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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 땐 '시세대로' 내릴 땐 '기다려라' 세입자는 '법대로?'

시세 내렸는데 2년 전 가격에 내놓으니 아무도 안 와…전세보증보험 있지만 미흡

2019.02.13(Wed) 16:43:13

[비즈한국]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11곳이 2년 전보다 전세가가 떨어졌다. 전셋값 하락이 지속되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피해를 입는 세입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임차인, 전세권자가 경매를 신청한 건수는 2017년 298건에서 2018년 389건으로 늘었다. 경기도 수원시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 집주인 “만기일 맞춰주는 전세가 어디 있나”​

 

서울 마포구에 사는 양 아무개 씨(35)는 4년간 지냈던 전셋집의 계약이 지난 12월 만기가 됐지만 이사하지 못하고 있다. 양 씨는 “다음 세입자가 없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 계약서에 계약기간이 명시돼 있지만 의미가 없다”며 “집주인은 세입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듯 말하는데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기다려야 하는 건가. 세입자 보호가 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구로구에 신혼집을 얻은 석 아무개 씨(30)도 마찬가지다. 그는 만기 6개월 전부터 ‘사정이 있으니 만기일에 이사 갈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만기일이 지나도록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석 씨는 “집주인은 ‘전세는 만기부터 3~4개월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다. 만기에 맞춰 나가겠다는 생각은 세상 물정 모르는 것’이라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며 “세입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법적으로 하려면 해 보라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경기도에 사는 이 아무개 씨(32)도 지난 연말 전셋집 만기로 이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전셋값 하락으로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았다. 집주인이 시세 하락과 상관없이 2년 전 가격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시세에 맞게 가격을 조정해야 다음 세입자가 오지 않겠느냐’고 말했지만 집주인은 ‘차액을 현금으로 마련할 수 없다’며 기다리라는 통보만 했다. 먼저 연락해 사과를 하거나 양해를 구하는 모습도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이 씨는 전세금반환소송을 결정했다. 그는 “소송을 시작하니 처음으로 집주인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그제야 사과를 하며 ‘시세에 맞춰 가격을 내렸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며 “변호사 선임 등 이미 소송에 들인 비용이 600만 원 이상이 든다. 그러나 소송을 진행하지 않았다면 집주인이 시세에 맞춰 집을 내놓거나 사과를 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주거시설 경매 건수는 2017년 3만 8142건에서 2018년 4만 7408건으로 9266건 늘었다. 지난 1월 1일부터 2월 11일까지 42일간 접수된 경매 건수만 5442건이다. 임차인, 전세권자가 경매를 신청한 건수도 2017년 298건에서 2018년 389건으로 30% 늘었다.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주택가격과 전세가가 동반 하락한 경상·충청 지역의 경우 강제 경매 중 임차인이 신청한 건수는 2018년(11월 말 기준) 88건으로 2017년(43건)의 2배 수준을 보였다. 임의 경매 중 전세권자가 신청한 건수도 2018년(11월 말 기준) 72건으로, 2017년(42건)에 비해 71.4%나 급증했다. 

 

지지옥션 관계자는 “2018년 4분기를 달군 ‘깡통 주택·전세’ 후폭풍이 현재진행형인 만큼 2019년에는 전세 임차인에 의한 경매신청이 늘 것으로 전망된다”며 “수도권의 경우 몇 년 전 성행했던 갭투자의 만기가 올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보증금이 낮아지고 전세 수요도 적어져 2019년 경매신청이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입자의 불안감을 증명하듯 지난해 전세보증보험 가입자 수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서울 잠실의 부동산 시세판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박은숙 기자

 

# 전세보증보험이 최선이지만 모든 세대 보호 안 돼

 

전세금 보호를 위해서는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세입자의 불안감을 증명하듯 지난해 전세보증보험 가입자 수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자 수는 2016년 2만 4460세대에서 2017년 4만 3918세대, 2018년에는 8만 9351세대로 늘었다. 보증 금액도 2016년 5조 1716억 원에서 2018년 19조 367억 원으로 3.7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모든 세입자가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전셋값 기준 수도권 7억 원 이하, 지방 5억 원 이하 아파트만 가입 가능하다. SGI서울보증의 ‘전세금보장 신용보험’은 아파트 외 다른 주거형태의 경우 10억 원 이하만 가입할 수 있다. 

 

빌라나 오피스텔, 다세대 주택 세입자의 경우 가입이 까다롭다. SGI서울보증은 임대인이 임대사업자로 등록돼 있지 않을 경우 동일 임대인에 대해 2건까지만 보증서를 발급한다. 다른 세입자들이 먼저 보험에 가입했다면 3번째 세입자는 보험 가입을 할 수 없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국내 부동산 시장은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고질적 문제가 있다”며 “지금 같은 세입자 피해는 정부 규제의 영향이 크다. 정부에서 규제를 강화하면서 부동산 거래 수요가 줄고 깡통전세 등의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분명한 계약 기간이 있음에도 전세금을 제때 주지 않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다”며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집주인이 도의적으로 해결 의지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소송을 통해 세입자가 전세금을 받을 최소한의 장치는 있지만 비용과 시간 등의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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