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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밸런타인데이와 화성탐사선 '오퍼튜니티'

밸런타인데이에 태양계 바깥으로 나간 보이저호, 임무 완료한 오퍼튜니티

2019.02.15(Fri) 10:20:35

[비즈한국] 나는 초콜릿을 아주 좋아한다. 찬장에 초콜릿을 쌓아두고 먹을 정도여서 어릴 적부터 치과에서 VIP 대접(?)을 받았다. 특히 천문학이라는 분야에 몸담으면서 초콜릿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찬바람이 부는 천문대나 연구실에서 컴퓨터의 온기에만 몸을 맡긴 채 밤을 새려면 오레오 쿠키나 초콜릿 같은 고열량 행동식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초콜릿 중독을 정당화한다). 

 

이렇게 천문학자들이 단 음식에 빠질 수밖에 없는 데에는 바로 천문학이 다른 자연과학과 다른 큰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천문학은 실험을 할 수 없는 과학이다. 물리, 화학, 생물 등 다른 대부분의 자연과학은 실험실에서 다양한 실험을 한다. 그러나 천문학자들은 그렇지 않다. 

 

나도 어린 시절 과학자를 꿈꾸었을 때, 과학자라고 하면 당연히 하얀 가운을 입고 불꽃과 연기로 가득한 실험실에서 약물을 섞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천문학 연구를 하면서 단 한 번도 가운을 입어본 적이 없다. 천문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늦은 밤 초콜릿을 입에 욱여 넣으며 천문대에서 밤을 지새는 것뿐이다.

 

2015년 8월 25일 보이저 1호는 공식적으로 인류가 보낸 탐사선 중 처음으로 태양계 바깥, 성간우주 공간에 진입한 탐사선이 되었다. NASA가 이를 기념해 제작한 보이저 1호의 포스터. 사진=NASA/JPL-Caltech

 

재미있게도 천문학은 우주라는 광막한 연구 대상 안에 천문학자라는 연구 주체가 파묻혀 있는, 주객이 전도된 학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루이틀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가 인류의 역사를 연구하겠다고 덤비는, 고작 먼지 같은 사람 주제에 우주라는 거대한 세상을 감히 연구하겠다고 도전하는 굉장히 허무맹랑한 학문인지도 모른다. 

 

태양계 바깥 가장 가까운 별까지만 해도 그 빠른 빛의 속도로 3~4년은 날아가야 할 정도로 우주는 텅텅 비어 있다. 또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다들 ‘멀리 계시기’ 때문에 직접 별을 방문해 그곳에서 얻은 샘플을 실험실에 가지고 와서 연구를 하는 일 따위는 상상할 수 없다. 이렇게 실험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오로지 하늘에 펼쳐지는 별들의 공연을 구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천문학이 가진 묘한 매력이자 태생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그래도 태양계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은 수억 광년 떨어진 은하를 연구하는 우리 연구실 동료들보다 상황이 낫다. 냉전 이후 반세기에 걸쳐 계속 발전한 로켓 기술 덕분에 직접 로봇을 보내 행성 표면의 세밀한 인증샷을 찍고, 샘플까지 채취해서 지구로 챙겨올 수도 있으니까. 이제 달 정도는 하루면 날아갈 수 있고, 가장 인기 많은 화성까지도 6~7개월 정도면 날아갈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이나 로봇이 직접 날아가 방문할 수 있는 범위의 우주를 ‘스페이스(Space)’라고 한다. 반면 우주의 모든 시공간과 물리 법칙을 아우르는, 별과 은하를 포함하는 영역의 넓은 우주를 ‘유니버스(Universe)’라고 부른다. 보통 우리는 두 단어를 모두 우주라고 옮기기 때문에 미묘한 뉘앙스를 구분하기 어렵지만, 사실 두 단어가 지칭하는 우주는 많이 다르다. 스페이스는 직접 방문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미개척지로서의 우주, 유니버스는 고개를 들어 지구 밖을 봐야만 만날 수 있는 아득한 우주를 의미한다. 

 

그나마 해볼 만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태양계 천체들을 방문하며 우리는 어떤 스페이스를 만날 수 있을까? 천문학자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 태양계 탐사 로봇들은 크게 두 가지 임무를 수행한다. 최대한 먼 우주까지 인류의 영역 표시를 남기려는 기술적인 도전, 그리고 지구 바깥에서 지구와 같은 생명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가장 먼 우주에 남긴 영역 표시는 어디에 있을까?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약 60억 km 거리에서 촬영한 지구의 모습. 사진 속 먼지 같은 작은 흰 점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다. 사진=NASA/JPL-Caltech

 

인류의 역사적인 장거리 우주여행의 기회는 1977년 찾아왔다. NASA의 천문학자들은 수백 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운 좋게 태양계 외곽의 거대한 가스 행성들(목성, 토성, 천왕성, 그리고 해왕성)의 궤도가 잘 배치되었다. 탐사선의 궤적을 잘만 조준하면 태양계 외곽의 이 거대한 가스 행성들을 순서대로 방문하며 제대로 탐사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천문학자들은 서둘러 보이저(Voyager) 1호와 2호 쌍둥이 탐사선을 만들었다. 1977년 두 대의 보이저호는 지구를 떠나 힘차게 날아올랐다. (탐사 궤적과 여행 속도 차이로 보이저 2호가 1호보다 먼저 발사되었다.) 

 

보이저호는 예정된 궤도를 따라 무사히 해왕성 근처를 지나갔다. 천문학자들은 서서히 태양계 가장자리로 나아가는 보이저호에게 한 가지 로맨틱한 명령을 보냈다. 더 멀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카메라 앵글을 태양계 안쪽으로 돌려 멀어져가는 우리의 고향, 지구와 태양계 행성들의 가족사진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보이저호는 차분히 한 장 한 장 방향을 바꿔가며 태양계 가족들의 모습을 담았다. 

 

1990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인류는 처음으로 우리 태양계의 파노라마 가족사진을 마주했다. 그 가족사진의 한 구석에 픽셀 하나보다 더 작은 얼룩으로 담긴 우리 고향 지구의 낯선 모습을 마주했다. 지구는 먼지 한 톨처럼 작고 흐릿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었다. 보이저호는 너무나 당연해서 쉽게 망각하게 되는, 우리는 이 광막한 우주를 부유하는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확인해주었다. 사진 속 작은 점이 되어 담긴 지구의 모습은, 아득한 우주로 멀어져가는 보이저호가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인류에게 보내준 마지막 이별 선물이었을지 모른다.[1]

 

오퍼튜니티 탐사 로봇은 쌍둥이 로봇 스피릿(Spirit)과 함께 15년간 화성 곳곳을 누비며 화성에서 고대 생명을 암시하는 다양한 물의 흔적을 발견했다. 사진은 2004년 7월 26일 화성에서 180일째를 보내는 오퍼튜니티의 그림자. 사진=NASA/JPL-Caltech


보이저호가 지구의 아름답고 외로운 인증샷을 보낸 지 29년이 지난 어제, 천문학자들은 또 한 번의 로맨틱한 이별을 맞이하며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했다. 

 

작년 여름, 화성에 관측 사상 최악의 모래 먼지 폭풍이 일었다. 이때 운 나쁘게도 오퍼튜니티(Opportunity)가 폭풍에 휘말려 신호가 끊어졌다. 태양판으로 배터리를 충전해 움직여야 하는 오퍼튜니티에게는 최악의 자연재해였다. 지구의 천문학자들은 태양판에 쌓인 모래 먼지들이 바람에 불려 날아가, 다시 신호가 닿기를 바랬지만 결국 오퍼튜니티는 답장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2019년 2월 14일, NASA는 지난 15년간 화성의 광활한 붉은 사막 곳곳을 누비며 물과 생명의 흔적을 찾아나섰던 탐사 로버 오퍼튜니티와의 공식적인 이별을 발표했다. 이렇게 인류는 또 한 번, 밸런타인데이에 태양계를 누볐던 탐사선과의 이별을 맞이했다.[2][3]

 

2018년 9월 20일 화성 상공을 맴돌고 있는 궤도선 MRO(Mars Reconnaissance Orbiter)의 카메라 장비 HiRISE로 포착한 화성 표면의 오퍼튜니티. 하얀 사각형은 한 변이 약 1km 크기이다. 사진=NASA/JPL-Caltech/Univ. of Arizona

 

지금도 많은 태양계 탐사선이 임무를 이어가며 언젠가 찾아올 마지막 임무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탐사선들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초콜릿처럼 달콤한 새로운 발견을 전해줄 것이다. 또 우리는 초콜릿처럼 씁쓸한 또 다른 탐사선과의 이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매년 찾아오는 밸런타인데이처럼 우리는 또 다시 새로운 발견과 이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주는 다크초콜릿처럼 달콤하고 또한 씁쓸하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우주가 가진 묘한 중독성의 비밀일지도 모르겠다. 

 

[1]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41/6151/1158 

[2] https://mars.nasa.gov/news/8413/nasas-opportunity-rover-mission-on-mars-comes-to-end/

[3]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9-00575-2​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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