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거의 없긴 해도 지금은 특근하는 사람이 있긴 하죠.” 설 명절 전날인 4일 오전 9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남문엔 드나드는 사람 없이 경비원만 서 있었다. 아직은 조선소 사정이 어렵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 지난 1월 30일 발표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소식엔 말을 아꼈다.
KDB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인수·합병 MOU(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히자, 거제 지역은 충격에 빠졌다. 거제 인구 25만 명은 직간접적으로 조선업과 관련 있다. 2015년 기준 거제에서 일하는 사람 13만 3000명 중 9만 2000명이 조선업 종사자일 정도로 거제는 조선업 특화 도시다.
거제 지역 시민들과 조선업 종사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구조조정과 더불어 ‘물량 빼가기’다. 동종 업계이자 세계 조선 업계 1위인 현대중공업이 알짜 물량을 울산으로 가져가가고 ‘남는 물량’을 거제에 남겨 두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옥포조선소 인근에서 감자탕 가게를 운영하는 이 아무개 씨는 “이제 경기가 올라오는 기미가 보여서 괜찮아지는가 싶었는데, 이번엔 갑자기 현대에 매각된다니까 또 마음이 덜컹한다. 아무래도 현대가 원하는 대로 재편하지 않겠나”라고 우려를 내비쳤다.
대우조선해양의 실적은 2016년 바닥을 찍은 이후 최근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전 세계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발주물량의 30%가량을 수주했다. 2년 연속 조 단위 영업 손실을 기록하던 회사는 2017년 7330억 원 영업이익을 내 흑자로 전환했고, 지난해 또한 8000억 원 안팎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5000%를 상회하던 부채비율도 200%대로 낮아졌고, 올해 수주 전망도 밝다. 올해 목표 실적은 80억 달러로 지난해보다 10% 상향 설정했다. LNG운반선 건조의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대우조선의 자신감이다. 올해 현재까지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6척, 약 5.5억 달러(6154억 원) 상당의 선박을 수주했다.
실제 현장은 점점 활기를 띠는 중이다. 대우조선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옥포조선소 야드와 도크엔 2년 전 받아둔 물량이 한껏 풀린 상태다. 도크와 안벽(바깥 형태가 완성된 선박을 물 위에서 붙잡아 두는 구조물)에서 작업 중인 초대형원유운반이 총 19척이다.
해양플랜트 야드에서도 지난 2014년 수주한 TCO프로젝트(초대형원유생산플랜트)가 한창이다. 대우조선은 TCO프로젝트의 총 81개 모듈 중 53개 모듈을 제작한다. 2020년 상반기까지 모두 끝내야 하는 작업이다. 현재 옥포조선소 야드엔 그 중 30여 개 모듈이 깔린 상태라고 내부 관계자는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손이 부족하다. 대우조선은 4년 만에 신입사원을 공채하는가 하면 회사를 떠난 인력까지 끌어오는 중이다. 대우조선 상선 조립 파트에서 일하는 정규직 박 아무개 씨는 “현재 일손이 모자라, 희망퇴직한 사람까지 다시 데려오는 상황이다. 2월부터 출근하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 설 특근은 거의 없지만, 설 연휴 끝나자마자 7일부터 일한다. 야근도 많다”고 귀띔했다.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라는 희망도 잠시, 인수·합병 소식은 찬물을 뿌린 격이 됐다. 거제 시민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아직 결정된 사항이 아니니까 좀 더 기다려보자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우려에 담긴 추측도 내놨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 공장이 문을 닫은 만큼 옥포조선소를 해양플랜트 전담시키거나, LNG선 기술력이 좋으니까 LNG선 생산을 이쪽으로 몰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어느 방향이든 현대가 운영권을 가져가고 옥포조선소는 생산기지 역할만 하며 그 역할이 축소될 것이다. 사실상 이 인수·합병은 현대가 ‘가격협상력’만 생길 뿐 무엇이 좋은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조선하청조직사업부장은 “현재 현대 군산조선소가 문 닫은 것처럼 업황이 안 좋아지면 가장 먼저 거제에 타격이 올 것”이라며 “현대가 대우를 인수하는 것은 빅2 체제로의 이행이 아니라 사실상 빅1와 스몰1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독점으로 인한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거제=박현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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