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0. ‘SKY캐슬’에 내 인생 스무 시간을 투자했다. 생산적으로 가성비가 탁월하지 않았으나 시간은 잘 갔다. 처음에는 평론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는데, 드라마적 종결을 보고는 점차 할 이야기가 없어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설이라도 남겨 놓으면 시간의 가성비가 약간 올라갈 것 같다. 그래서 시작한다(※당연히 스포 있음).
1. 먼저, 의사로서의 고증
어차피 한국 드라마에서 의학적 고증은 거의 무의미에 가깝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욕망이 작동하는 도구이거나 운명이 결정되는 공간, 아니면 주인공인 의사가 근무하는 직장으로서의 배경일 뿐이다. 의학 드라마라 할지라도 의학 그 자체가 주인공이라기보다 이야기를 연역적으로 납득시키고 풀어나가는 재료라고 할 수 있다. ‘SKY캐슬’에서도 병원이라는 내부 공간은 욕망을 상정하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도구로만 사용되지, 더 이상 의학적인 날카로움을 넘보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SKY캐슬’의 의료적 고증은 딱 그만큼만 적당하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부터 병원장이 목표라서 병원에서의 지위만을 생각하고 눈알을 활활 불태우면서 병원장과 관계 개선을 타진하며 종일 로비를 펼치는 경우는 그다지 본 일이 없고, 앙심을 품은 환자가 칼을 들고 정형외과 과장과 그 많은 직원과 환자들 사이에서 십 분간 릴레이를 하다가 가스총을 쏘는 일은 현실에서는 끔찍할 것이며, AOA 멤버를 인턴이 민머리로 만들어 놓는 일은 판타지 소설에서나 가능할 것이고, 신경외과 교수가 동료 정형외과 교수의 진료를 저격해서 타박하는 칼럼을 신문에 내고 그것이 병원 내에서 화제가 되는 일은 신경외과 교수의 바쁜 업무를 무시하는 처사다.
결정적으로 고등학생 뇌출혈 환자를 수술하려는데 갑자기 병원장의 손자가 뇌출혈로 나타나자 당직 신경외과 의사를 놔두고 진료부원장이 소리를 질러서 수술방 환자를 빼는데, 피도 아직 안 닦아놓고 심지어 의식도 명료한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굴러가다가 복도에서 방금 그 진료부원장과 눈을 마주치고는 곧 사망하는 비장한 장면들은, 뭐랄까, 지극히 한국 드라마적이지만 말이다.
이 단어 말고는 더 이상 설명할 방법이 없는 이상한 장면들이 용납되는 것은, 의학은 극중에서 주인공의 욕망을 선보이거나 캐릭터를 드라마적으로 설명하거나 스토리를 풀어나가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를 목표로 하는 캐릭터들의 상징성이 거슬러 모인 공간이 병원일 뿐이다. 오히려 현실을 넘기 위해 반드시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가령 정형외과와 신경외과가 척추 분야를 두고 다툼을 벌인다든지, 비급여 진료의 비중을 높여 실적을 올리는 단상들은, 나름대로의 고증이 적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하지는 않지만 레지던트들이 몰려다니는 행태가 현실과 비슷해서 조금 고개를 주억이게 하는 면도 있었다(정형외과는 수가 많아 같이 다니는 경우가 많지만, 신경외과는 혼자, 혹은 교수님과 다닌다).
다만 극 중에서 ‘서울대 의대’는 개념상 타노스의 ‘인피니티 스톤’이나 사우론의 ‘절대반지’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막상 그 의대를 나온 의사들의 생활은 그리 이상향에 가까워 보이지 않으며 행태는 그리 총명하거나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당장 예서의 미래로 그려지는 젊은 의사들조차도 비슷하다. 이것도 현실 고증이라면 고증이겠지만, 단연코 극중 설정과는 참으로 거리가 있다. 이 괴리에 나는 자주 웃음이 나왔다. 요악하자면 ‘저렇게 의대 가서 별거 없는데… 왜 다들 저러지?’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 상징이 욕망의 반영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 것이다.
2. 입시 전쟁
나는 8학군의 반포고등학교를 졸업했고, 학종이나 내신 따위는 개의치 않고 수능 정시로 한 번에 입학했다. 2002년도 입학으로, 수시라는 제도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수시를 관리 상담하는 분야가 막 생겨날 때니, 바야흐로 ‘입시 코디’의 태동이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수시 강화로 입시 코디라는 전문 분야도 충분히 생겼을 것 같다. 나는 그냥 가족과 주변 친척들에게 알음알음 도움 받았기에 정확히는 모른다. 내가 겪은 대입에 대해서 더 자세히 쓸 수 있겠지만, 아마 다른 글로 할애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교육적 현실에 대해서는 더 할 이야기가 없지만, “아파도 출석하고 아파.” “학원을 보냈는데 니가 딴짓을 하면 엄마 속에서 천불이 일어.” “엄마는 내가 죽어도 100점 맞았으면 좋겠지?” 같은 그 시절 그 엄마나 학생들의 대사는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부분일 것이다. 부모 경험을 한 사람은 그 나름대로, 자식 경험을 한 사람은 그 나름대로 그것들을 전부 이해할 수 있지만,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므로 무조건 갈등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집중적으로 포착한 것이 ‘SKY캐슬’ 성공의 일등공신일 테다. 나도 강남에서 계속 교육을 받았으니 느끼지만, 이 사교육의 전반적 행태는 너무 현실과 징그럽게 흡사하며, 강남 학부모였던 우리 어머니마저 이 드라마에 스무 시간을 기꺼이 헌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십 년도 지난 동료 학부모의 한 대사를 회상했다. “이제 얘 대학 가서 과외 팀 짜는 일 안하면 나는 뭐 하나….”
내가 눈여겨봤던 것은 극중 차 교수였다. 지척에서 보았던 분의 행동 패턴, 언어 습관, 자식들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일치했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우렁찬 큰 소리로 자녀들을 부르거나, 공부와 입시의 상징물을 애지중지 집안 눈에 잘 띄는 곳에 보관하고 틈만 나면 꺼내 이 상징물의 의의에 대해 설명한다거나, “너 경쟁자들은 시험 끝난 날부터 공부하고 있어.” “니 친구들 다 경쟁자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친구로 필요가 없다.” “대학을 못 간 실패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고 거리에 나앉는다.” 등의 대사는 매우 소름끼치게 비슷했다.
그가 달라지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과,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나머지 그리 지적으로 보이지 않는 점까지도 비슷했다. 그래도 차 교수는 “정신일도하사불성” 같은 군대 용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등의 군대식 마인드는 없었다. 또한 그것은 현실이었으므로 한 마디라도 대들고 반항하거나 아버지를 들어 집 밖으로 쫓아낼 수 있는 자식이 있지 않았다.
3. 전개의 흥미로움
초반부 극의 갈등을 이끄는 것은 단연 ‘예서 엄마’의 욕망이다. 초반에는 일견 악역 같기도 하다. 이 캐릭터로 갈등을 촉발시키기 위해서는 ‘그냥 악역의 악한 행동’보다 ‘나빠 보이지만 당위성 있는 행동’이 있어야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다. 극은 이 모든 ‘이상해 보이는 행동’을 ‘곽미향’이었던 과거를 가진 사모님의 ‘교육열’로 말미암은 것으로 치환한다.
이를 지극히 극적으로 포장해서 잘 엮어낸 것이 이 드라마 초반의 원동력이자, 시청률 1%로 시작했던 드라마 시청률의 수직 상승 원인이다. 행동만을 두고 보면 왜 저러는지 약간 아리송하지만, ‘내 자식의 공부와 성적과 좋은 대학’을 위한 욕망, 나아가 이것이 ‘자신의 자아실현’이 되는 행태가 모두에게 절묘한 탄식과 당위성을 부여한 것이다. 모두가 “그래, 자식 교육인데 저럴 수 있지”라고 납득하게 되는, 그리고 또,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들이다.
극에서 ‘서울대 의대’는 상징적으로만 존재한다. 서울 의대를 입학하고 졸업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이미지만을 구현한 것이 ‘스카이캐슬’이라는 공간이다. 그들은 극상류층 카르텔 안에서 호사스러운 삶을 향유한다. 솔직히 낯간지러웠지만,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보고자 하는 드라마적 욕망과 잘 맞았다. SKY 대학과 롯데캐슬의 합성어인 이 이름마저 절묘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SKY캐슬’의 결말과 스토리 전개에 있어 대단히 많은 사회적 질타가 떨어졌음을 알고 봤다. 요약하자면 전반적으로 그리 끔찍한 전개로 보이지 않았다. 종편 드라마 최고 시청률인 23.8%를 찍은 드라마에서 몇몇 혹자의 바람대로 복수는 복수를 낳아 유혈이 낭자한 살육이 펼쳐지다가 스카이캐슬은 폭파하고 불타는 아파트 사이로 몇몇의 생존자가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얼굴을 들이미는 결말은 만들기 힘들다. 어쩌겠는가. 결국 드라마 막판에서 가장 큰 사건이 일어나고 비밀이 폭로되며 갈등은 최고조에 달하다가, 점차 해소되어 극중 주인공들은 각자 화해하거나 행복해지거나 뉘우치고, 현실은 보편적으로 정의로운 지점에 가닿아야 한다.
정말 악해보였던 한 사람은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는 악한 사람이었고, 나머지 갈등을 촉발하던 다른 사람들은 실제로는 선한 사람이나 욕망의 피해자나 합당한 이유가 있어 그랬노라고 하소연하며 갈등을 봉합한다. 그래야 보편적으로 끝을 본 것 같으니, 이것은 보편적인 드라마의 한계로 보인다. 그럼에도 허겁지겁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초밥을 먹이거나, 스무 시간 동안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던 아버지랑 멀쩡하게 통화가 되거나, 갑자기 납골당에 가족사진을 끼워 넣고 우는 것 등은 무리수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면도한 강준상의 개과천선은 작가가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모든 큰 그림을 그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또한 입시교육의 피해자로 대물림되었음을 밝혀주는 핵심이자, 극을 온통 선량하게 전환시켜 해피엔딩으로 이끄는 장치이자, 혈육의 정으로 촉발되는 감정의 극한 변화까지 담고 있다. 삼단합체 변신로봇, 사서삼경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그 구문이나 읍소와 어머니의 반응이나 이후의 사건 전개는 결국 지나치게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한숨이 절로 터지는 진부함을 안겨주었음은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주제의식을 표명하고 굳건히 만들고자 했다면 다른 전개 방식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검은 옷을 입은 채로 물을 끼얹고 샤워를 하는 것까지는 용납이 가능한데, 이 한 컷을 위해서 18화 동안 수염을 기르고 다녔다니, 극심한 소름이 아닐 수 없다. 이걸로 나온 시청률이 몇 퍼센트라고. 결국 강준상의 개과천선은 문학적으로라면 몰라도 상업적으로는 성공했다. 여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전개에서 ‘출생의 비밀’과 ‘주요 주인공의 극적인 사망’은 매우 넓은 범위의 우연성을 상정하더라도 지극히 억지스러웠다. 또한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는 악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작가는 필즈상을 받은 친구와 회상 속에서만 등장하는 소리치는 전 남편과 설명 없이 무혐의 처리 받은 자동차 사망 사고와 마약에 취해 브레이크 선을 끊던 조 선생과 아홉 살에 조지워싱턴대에 입학한 아이와 외상성 뇌출혈 이후 선별적으로 학대받은 기억과 수학 공식만 징그럽도록 완벽하게 남아 있는 현재의 케이를 만들어내야 했다. 이는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는’이라는 형용사를 만들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현실을 참혹하게 파괴했는지를 보여준다.
4. 이야기 구조상의 특징
지금껏 나는 한국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았기에 조금 색다른 점을 볼 수 있었는데, 20시간이나 되는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이었다. 주요 등장인물은 대략 10여 명이 된다. 몇 가지의 출생의 비밀, 신분의 비밀, 범죄 사실 등은 극의 주요 사건이다. A라는 주요 사건이 일어나거나 공개되면 몇 명만이 그 사실을 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일단 이를 선별적으로 속이거나 숨긴다. 그러다가 극은 순차적으로 A라는 사건을 등장인물 10여 명에게 하나씩 알리면서 그 사람의 캐릭터에 맞는 반응을 펼쳐준다. “뭐?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지금 걔도 그걸 알아? 나만 몰랐단 말이야?” “어머 어머 그것 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같은 대사가 나오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 사람이 저걸 알게 되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라고 조마조마했던 시청자는 기대했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데, 사실 하나를 가지고 등장인물 10여 명을 돌려서 클로즈업하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거의 이런 방식으로, 공고하게 구축된 캐릭터에게 사실을 조금씩 풀어놓으며 20시간이나 되는 극은 나름대로 치밀하게 전개되고, 결과적으로 그 사실이 다 소문나면 모여서 차를 마신다. 이는 한 사실을 전제로 놓은 사건의 2차적 재생산이라는 점에서 전개가 진부해지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카타르시스적 재미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클로즈업의 반복은 왠지 한국 드라마 구조상의 특징 같기도 하다.
5. 오너캐
극중 PC함(정치적인 올바름)을 대표하는 것으로 나오는 이수임의 직업이 작가로 설정된 것부터가 작가 본인을 표방한다고 할 수 있다(대부분의 예술과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안녕 스카이캐슬’이라는 책이 2000부도 안 팔린 것과, “포털에도 안 나오는 주제에 자기가 무슨 작가라고” “그깟 글 좀 쓴다는데 우리가 왜 그 호들갑을 떨었지?” 같은 대사는 특별히 고증을 거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아서 더 와 닿는다.
하지만 이 캐릭터의 논란은 내가 했던 생각과 비슷했다. 그는 매우 올바른 가치를 수호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사람으로, 남들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한 단계 더 올바르게 행동하고야 만다. 이 행동의 결과는 결코 기대했던 대로 출력되지 않는데, 결론적으로 그다지 정의로워 보이지도 않고, 종국에는 모두에게 고구마를 먹여버리고야 말며, 심지어 현실과도 비슷하다. 작가님. 오너캐가 힘들어합니다.
6. 기타 등등
* ‘We all lie~’라는 찰진 음성만 들으면 누구나 탄식했을 것이다. 그것은 아릿함도 안타까움도 놀라움도 아닌 매우 많은 것이 복합된 시청각적 자극이었다. 나는 한국 드라마를 잘 보지 않았는데, 왜 각종 대중문화 패러디에서 흑백 화면을 정지시켜 놓고 비슷비슷하게 터지는 멜로디와 보컬을 들려주며 배너를 깔아대는지 다시금 이해했다. 이게 학습효과가 있어서, 멜로디가 터질 때마다 감정이 반응하는 것을 경험해보니 나중에는 먼저 허탈한 웃음부터 나왔다. 사람이 극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제곡이 극을 만들고 있는, 그래서 객이 주를 청각적으로 물리치는 것 같았다.
* 염정아는 진짜 연기를 잘했다. 나는 그녀가 놀라는 장면이 늘 놀라웠다. 어쩜 그렇게 찰지게 놀라워할 수가 있는지. 매 편 마지막에는 대체로 누군가 놀라면서 광고 배너가 나와야 하니, 놀라는 연기는 한드의 필수 덕목이 아닐까 싶다.
* 차 교수와 강 교수는 부부간 침대를 따로 쓰고, 우 교수와 황 교수는 침대를 같이 쓴다. 매우 상징적으로 보이는데, 행복해지려면 부부간 침대를 같이 쓰는 것이 좋다는 의미인 듯하다.
* ‘우양우’는 ‘우병우’의 패러디인가 ‘우향우’의 패러디인가. 끝까지 보았는데, 둘 다 아닌 것 같았다.
* 극중 주인공들은 엄청나게 울어대는데, 개인적으로 강예빈이 울 때가 가장 절절했다. 예빈이 너무 귀엽지 않나요?
* 잘은 모르지만 금고에 들어 있는 골드바 박스는 몇십억 원쯤 될 것 같지 않은가요? 그걸 두고 시어머니에게 가서 무릎 꿇고 돈 빌려야 하나요? 비상금인가? 그러면 왜 쓰앵님한테 줬다가 받는 겁니까.
* 극의 전개상 하버드생이 나온다고 할 때, 아직 등장하지도 않았지만 그가 사실은 하버드생이 아닐 것임이 너무 분명했다. 어쩔 수 없을 것이었다. 심지어 등장 이후 짐작하던 대로 하버드 생이 아니라고 밝혀졌는데, 그 순간 재미없지 않았다. 분했다. 그리고 20대에 클럽 창업은 힘들지 않을까.
* 한자를 잘 읽는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신‘륵’사는 못 읽었다. 강준상이 부끄러워해서 나도 부끄러웠다.
* 본방으로 보지 않아 면도를 하고 다시 태어난 강준상이 사표를 쓰고 레지던트들과 하나하나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을 빨리 돌릴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여러 방면으로 매우 부적절한 장면이다. 다시 생각해도 또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그 장면이 대취해서 노래방 3차까지 갔다 나온 저잣거리라면 이해한다.
* 꼭 우주를 자퇴시켰어야 했나. 시키든 안 시키는 극의 전개로는 별 차이가 없지만, 중퇴 고등학생의 자아 찾기 세계 일주는 흡사 유토피아를 강권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극적인 효과를 위해 급조된 선생님이 패악질을 하자 쌍둥이가 A4 용지를 허공에 쏟아 붓고 땡땡이를 치는 장면은, 유토피아를 강권하기 위해 또 다른 유토피아를 강권하는 패악질을 보는 듯했다. ‘SKY캐슬’ 20화 다시 만드세요 국민청원’은 뒤에 두 문단과 초밥, 가족과의 화해 등등에 힘입은 것 같다. 주제의식이 아무리 건전하고 이상적이여도, 너무 권유하고 학습시키면 보던 사람이 모두 알러지를 일으키는 법이다.
이상 가성비를 추구하던 나의 결과물이다. 이제 당분간 드라마는 더 안 보겠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지독한 하루’ 저자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홍라희·노소영·정희자·김영식…재벌가 사모님들의 미술품 사랑
·
'찍지마' 인터넷방송 초상권 침해 대처법
· [멋진신세계]
'법카로 질러야 제맛' 자브라 이볼브 65T 리뷰
·
[응급실에서] "그 엄마가, 엄마가 아니랍니다" '괴물 위탁모' 사건의 시작
·
[응급실에서] 매끼 배고픈 동안 늘 죽고 싶은 병, 거식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