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나라 5대 제약사들이 저마다 부업에 팔을 걷어붙였다. 본업인 의약품 제조를 넘어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임플란트 등 신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 사업을 다각화해 다양한 수익 창구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신약을 개발하는 데 보통 10~15년이 걸려 당장 수익이 바로 창출되는 구조가 아닌 반면, 신사업은 수년 내에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연 매출 기준 5대 제약사는 유한양행, GC녹십자, 한미약품, 종근당, 대웅제약이 꼽힌다. 이들 중 사업 다각화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곳은 유한양행이다.
유한양행은 2017년 미래전략실 산하에 뷰티신사업팀을 꾸리고 화장품을 제조·판매 회사인 ‘유한필리아’를 설립했다. 유한필리아가 선보인 프리미엄 아기용품 브랜드 ‘리틀마마’는 유·아동 시장에 진출해 손주나 조카를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에잇포켓족(한 명의 아이를 위해 지출을 아끼지 않는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삼촌, 이모 등 가족을 이르는 말)’을 공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한양행은 ‘뉴오리진’이라는 건강기능식품 브랜드도 내놓았다. 뉴오리진은 지난해 4월 서울 여의도 IFC몰에 첫 매장을 선보였고, 지금은 전국에 22개의 오프라인 매장이 있다. 이뿐만 아니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지난해 임플란트를 제조해 판매하는 회사인 ‘워랜택’의 지배권을 취득하는 등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GC녹십자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 관심이 많다. GC녹십자그룹의 순수 지주회사인 녹십자홀딩스는 2015년부터 자사의 공장이 있는 기흥역세권 땅을 이용해 부동산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녹십자홀딩스가 부지를 제공하고 포스코건설이 이 일대에 아파트 등을 건설하는 식으로 진행됐고 꾸준히 수익이 나오고 있다.
종근당, 대웅제약, 한미약품은 더마코스메틱 시장에서 경쟁이 한창이다. 더마코스메틱은 피부과학을 뜻하는 ‘더마톨로지(Dermatology)’에 ‘화장품(Cosmetic)’이 합쳐진 말이다. 종근당은 2017년 10월 주름개선 기능 화장품인 ‘비타브리드 듀얼세럼’을 선보였다. 한미약품도 같은 해 11월 유산균을 함유한 화장품 ‘클레어테라피 프로캄’을 내놓았다. 대웅제약은 2016년 자회사 ‘디엔컴퍼니’를 통해 화장품 브랜드인 ‘이지듀’를 출시한 후 신제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는 것은 이들 5대 제약사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벌써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제약사들이 속속 등장했다. 지난 1월 31일 메디톡스는 숙취해소 유산균인 ‘칸의 아침’을 출시했다. 지난해 12월 광동제약은 가정간편식 브랜드인 ‘광동약선’을 선보이며 가정간편식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제약사들이 신사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풀이된다. 우선 수요가 꾸준한 제약 사업과 달리 신사업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워낙 장기적 투자에 익숙한 제약사들은 당장 시장이 크지 않더라도 성장 잠재력이 큰 사업 분야를 선호한다. 건강기능식품, 더마코스메틱 시장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건강에 관심을 가지는 1인 가구가 많아지고 성분을 따지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면서 건강기능식품과 더마코스메틱 시장은 나날이 성장세를 보인다.
종근당 관계자는 “성장성을 보고 브랜드를 런칭한 것”이라며 “질병을 낫게 하는 약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관리를 할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성장하고 있고, 사람의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더마코스메틱 시장도 확대되고 있어서 (분리된 계열사들이)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연구개발(R&D) 투자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신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본업인 신약 개발을 위해 R&D 비용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하는 가운데, 사업다각화는 ‘수익 공백’을 메우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한정돼 있고 해외 시장은 진출해야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 등 투자할 수 있는 시장에 진출할 수밖에 없다”며 “신약 개발이 궁극적인 목표지만, R&D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신사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제약사들의 신사업 확대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제약사들이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겠다고 예고한 까닭에서다. 유한양행은 올해 연구개발비에 16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한미약품도 매출의 20%를 투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제약회사가 신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경향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신규 사업의 매력만을 우선하다 오류를 범하는 ‘헬레네의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 자칫 신사업이 실패하거나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본업인 되레 제약 사업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약 사업의 특성상 소비자 신뢰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2007년 10월 발간한 ‘간과하기 쉬운 신규사업 추진 시의 함정과 극복’ 보고서에서 “위험이나 투자 적절성 판단 없이 시장 트렌드나 성장성 등에 치중한 사업 선정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며 “자사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직은 사업 초기인 만큼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전지훈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연구위원은 “최근까지 제약사들이 투자한 것을 놓고 보면 아직 사업다각화가 재무건전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다”며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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