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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가짜 전통과 명절증후군

차례 준비는 여자, 절은 남자? 가짜 전통 지키다가 명절 사라질 수도

2019.02.04(Mon) 06:00:31

[비즈한국] 설날에 지내는 차례는 차(茶)와 예(禮)를 합친 말이다. 즉 차와 다과를 내서 간단히 지내는 게 차례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기본 예법서로 삼던 ‘주자가례’에서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은 차 한 잔, 술 한 잔, 과일 한 접시가 전부였다. 전 부치고 고기 굽는 건 명절 차례 때는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설날 차례상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과하다. 

 

차례를 지낼 때 남성은 제사상 앞에서 절하고 잔을 올리지만, 여성은 음식준비만 할 뿐인 것도 가짜 전통이다. ‘주자가례’에선 술을 따르고 절하는 것도 종부, 즉 맏며느리인 여성의 역할이다. 실제로 유교 전통이 지켜지는 영남 지역 종갓집에선 여전히 종손과 종부가 제사를 함께 지내고 제수 음식 준비도 분담해서 한다. 밥과 탕, 나물 등을 준비하는 건 여성이지만, 힘이 들어가는 장보기와 과일 다듬고 떡을 쌓고 음식을 상에 나르고, 정리하는 것은 남성이다. 역시 진짜 전통은 합리적이었던 셈이다. 

 

유교 전통에서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은 차 한 잔, 술 한 잔, 과일 한 접시가 전부다. 술을 따르고 절하는 것도 종부, 즉 맏며느리인 여성의 역할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아는 홍동백서, 어동육서, 좌포우혜, 조율이시 등은 1960년대 정부에서 만든 매뉴얼에 등장할 뿐 전통과 무관하다. 명절 차례상에 무조건 오른다고 여기는 사과는 조선시대 전통과 무관하다. 우리나라에 ​처음 ​사과가 들어온 게 1902년이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고 차례상에 오르는 품종인 부사는 1930년대 일본에서 개발한 품종 후지를 우리식으로 부른 것이다. 사과가 차례상, 제사상에 오르게 된 건 결국 일제강점기였다. 

 

시대에 따라, 차례 지내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맛있는 걸 올리면 되지, 굳이 집집마다 같은 걸 관성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단 얘기다. 

 

지금 명절 문화는 여성들도 싫어하고, 젊은 세대도 싫어한다. 결국 이 상태로 가다간 정말 지켜야 할 명절의 전통조차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가짜 전통 고수하다가 진짜 전통을 없애버릴 수야 없지 않겠나. 가짜도 오래 믿다 보면 진짜라고 착각하게 된다. 이런 ‘리플리증후군’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겪을 수도 있는 것이다.

 

원래 가짜는 자극적인 데다 유혹적일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린 잘 넘어간다. 가짜뉴스가 여전히 판을 친다. 트렌드도 그렇다. 기업이 마케팅을 위해 유도하는 소비 트렌드가 많다. 한국인들이 특히 유행에 민감하다. ‘요즘 이게 트렌드야’라는 말에 너무 쉽게 넘어간다. 돌이켜보면 굳이 소비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너무 많이 산다. 한국인에게 정리 열풍, 미니멀라이프가 확산된 것에는 이런 영향도 있다. 가짜에 속다 보니 진짜를 놓쳤고, 그걸 바로잡으려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명절은 가족이 모여 즐겁게 보낸다는 게 핵심인데, 지금 우린 핵심을 잃어버렸다. 명절증후군과 세대 갈등, 명절 후 이혼율 상승 등 원치 않았던 상황만 맞았다. 관심이라는 핑계 대면서 ‘취직은 왜 안 하니’, ‘결혼은 왜 안 하니’, ‘애는 언제 낳을 거니’ 같은 식의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것도 그만해야 한다. 진짜 관심과 애정이 있다면 그런 식으로 명절 이벤트 삼아 질문을 던지진 않을 것이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함부로 물어선 안 된다. 

 

꼰대는 가짜 어른이다. 가진 건 나이 서열밖에 없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게 어른 행세다. 결국 가짜에 속지 않고 진짜를 가려내는 것만큼, 스스로가 가짜가 아닌 진짜가 되려 애쓰는 게 그 사람의 ‘클라스’다.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KBS 1라디오 ‘​생방송 오늘’​을 비롯해 다수 프로그램과 대기업 강연을 통해 최신 트렌드를 읽어주고 있다. 저서로는 ‘​라이프 트렌드 2019: 젠더 뉴트럴’​, ‘​라이프 트렌드 2018: 아주 멋진 가짜’​ ‘​​실력보다 안목이다’​ ‘​​라이프 트렌드 2017: 적당한 불편’​ 외 다수가 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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