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다시 좀비 열풍이 분다. 넷플릭스에서 역병에 걸린 조선 좀비들을 그린 ‘킹덤’을 선보였는가 하면, 2월 13일 개봉 영화 ‘기묘한 가족’이 B급 감성으로 좀비를 다루고, 한국형 좀비로 천만 영화를 기록한 ‘부산행’이 2편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리고, 이윤창 작가의 웹툰 ‘좀비딸’도 인기를 누린다.
몰려오는 좀비를 보고 있노라니 슬그머니 뱀파이어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좀비와 함께 쌍두마차로 대중문화 인기 소재로 등장하는 그 뱀파이어 말이다. 개인적 취향은 좀비보다 뱀파이어인데, 대체적으로 의사소통이 힘든 좀비보다는 뱀파이어가 더 매력적이거든. 그래서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안녕, 프란체스카’다. 한국형 뱀파이어의 출현이자 최초 시즌제 시트콤으로, 2005년의 유행어를 대거 양산했던 컬트적 작품이다.
‘안녕, 프란체스카’에는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뱀파이어는 없다.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속성은 갖고 있지만, 아름답고 기이한 매력이 넘쳐 사람을 홀린다든가, 대단한 초능력을 갖고 있다든가, 오랜 세월의 경험과 능력을 밑바탕으로 부유하게 산다든가 하는 모습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대낮의 햇빛을 쐬어도 녹아내리지 않고, 십자가나 마늘도 기피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람의 피를 좋아하지만 더 이상 인간을 물지 말라는 앙드레 대교주(고 신해철)의 명에 따라 인간의 밥을 먹는다. 겉보기에는 인간과 똑같다. ‘안녕, 프란체스카’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은 더 이상 인간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해 오히려 안전에 위협을 받는 처지인지라 전 세계 곳곳에 있는 뱀파이어 안전가옥으로 떠나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500년을 넘게 살아온 프란체스카(심혜진)와 프란체스카의 라이벌 엘리자베스(정려원), 대기근으로 부득이하게 닭 피로 연명하느라 닭대가리 같은 지능을 지닌 이켠(이켠), 그리고 1000년을 넘게 살아온 열여섯 살 외모의 소피아 왕고모(박슬기)는 원래 일본 안전가옥으로 피신하려다 실수로 한국에 온다.
오자마자 프란체스카가 마흔 살의 별 볼일 없는 아저씨 이두일(이두일)을 무는 바람에 이들은 졸지에 함께 살게 된다. 대외적으로 아빠(이두일)와 엄마(심혜진), 엄마의 여동생(정려원), 아들(이켠)과 딸(박슬기)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평범하디 평범한 대한민국의 보통 가족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작품의 재미는 뱀파이어 무리가 구성하는, 그 유사 가족이 빚어내는 유쾌 발랄한 웃음과 진한 페이소스에 있다.
뱀파이어가 되었지만 두일은 여전히 박봉 월급 150만 원(나중에 올라서 170만 원이 된다)을 벌기 위해 직장에 나가야 한다. 갑자기 생긴 식구들 덕에 돈 나갈 일은 많은데, 이놈의 뱀파이어들은 귀족 태생이라 돈을 쓰는 데만 최적화되어 있지 도무지 벌 줄을 모른다.
그러나 서서히 가족의 꼴이 잡혀가면서, 엄마 역할을 맡은 프란체스카는 마트 시식 알바부터 시간제 가사도우미, 포장마차에 이르기까지 가족을 먹여 살리고자 안간힘을 쓴다. 시트콤이니만큼 이 모든 행위에는 포복절도할 웃음이 담보되는데, 배고픈 가족을 위해 끓인 삼계탕이 사실은 비둘기였다든가, 좀 더 넓은 월세로 옮기려다 부동산 사기를 당해 낡은 봉고차로 가족 전체가 노숙 생활을 하는 정도는 기본이다.
뱀파이어라는 것만 빼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서민층 인생극장이다. 아,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더니, ‘안녕, 프란체스카’가 딱 그 표본이 아닌가. 무표정한 얼굴에 고스톱 삼매경에 빠져 왕왕 폭력적이 되는 프란체스카의 귀여움과 안쓰럽기 그지없는 두일, 1000년을 살아 뱀파이어들의 왕고모로 군림하지만 인간들에게는 열여섯 애처로운 딸내미 역할을 천연덕스럽게 해내는 소피아 등 모두가 사랑스럽기 짝이 없다.
게다가 조연으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어찌나 개성 넘치는지. 두일과 가족들이 세 들어 사는 주인집 여자 박희진(박희진 a.k.a 안성댁)은 “이거 웬 당황스러운 시츄에이션~~~”을 외치며 강렬하게 우리를 홀릭시켰고, 프란체스카의 고스톱 라이벌 핑크레이디(이수나)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드는 국어책 연기로 외려 웃음을 준 디자이너 장광효와 건축가 김원철(실제 인물이 본명과 본 직업으로 출연), 켠과 단짝이 되어 철부지 20대 아들의 모습을 보여준 이용주(이용주)까지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안녕, 프란체스카’에 진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신해철. 너무나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영원한 마왕 신해철이 자신의 마왕 이미지를 우스꽝스럽게 차용해 만든 앙드레 대교주도 잊을 수 없다. 엄청난 포스로 등장하지만 기실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곗돈 들고 튄 삼촌 역할을 맡은 그의 모습이 선연하다.
‘안녕, 프란체스카’는 2005년 1월 시즌1을 시작해 곧이어 시즌2, 그리고 2006년 2월에 시즌3으로 막을 내리기까지 약 1년간 우리를 웃고 울게 만들었다. 심혜진과 박슬기만 남고 대거 새로운 인물들로 구성된 시즌3는 굳이 제작하지 않아도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안녕, 프란체스카’는 웃기면서 슬프고 슬프면서 웃긴 독특한 시트콤이었음은 분명하다. 14년이 지나도 웃기니 반신반의하지 말고 보자. 프란체스카가 했던 말처럼, “맘껏 즐겨.”
필자 정수진은?
영화를 좋아해 영화잡지 ‘무비위크’에서 일했고, 여행이 즐거워 여행잡지 ‘KTX매거진’을 다녔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이며,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유튜브에 있다는 걸 깨달은 후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이다.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올드라마]
명절에 보면 더욱 공포스럽고 기괴한 '솔약국집 아들들'
·
1000만 보이는 '극한직업' 관객보다 더 크게 웃는 영화업계
· [올드라마]
설날이면 그리워지는, '곰탕' 한 그릇에 담긴 사랑
· [올드라마]
김수현표 '청춘의 덫'에 빠진 남녀의 배신과 복수
· [올드라마]
첫 화부터 질주하는 세상 슬픈 이야기 '미안하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