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경쟁사들이 어떤 제품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고객의 기쁨과 즐거움만을 생각한다. 타사 제품을 잘 모른다. 그것이 우리만의 차별점이다.”
일본 가전제품 기업 ‘발뮤다’가 공기청정기 신제품 ‘발뮤다 더 퓨어(BALMUDA The Pure)’를 선보였다.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신제품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테라오 겐 발뮤다 대표는 12일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제품을 직접 소개하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깔끔한 디자인과 차별화된 기능으로 ‘가전업계의 애플’로 통하는 발뮤다는 2003년 설립돼 지금까지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는 가전기업이다. 특히 발뮤다는 국내 가전제품 기업들에는 은근히 무서운 존재로 통한다. 발뮤다 제품이 입소문을 타면서 마니아가 생길 정도로 한국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다. 특히 발뮤다가 만든 토스터는 최근 ‘죽은 빵도 되살리는 토스터’로 유명하다.
이처럼 발뮤다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공기청정기 신제품을 먼저 발표한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공기청정기 시장이 갈수록 줄어드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매년 시장 규모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 우리나라는 사시사철 미세먼지로 고통받으면서 발뮤다에 대한 긍정적인 인지도가 높고 구매력까지 갖춘, 모든 조건에 만족하는 시장이다. 이날 발표 현장에서 테라오 겐 대표 역시 “한국에서 발뮤다 인지도가 향상하고 있는데 그 기회를 노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정말 공기가 쾌적하다고 느낄까
신제품 발뮤다 더 퓨어는 2013년 발뮤다가 내놓은 공기청정기에 이어 새로운 콘셉트로 만들어진 후속작이다. 겉으로만 보면 다른 제품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세로 형태로 긴 공기청정기라는 점에서 기존 제품과도 비슷하다.
그럼에도 테라오 겐 대표는 신제품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함께 발뮤다만의 특별한 제품 철학을 설명했다. 핵심은 바로 ‘체험’이다. 대다수 기업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품의 디자인이나 기능 등 제품 그 자체에 초점을 둔다. 하지만 발뮤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제품을 통해 원하는 경험을 체험할 수 있을지를 중요시한다고 설명했다.
제품이 화려하지 않아도, 남다른 전문 기술이 들어가 있지 않아도 제품이 고객에 특화돼 있다면 괜찮다는 것. 테라오 겐 대표는 “이번에 가장 많이 한 고민은 ‘공기청정기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고 사람들이 정말 쾌적하다고 느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였다”고 말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다. ‘거실과 침실의 주인공은 당연히 사람이니 공기청정기는 눈에 띄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제품으로 인해 공기가 쾌적해진다는 것을 사람들이 몸소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 아래 디자인은 아주 단순하지만 공기가 정화되는 느낌은 강렬하게 연출한 제품이 탄생했다. 하단에 빛의 통로를 설치해 모든 불이 꺼진 한밤중에 이 통로를 통해 공기가 어떻게 순환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즉, 공기가 순환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사람들이 쾌적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테라오 겐 대표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실제 성능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다. 테라오 겐 대표는 공기청정기에 항공기 제트 엔진 기술을 이용한 정류 날개를 장착하는 방식을 적용하는 한편, 필터 업체와 협력을 통해 ‘트루헤파’라고 이름 붙인 전용 필터도 개발했다. 이러한 기술을 통해 매분 7000리터(ℓ)의 공기가 순환하며 필터를 통과해 0.3㎛의 미립자를 99.97%까지 정화한다고 설명했다.
발뮤다 제품의 가격은 대체적으로 비싼 편이다. 이날 선보인 공기청정기 신제품도 74만 9000원으로 가격이 책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은 높은 편.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싸도 마음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면 소비하는 이른바 ‘가심비’를 따지는데 이러한 소비심리를 꿰뚫었다는 평가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발뮤다 제품들은 ‘비싸지만 언젠간 사고 싶은 제품’으로 통한다.
이날 신제품 간담회에서는 지금까지 발뮤다가 출시한 제품이 다수 전시됐다. 그 중에서도 지난해 가을 일본서 출시한 ‘발뮤다 더 라이트(BALMUDA The Light)’가 눈길을 끌었다. 해당 제품에는 발뮤다가 발명한 수술실 조명과 흡사한 전용 광원이 장착됐다. 테라오 겐 대표는 “공부는 몇 시간을 하는지, 빛의 밝기는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를 꼼꼼히 분석했다”며 “처음 꾼 꿈이 선명하면 선명할수록 그 꿈은 더욱 강력해지지 않나. 아이들에게 선명한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발뮤다는 2017년 일본에 출시한 밥솥 ‘발뮤다 더 고한(BALMUDA The Gohan)’을 한국에는 아직 출시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까지 한국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일본과 한국의 밥 짓는 환경에 차이가 있어 더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발뮤다, 가전명가 일본의 자존심 이어나갈까
최근 수년간 제품이 입소문을 타면서 발뮤다의 성장 비결에 대한 관심도 크다. 내로라하는 일본의 가전 기업들의 명성이 예전같지 않은 가운데, 발뮤다가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며 일본 가전 기업의 자존심을 지켜갈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발뮤다는 테라오 겐 대표가 혼자서 세운 회사다. 회사를 처음 설립했을 때 회사 본사는 집이었고, 근처 공장에서 부품을 하나둘씩 모아 제품을 만들었다. 게다가 테라오 겐 대표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회사를 세웠을 때는 이미 수차례 실패를 겪고 난 후인 서른 살이었다. 그는 “회사를 세우기 전 나는 뮤지션이었고 그전에는 17세 때 고등학교를 퇴학당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불량배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렇게 혼자 꾸려온 기업이 곧 직원 수 100명을 넘어선다. 처음 시장에 진출했을 때인 2003년 대비 매출액이 1850배 증가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그는 이렇게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배경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테라오 겐 대표는 “어린 시절 항상 어머니에게 한 번 해낸 것은 또 한 번 해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래서 몇 번이나 꿈을 계속 꿀 수 있었다”며 “인류는 아직 본 적이 없는 것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이 욕구를 충족해줄 도구를 창작해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테라오 겐 대표는 올 여름과 가을에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신제품을 잇달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몇 번이나 계속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15년 동안 매출액을 상당히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손에 꼽는 기업이 될 것이라는 큰 꿈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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