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경쟁에서 자본은 경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요소이다. 그러나 간혹 자본을 불공정 요소로 보기도 한다. 특히 골목상권 등이 주제가 될 때 자주 볼 수 있는 시각이다. 대형 자본이 골목상권을 망친다는 것 말이다.
거대 자본은 언제나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이고 영세업체를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5000만 원의 자본으로 시작해 가게 주인의 인건비를 제하고 최종적으로 월 50만 원씩 수익을 내는 가게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만약 그 인근에 5억 원(이 금액을 거대 자본이라 하기엔 애매하지만)을 들여 월 200만 원씩 순수익을 거두는 거대 자본이 있다고 하면, 이 자본은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외부의 시각으로 볼 때는 남들이 월 50만 원 벌 때 거대 자본은 월 200만 원씩 벌어들이니 크게 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기자본이익률(ROE)로 살펴보자면 자본금 5000만 원 가게는 ROE가 12%에 달하지만, 5억 원의 거대 자본은 5%다. 만약 5억 원을 다른 곳에 투자했을 때에 기대되는 ROE가 10%라면, 이 거대 자본은 연 1200만 원의 순수익을 거두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다른 곳에 투자했다면 2400만 원의 수익을 더 거뒀을 테니 말이다. 따라서 이 경우는 실패한 투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외부인은 정확한 투입 자본의 규모를 모를뿐더러 판단의 기준을 자신의 경험에 두기에 이 금액이 대단해 보인다. 예를 들어 연간 수익이 3억 원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우 큰 금액으로 여긴다. 그러나 여기에 투입된 자본의 규모가 몇백억 원이라면 수익이 형편없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언제나 돈을 잘 버는 것처럼 보이는 대형 자본도 돈을 아주 잘 번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형 자본은 그 규모 때문에 대중에게 맞춰져 있다. 우리나라 국민 1000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거대 자본이라면, 상품 자체가 대다수 사람의 취향에 맞아야 한다. 따라서 상품이 무난하고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량생산을 해야 하기에 가격, 품질, 디자인 등 여러 부분에서 희생해야 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지나치게 무난하다는 이런 특성은 작은 업체들과 경쟁할 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작은 업체들이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을 노리고 승부를 볼 수 있는 반면 대형 자본은 그 규모 때문에 대중성을 버리기 어려우므로 상대적 열위에 놓이는 셈이다.
또 자본의 규모가 클수록 그에 걸맞게 벌어들이는 수익의 규모도 커야 하므로 규모가 작은 시장에는 진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움직이는 자본의 규모가 몇천억 원인 곳이라면 겨우 1억~2억의 이익을 내는 곳에 골몰하지 않는다. 그만큼 시간과 인력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거대 자본이 모든 시장을 압도하는 듯하고 불공정하게 보인다면, 이런 점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골목상권이라면 자본에 대한 지나친 경계를 늦출 필요가 있다. 거대 자본의 폐해를 이야기하던 골목상권들은 공통적으로 상권이 성장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엔 성장으로 인한 자본의 투입도 있지만, 자본의 투입으로 인한 성장도 존재한다. 자본이 진입하지 않는 상권과 시장은 주로 심각한 상황에 빠진 곳이다.
골목상권에서 자본에 대한 오해는 많다. 그러나 자본은 보기와 달리 언제나 승리와 수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며, 때로는 비효율적 투자로 인해 겉으로는 돈을 버는 것처럼 보여도 기회비용의 상실로 인한 실패 또한 많다. 자본이 언제나 이기고 골목상권을 망친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에 가깝다.
필자 김영준은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를 졸업 후 기업은행을 다니다 퇴직했다. 2007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바비’란 필명으로 경제블로그를 운영하며 경제와 소비시장, 상권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자영업과 골목 상권을 주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에 외부 기고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골목의 전쟁’이 있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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