 시간은 조금 벌었다.
박현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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